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 시간)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가운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미국측 ‘키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우리 협상단의 대화 상대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었으나 일정 문제로 베선트와의 협상이 어그러지면서 러트닉 장관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다. 그는 한국측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을 위한 조언을 하는 한편 우리보다 먼저 협상을 마친 일본을 언급하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한국 협상단은 지난 25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경제·무역 분야 2+2 장관급 회의가 베선트 장관의 일정 문제로 연기되면서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더욱이 미측 무역협상 팀원 중 베선트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28~29일, 미국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중국과의 3차 무역협상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을 찾았기에 미국 정부 안에서 러트닉 장관이 한미협상의 막판 조율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또한 러트닉 장관은 25~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스코틀랜드 방문에 동행하면서 그곳까지 찾아온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스코틀랜드 출장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협상 때 한국 측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주의해야 할 사안들을 친절하게 조언하기도 했고, 어찌 보면 초강대국의 '갑질'로 보일 수 있는 대규모 대미 투자기금 조성 요구를 앞장서 제기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로 한국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했지만,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압박의 최첨병 역할도 담당했던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의 극동지역 양대 동맹인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미묘한 '경쟁' 관계를 이용하려 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는 지난 24일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매우 매우 협상을 타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의 합의를 읽을 때 한국의 입에서 욕설(expletives)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경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뉴욕의 유대인 가정 출신인 러트닉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83년 투자은행인 캔터 피츠제럴드에 입사해 29살 때인 1990년대 초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이다. 암호화폐 친화적인 억만장자 금융 자산가로, 트럼프 대통령의 거액 선거자금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강화 및 제조업 기반 강화 공약을 적극 옹호한 바 있다.
'경제 사령탑'격인 재무장관 후보로 베선트 장관과 막판까지 경합했지만 결국 상무장관으로 낙점된 그는 트럼프 경제·무역팀에서 '돌격대장'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 베선트 장관이 종종 트럼프 대통령의 '과속'을 막는 역할을 하는 반면 러트닉 장관은 각종 방송 출연 기회 때마다 격정적인 어조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홍보하는 동시에 협상 대상국들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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