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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괴짜들의 최고봉 '이그노벨상'

최근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며 그들이 쏟은 열정과 연구 업적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임에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겸연쩍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일까. 이들은 바로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 수상자다. 매년 노벨상 보다 앞서 발표되는 이 상은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당혹스런 연구의 수행자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는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웃고 즐기자는 취지가 아니다. 누군가의 연구를 조롱하기 위함은 더욱 아니다.

웃음 그 뒤에는 세상을 일깨우는 경각심과 통념을 깨는 창의성, 그리고 상상력에 대한 찬사가 숨어 있다. 천재와 바보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던가.


1. 공학상 고래 콧물 수집에는 헬리콥터가 '짱'

바다 속에 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포유동물인 고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뜻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하다. 바다에 뛰어들어 피를 뽑기도, 그렇다고 포획해서 X레이 촬영을 하기도 어불성설이다.

영국 런던 동물원의 카리나 아체베도-화이트하우스와 아그네스 로샤-고슬린, 그리고 멕시코 국립고등과학연구소 다이애나 젠드 론 박사 공동연구팀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이를 가능케 해주는 기계를 개발, 올해의 이그 노벨 공학상을 수상했다.

이 기계는 바로 '고래 콧물 수집용 원격조종 헬리콥터'다. 연구팀은 고래의 콧물에 담긴 박테리아를 분석, 고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자 했고 그 일환으로 이 헬리콥터를 개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 분수공으로 물을 뿜어낼 때 콧물이 함께 배출된다. 이에 연구자들은 고래가 물을 뿜는 순간을 포착, 실험용 페트리 접시가 부착된 길이 1m의 소형 헬리콥터를 투입해 콧물을 채취한다. 이렇게 채취된 콧물의 미생물을 분석함으로써 연령과 종(種)에 상관없이 질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이 헬리콥터를 활용, 8종의 고래 콧물 샘플 22개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4월 '자의적으로 이동하는 고래의 질병 관찰을 위한 신개념비(非) 외과적 도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카리나 박사의 설명으로는 박테리아가 들어있는 콧물은 냄새가 고약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왜 이런 방법을 택했 을까. 고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콧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고래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배려심 넘치는 연구자들이 아닐 수 없다.

2. 의학상 롤러코스터 타면 천식이 치료된다?!

천식 환자들은 기관지가 과도하게 예민해지고, 때로는 좁아져서 시도 때도 없이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을 쏟아낸다. 많은 약들이 나와 있지만 장기간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약발이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천식 환자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롤러코스터가 이러한 천식 증상을 잊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그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사이먼 리트펠트 박사와 틸부르흐대학의 일리야 반비스트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실이다.





이들은 25명의 여성 천식환자를 대상으로 이들이 무서워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후의 천식 증상 변화를 관찰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후 천식 증상이 호전된다는 결과를 얻은 것. 연구팀은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 불안한 감정이었던 피실험자들이 탑승을 마친 후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천식 증상에 대한 자각이 약해져 이 같은 호전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006년 '롤러코스터 천식: 증상의 자각을 방해하 는 긍정적 감정 스트레스'라는 논문으로 발표된 이 연구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가진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겨울철에 빙판길을 걷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자로 뻗으며 넘어졌을 때 창피함이 밀려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이유가 아닐까.

3. 대중교통체계 기획상 교통체계 설계는 세균에게 물어봐

대중교통시스템의 설계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리와 지형, 환경, 효율성, 접근성, 비용 등 무수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며 이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인해 질타를 피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비용을 투자해 건설했지만 활용도가 떨어지는 도로, 항만, 철도, 공항 등의 예가 많이 존재한다. 토시유키 나카가키, 세이지 타카기 등 일본의 과학자 7 명과 덴 베버, 마그 프릭커 등 영국 과학자 2명은 이 모든 고민을 일거에 해소해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교통체계 설계자를 찾아내 도쿄의 철도시스템을 최적화한 공로로 대중교통체계 기획상을 받았다.

세계 최고 설계자는 다름 아닌 점균류, 즉 세균이다. 연구팀은 별도의 통제시스템 없이도 스스로 최적의 에너지를 전달하며 효율적으로 성장하는 세균들의 생물학적 네트워크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을 연구해 도쿄에 적용할 최적의 철도시스템을 구현해낸 것이다.

수십 년의 노하우를 가진 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 이처럼 간단히 처리하는 것을 보면 인체에 유해한 세균들과 인간의 전쟁이 왜 이토록 힘겨운지를 새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4. 물리학상 양말 한 켤레면 빙판길도 무섭지 않아!

팬티는 바지 속에 입는 내의다. 하지만 슈퍼맨은 바지 바깥에 팬티를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말의 경우 발에 신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뉴질랜드 오타고대학의 리엔 파킨, 쉐일라 윌리암스, 패트리샤프리스트 등 3명의 연구자들은 신발 을 신은 채 양말을 싣는 방법으로 이번에 이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이 이처럼 괴팍스런 행동을 한 것은 빙판길의 낙상방지를 위해서다. 작년 뉴질랜드 의학저널을 통해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신발 밖에 양말을 신고 걸으면 미끄러운 빙판길에서도 넘어질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총 3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평상시처럼 빙판 위를 걷게 하자 3분의 2에 해당하는 20명이 넘어진 반면 신발에 양발을 신은 뒤에는 넘어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신발 바닥의 고무보다는 양말의 천이 빙판과의 마찰력을 높이는 데 좋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추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연구팀은 물리학자로서 이 당연한 사실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고 결국 주변 지인들의 비웃음을 감내하며 관련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올 겨울에는 집에 남아도는 양말 한 켤레로 낙상에 대비해 봄이 어떨까.

5.평화상 아프면 욕해라

방문에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끼이면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발가락을 찧었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죽을 만큼 아프다. 앞으로는 그럴 때마다 시원스레 욕지거리를 해보자. 그러면 고통이 반감될 것이다.

정말일까. 영국 킬 대학의 리처드 스티븐스, 존 아킨스, 앤드류 킹스턴 등 3명의 과학자에 따르면 그렇다. 이들은 욕을 하면 고통을 줄일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내 세상에 웃음을 돌려준 공로를 인정받으며 이그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이 됐다.



실험은 얼음물에 손을 넣고 얼마나 오래 참아낼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한냉승압테스트'로 진행됐다. 그 결과 끊임 없이 욕설을 내뱉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무려 50% 이상 고통을 오래 견뎌냈다.

욕설이 심박수를 증가 시켜 고통에 대한 자각능력을 낮추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격언을 '피할 수 없다면 욕해라'라고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6. 공중보건상 경고! 수염 기른 연구자 입실 금지!

수염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연구자들의 경우 멋들어진 콧수염이나 턱수염은 왠지 모를 중후함과 신뢰성을 준다. 하지만 미생물을 다루는 연구자라면 수염과는 영 영 작별을 고해야 한다.



이그노벨 공중보건상을 받은 미국 산업보건안전사무소 의 마누엘 바베이토, 찰스 매튜, 래리 테일러 박사는 지난 1960년대에 동료 연구자가 위생을 우려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염 기르기를 고집하자 자기 자신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아 그 위험성을 입증했다.

직접 수염을 길러 해롭지 않은 세균을 뿌린 다음 비누와 물로 닦아낸 후 잔여 세균을 확인한 것. 또한 수염을 붙인 마네킹과 감염성 세균을 가지고도 동일한 실험을 실시했다.

결과는 이들의 생각대로 아무리 잘 씻어내도 다수의 세균 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세 연구자의 압박에 수염을 길렀던 연구자도 결국 백기투항했다. 연구자들의 안전의식 강화에 기여한 이 실험은 지난 1967년 논문으로도 발표됐다. 안타까운 점은 무려 40여 년 전의 연구인지라 3명의 연구자 중 마누엘 박사만이 수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7. 경제학상 세상을 위협한 신개념 투자법

세계는 아직도 긴 경제위기의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이 위기는 주지하다시피 2년 전 발발한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올해의 경제학상 수상자로 바로 금융위기의 주역이었던 골드만삭스,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AIG, 마 그네타 등의 금융회사들의 임원들이 결정됐다. 선정 이유는 세계 경제를 위해 '이익은 최대로, 위험성은 최소로'하는 신개념 투자방법을 제시했다는 것.

물론 이는 오직 기업의 이익만 추구하다가 자신들의 고객은 물론 세계 경제 전체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들 금융사의 투자 행태를 역으로 비꼰 표현이다. 수상자들도 이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지난 9월 30일 개최된 이그노벨상 시상식에는 오직 이 부문의 수상자들만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8. 화학상 물과 기름도 섞일 수 있다?

이그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지금껏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오랜 통념, 다시 말해 물과 기름은 결코 섞일 수 없다는 화학적 사실이 틀렸음을 일깨워준 3명의 과학자와 1곳의 기업에게 돌아갔다.

영예의 주인공은 MIT의 에릭 아담스, 텍사스 A&M대학의 스코트 소콜로스키, 하와이 대학의 스티븐 마 주타니, 그리고 세계적 정유회사 BP다. 이들은 지난 2000년 심해에 위치한 원유 파이프가 손상됐을 때를 대비한 대응방안을 연구한다는 미명 하에 일부러 심해에서 기름을 유출시키는 실험을 단행했다.



소량이 기는 하지만 위험한 이 실험으로 그들이 알아낸 것은 '바다 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유출된 석유는 수면 위로 빠르게 상승, 바닷물과 섞이지 않지만 실제 바다는 해류가 있고 밀도 또한 다르기 때문에 기름이 작은 방울처럼 뭉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또 이번 결과로 볼 때 다량의 원유가 유출될 경우 바다와 섞이지 않고 수면 위로 떠올라 방재작업이 훨씬 용이해지는 만큼 인간에게는 이로운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과연 이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심해에서 원유를 배출시켜야 했는지 되묻고 싶은 부분이다.

게다가 올해 4월 멕시코 만에서 역대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를 일으킨 BP의 사후처리 모습을 보면 당시의 연구결과가 현실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9. 경영학상 아무나 승진시켜야 조직이 산다

기업들은 조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무나 승진시키는 것이다.

이탈리아 카타니아대학의 알레산드로 플루키노 박사 등 3명의 연구자는 이 황당한 결과를 수학적으로 증명, 이그노벨 경영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들이 입증한 조직 효율 향상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승진대상자를 선정할 때 고심할 필요 없이 아무나 무작위로 선택하는 것, 그리고 최고의 직원과 최악의 직원을 함께 승진시키는 것이다.

연구팀은 총 160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가상의 회사에서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해본 결과, 실적에 바탕 한 승진 인사에 비해 효율성이 크게 높아짐을 확인했다. 또 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최고의 사원과 최악의 사원을 동시에 승진시키는 것도 효율 제고에 도움이 되 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추정한 이유는 특정 직원이 현 위치에서 우수성을 드러냈더라도 승진 후 다른 위치에서도 계속 우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연구팀은 우수한 직원이 있다면 굳이 다른 자리로 보내지 말고 추가 보상을 주면서 현 위치에 놔두는 편이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과학적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비합리적인 탓에 과연 이 승진 방식을 기업들이 수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10. 생물학상 박쥐도 구강성교를 한다?

이그 노벨 생물학상 수상은 다소 민망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연구주제는 바로 과일을 주식으로 하는 큰 박쥐(fruit bat)의 교미 행태였다.



리바이오 장을 포함한 7명의 중국 과학자와 영국 브리스틀대학의 가레스 존스 박사가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큰 박쥐의 침실을 속속들이 분석, 큰 박쥐가 구강성교를 즐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큰 박쥐 암컷이 왜 수컷의 생식기를 애무하는지를 알 수 없었던 연구초기에만 해도 연구자들은 암컷의 침에 박테리아를 죽이는 성분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암컷의 이 행동은 성관계 시간을 늘리기 위한 암컷들의 테크닉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암컷의 수컷 생식기 애무는 1초마다 6초의 성관계 시간 증진 효과를 나타냈으며 애무가 4분간 지속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성교시간이 두 배나 늘어났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성행위를 오래 즐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연구팀은 이렇게 함으로써 수정(임신)될 확률을 높이려는 시도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양철승 기자 c 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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