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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 법률 통과...성충동 약물치료의 허와 실

지난 6월 말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내년 7월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아동 및 청소년 성범죄자에 대한 일명 '화학적 거세'가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매년 100여명의 성범죄자가 이 법률에 저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많은 논란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화학적 거세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흔히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는 성범죄자에게 호르몬 약물을 투여,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감소시키거나 인체 내 흡수를 억제시켜 성욕을 감퇴시키는 것을 말한다.

지난 1973년 덴마크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현재는 미국,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영국, 독일, 체코, 스위스, 폴란드 등에서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아예 테스토스테론 생성의 원천인 남성의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를 병행하기도 하지만 이때는 신체기능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물치료 요법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통과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에 의거, 내년 7월부터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 한해 최장 15년까지 화학적 거세가 시행된다. 아시아 국가 중화학적 거세를 법제화해 시행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성충동의 원흉, 테스토스테론

그렇다면 화학적 거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의 뇌에 있는 시상하부에서는 생식 내분비 조절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성선자극 방출호르몬(GnRH)이 생성된다. 이는 뇌하수체 전엽에서 황체형성호르몬(LH)과 여포자극호르몬(FSH)의 합성과 분비를 조절한다.

남성에 있어 LH는 고환 속의 라이디히 세포를 자극,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유발하며 FSH는 고환 속 지주세포에 작용해 정자의 형성을 촉진한다. FSH는 또 LH와 함께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돕기도 한다.

반면 여성의 LH와 FSH는 여성호르몬(프로게스테론)과 여포호르몬(에스트로겐)의 분비를 촉진하여 생리주기를 조절하고 임신 시 자궁내막을 튼튼하게 하는 등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남성과 여성의 LH 및 FSH의 분자구조는 동일하지만 그 역할은 전혀 다른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테스토스테론은 생식기를 발육시키고 그 기능을 강화시켜 '성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테스토스테론이 바로 성충동의 주된 원인이라는 얘기다.

결국 화학적 거세는 호르몬 약물을 투여, 고환의 정상적인 작용을 저지함으로써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상하부(GnRH), 뇌하수체(LH, FSH), 고환(테스토스테론), 성충동으로 이어지는 4단계 연쇄작용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

약물로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GnRH 효능제(GnRH agonist 또는 LHRH agonist), 초산 시프로테론(cyproterone acetate)과 같은 남성호르몬 차단제를 투여하거나 초산 메드록시프로게스테론(medroxyprogesteroneacetate) 등 여성호르몬제를 쓰는 게 그것이다.

먼저 GnRH 효능제는 GnRH 분비 촉진 약물을 주입, 일시적으로 GnRH의 분비량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초기에는 4단계 연쇄작용에 의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도 늘어나게 되지만 갑작스레 증가한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놀란 뇌하수체가 GnRH 분비를 억제하면서 결과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막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가 화학적 거세를 위한 약물로 유력하게 검토 중인 미국 애보트의 '루프론(Lupron)'이 이 같은 작용기전을 갖고 있다. 루프론의 GnRH 분비 촉진 기능은 류프롤라이드(Leuprolide) 성분에 의해 발현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GnRH 효능제는 테스토스테론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초기에 성욕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평균 10일 가량 이러한 증상이 이어질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1개월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만약 성범죄자가 여성이라면?

현재 화학적 거세의 대상은 남성이다. 법률에서는 성별을 특정하고 있지 않지만 피해 아동들의 정신적·육체적 피폐함을 감안할 때 남성이 처벌대상이 될 개연성이 100%에 가깝다. 하지만 세상에는 극소수이기는 해도 여성 성범죄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만일 처벌 대상이 여성일 경우에도 화학적 거세가 가능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렇다.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충동을 일으키는 주범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며 여성들도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 상대적으로 분비량이 훨씬 적고, 테스토스테론에 의한 신체 변화도 남성들이 한층 다양하고 복잡할 뿐이다.

즉 여성 성범죄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특별히 높은 상태라면 남성과 동일한 방법, 다시말해 루프론, 안드로쿨 등 남성호르몬 수용체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입하면 된다.

다만 이는 당위론적인 판단일 뿐 실제로 여성을 대상으로 화학적 거세를 할 때는 남성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의학계의 지적이다. 여성의 내분비기관은 남성에 비해 훨씬 세밀하고 민감하기 때문에 남성에게는 나타나지 않은 부작용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향후 여성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필요성이 제기되면 추가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물론 가장 좋은 상황은 이런 논의 자체가 아예 벌어지지 않는 것이지만 말이다.


전립선치료제와 피임약의 변신

초산 시프로테론도 기본적인 작용기전 은 GnRH 효능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체내의 안드로겐(Androgen) 수용체를 억제함으로써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방지 효과를 낸다. 안드로겐은 남성 생식계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남성호르몬의 총칭이다.

독일 바이엘의 안드로쿨(Androcur)이 초산 시프로테론 성분을 함유한 대표적인 화학적 거세 약물로 꼽힌다. 특히 안드로쿨은 고환을 도와 5% 정도의 정자를 생산하는 부신의 기능도 철저히 차단한다. 이 과정에서 수분 및 이온질 대사를 조절하는 미네랄코르티코이드처럼 부신 피질에서 분비되는 다른 호르몬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차단해 버리는 것은 단점이다.

물론 루프론과 안드로 쿨은 화학적 거세를 위한 약은 아니다. 주로 전립선 암이나 전립선 비대증 등 전립선이상증 치료에 이용되는 약물이다. 전립선암 역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암세포가 증식하는 경우가 많아 테스토스테론 차단 성분들이 함유된 것인데 이를 화학적 거세 약물로 용도 변경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초산 메드록시프로게스테론은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복합체로서 여성의 배란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어 주로 여성용 피임약에 쓰이지만 남성에게 주사하면 혈중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춰 성욕감퇴가 나타난다. 여기에 속하는 약물로는 미국 화이자의 '데포 프로베라(Depo-Provera)'가 가장 대표적이다.

현재 이들 3종의 약물은 알약, 주사제 등 두 가지 형태로 공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루프론은 주사제, 안드로쿨은 50㎎의 알약만 들어와 있으며 데포 프로베라만이 주사제와 알약형 경구제를 함께 판매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중 어떤 제품이 화학적 거세 약물로 선택되든 투여는 주사제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경구제는 복용 여부를 일일이 감시·확인해야 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실질적인 성충동 억제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당초 개발목적에서 벗어난 용도인 만큼 제약사들 조차 이에 대해 계량화된 수치는 갖고 있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양이 화학적 거세 약물로 용도 변경되어 쓰이고 있는지도 집계된 바 없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화학적 거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전례를 보면 통계학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가 기대된다. 일례로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40%에 달했던 성범죄 재범률이 5%로 하락했고 약물 치료와 물리적 거세를 병행한 독일은 3%까지 떨어졌다.




화학적 거세, 의사들의 생각은?

지난 2006년 대한 비뇨기과 개원의 협의회는 '성충동 약물치료 도입에 관한 찬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두순 사건 발생 이전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당시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비슷하게 갈렸다. 전체 응답자 74명 중 43명(57%)이 화학적 거세에 찬성했고 31명이 반대한 것. 찬성표를 던진 의사들은 호르몬 조절을 통한 성욕 억제가 필요하며 이는 성폭행의 재발을 막는 최소한의 방법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반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개원의들은 효과의 불확실성, 부작용 가능성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병행해야

화학적 거세는 단 한 번의 약물 투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사제로 국한 하면 데포 프로베라는 100.500㎎을 1~3주 간격으로, 안드로쿨은 300. 600㎎을 1~2주 간격으로 근육에 주사 해야만 어느 정도 성욕억제 효과를 볼 수 있다.

원래와 다른 용도로 쓰이는 약물을 최장 15년이라는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투약하는 것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모든 약물이 그렇듯 화학적 거세 약물도 부작용이 있다. 일단 남성호르몬 차단제나 여성호르몬제 모두 남성의 여성화 증상이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 여성형 유방, 목소리 변성, 체중 증가, 안면홍조,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는 것. 또한 당뇨병, 고혈압, 혈관염, 폐색전증, 뇌졸중 등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기 투여로 인한 부작용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껏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각 약품의 차이를 밝히는 임상시험도 전혀 수행된 바가 없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GnRH 효능제 계열 항암제의 안전성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 단계에서의 공식입장은 잠재적 위험성을 주의 깊게 고려해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다른 약물과 비교해 루프론의 부작용이 적다는 이유로 이 약물의 채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전문가들도 가격 경쟁력에서는 프로베라가 우위에 있지만 안전성 측면에서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대한남성과학회 총무이사인 양대열(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지금껏 루프론 등의 약물을 전립선암 환자에 투여했을 때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었다"며 "하지만 당뇨나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위험할 수 있어 약물 투여를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또 "약물치료를 받는 동안 임신은 위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령 루프론의 경우 약물 설명서를 통해 임신 중 투여 시 내분비 기관의 양성종양 증식 우려가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대상자 본인뿐만 아니라 임신 후 태어날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양 교수는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아주 특수한 경우지만 환자에 따라 매우 많은 양의 약물을 투여해도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는 이유에서 다. 또한 법적 치료기간이 지나 약물 투입이 중단되면 곧바로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정상화되면서 성범죄를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점도 심리치료의 병행이 요구되는 요인의 하나다.

양 교수는 "범죄 인식이 부족한 성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교육을 통해 성과 관련된 왜곡된 생각을 고치는 치료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며 "그래야만 성범죄 재발 방지라는 화학적 거세 도입의 근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거세지는 논란과 우려

화학적 거세 회의론자들은 비용적인 부분도 문제로 지적한다. 루프론 1회 투여비용이 최소 20~60만원에 달해 투약비용과 검사비용, 그리고 보호관찰에 투입될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범죄자 1인당 연간 500여만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최근 추산한 바로는 법 시행 첫해에만 약 9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또 정부가 매년 재범위험성이 높은 100여명의 성범죄자를 치료 대상으로 삼고 있고, 최장 치료기간이 15년임을 감안할 때 15년 뒤에는 관련예산이 최대 8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화학적 거세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치료 대상자의 인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입법 과정에서 '약물을 주입해 인체의 자연스런 순환을 막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 제기돼 여러 번 제동이 걸렸었다.

이번 법안 제정의 단초가 된 조두순 사건과 김길태 사건을 겪으며 성폭행범의 인권까지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많은 상태지만 인권단체들은 인권은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 가치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인권은 한 번 예외가 생기기 시작하면 침해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자칫 화학적 거세를 시작으로 정신질환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 등 다른 분야의 범죄자들에게도 약물로써 손쉽게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것.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질환으로 보고 치료를 하는 차원이라면 몰라도 단죄한다는 차원의 화학적 거세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폴란드를 제외한 대다수 화학적 거세 시행국가들이 본인의 동의나 자발적 요청이 있을 때에 한해 약물을 투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유사하게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나 감정을 받아 법원이 약물치료 명령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치료명령을 받은 사람은 보호관찰관의 명령을 성실히 따라야 하며 호르몬 수치 검사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거나 다른 약물을 투약해 치료효과를 떨어뜨리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와 관련 정부는 법안 통과 후 후속 조치로서 성충동 약물치료를 위한 지역별 치료거점 병원 구축, 성도착증 환자 진단 도구 표준화, 투여 약물 선정 등의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동 성범죄는 평균 재범률이 50%를 넘어서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그리고 법제화가 이루어진 이상 화학적 거세는 작금의 논란과 상관없이 시행될 것이 확실시 된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한다면 이제는 찬반 논란으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성충동 약물 치료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역작용을 줄이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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