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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낯선듯 익숙한 공간...'도천 라일락집'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9.30 15:22:47고즈넉한 분위기의 창경궁에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인 대학로에 이르게 된다. 그 중간 지점에는 다가구주택들이 밀집한 주택가 골목으로 꺾어져 성균관대 캠퍼스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 길이 캠퍼스를 둘러싸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고(故) 도상봉 화백을 기념하는 장소이자 개인 주택인 ‘도천라일락집’이 자리 잡고 있다. 도상동 화백은 이곳에서 1930년대부터 생활하면서 작업활동을 했다. 주택가 골목길에서 바라본 도천라일락집은 길 건너의 성균관대 문묘 건물과 다가구건물들로 이뤄진 풍경 가운데 하나다. 이질적인 두 가지 풍경 사이에서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면 거주하는 사람, 주변 공간과의 조화를 위해 설계자가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설계를 맡은 정재헌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존재감은 없되 묵묵히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존재감 있지만 튀지 않는 설계 붉은색 벽돌 1층과 고동색 벽돌의 2층 길 하나 건너 문묘와 다른 듯 닮은 느낌 도천라일락집은 ‘ㄱ’자 모양으로 벽처럼 세워진 2층 고동색 벽돌 건물과 그 옆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소박한 느낌의 1층 건물로 구성돼 있다. 2층 건물은 주거 공간이고 1층 건물은 도상봉 화백의 작업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나지막한 벽돌 담장이 서로 다른 모습의 두 건물 사이를 이으면서 중앙의 마당을 둘러싼다. 때문에 외부에서는 건물 내부의 창과 마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 교수는 이러한 공간 배치와 관련해 “집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그의 건축 철학을 언급했다. 거주 공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목적을 우선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가 설계에서 고려한 요소는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다. 정 교수는 “도천라일락집 터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창덕궁에서 성균관으로 이동하는 길에 위치해 있다”며 “문화재이자 시간성을 지닌 성균관과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 고민의 답은 길 건너편 성균관대 캠퍼스 안의 문묘와 도천라일락집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찾을 수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건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천라일락집 2층 건물의 고동색은 건너편 문묘와 담장의 기와 색과 닮았다. 1층 건물을 이루는 벽돌의 붉은색도 문묘에 사용된 색과 같은 느낌이다. 정 교수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주변 건물들을 어두운 색 배경(2층 건물)으로 정리하고 문화재와 새로 짓는 건물(도천라일락집)이 각각의 시대성을 표현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건물을 이루는 벽돌의 질감이 내부와 외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내부의 벽돌은 표면이 반듯한 모양인 반면 외부 벽돌은 표면이 울퉁불퉁해 거친 느낌이다. 내부는 편안한 분위기를, 외부는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를 각각 연출하기 위한 장치다. 1층 건물에 사용된 붉은색 벽돌의 질감도 벽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정 교수는 “설계도면으로 표현되지 않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건축 현장을 100번 넘게 찾아 작업자들과 대화하고 직접 벽돌을 깨서 질감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좋은 건물은 설계자가 원하는 벽면의 질감과 같은 ‘디테일’이 구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천라일락집의 구석구석에 그의 정성이 묻어 있는 셈이다. ● 건물과 각별한 인연 이어온 설계자 도상봉 화백 손자와 고등학교 반 친구 “라일락 그림처럼 우아함 담으려 노력” 정 교수와 도천라일락집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도천라일락집이 있는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도천라일락집이 위치한 공간의 특성, 역사가 삶의 일부인 것이다. 건축주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이자 도상봉 화백의 손자인 도규영씨다. 도규영씨는 1970년대에 지어진 기존의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부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잘 팔리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유산을 팔고 떠나기도 어렵다는 생각으로 고민한 끝에 2012년 9월경 정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에 정 교수는 “역사가 담겨 있는 장소를 후손들이 새 기억으로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편안한 집이 도상봉 화백의 기념관과 합쳐진 공간으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도규영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 집을 짓기로 했다. 정 교수는 2014년 3월 도천라일락집의 설계를 시작해 같은 해 8월부터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설계하면서 항상 도상봉 선생이 계셨던 곳을 생각하고 선생의 작품을 분석했다”면서 “선생이 주로 그리셨던 라일락 그림의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설계한 새집의 이름을 도상봉 화백의 호인 도천과 라일락을 합친 ‘도천라일락’으로 정했다. 2015년 5월 완공된 도천라일락집은 같은 해 9월 국내 건축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서울시 건축상 대상에 선정됐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설계자 인터뷰] 정재헌 교수 “건축은 도시를 만드는 예술 … 공간이 지닌 의미 생각해야” “우리 사회는 도시를 만드는 예술인 건축을 경기 부양, 경제 성장의 수단인 ‘건설’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천라일락집의 설계자인 정재헌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건축의 가치 중 많은 부분이 왜곡돼왔다”며 이 같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도시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현대에 건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에 왜곡된 건축의 가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대인의 삶의 터전인 도시는 건축물의 집합”이라며 “우리가 파리·로마 등 유명한 관광지를 가서도 보는 것은 건축물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 교수는 최근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재개발에 따른 집값 상승 현상을 비판했다. 그는 “집이 하루 일과를 보내는 휴식처가 아니라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활용되다 보니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며 “집이 여러 세대를 이어가며 오래 사는 공간이 되지 않으니 잘 지을 필요도 없어지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건축 가치의 왜곡이 건축물의 수준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서울 세종로·종로의 역사적인 의미가 강남과 같을 수는 없다”면서 공간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빅토르 위고,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 인물들이 거주했던 건물을 역사적인 장소이자 관광지로 보존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근대 회화의 거목인 도상봉 화백을 기념하는 장소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도천라일락집 설계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다. 거주자와 공간의 역사적인 의미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도천라일락집에 고스란히 반영돼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건물 배치와 주변의 성균관대 문묘, 다가구주택들과 조화를 이루는 외관으로 구현됐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부수고 없애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보존하기 시작했다”면서 “대단위 개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소자본 활동이 자생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작은 상점들이 골목길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서울 홍대거리·가로수길·삼청동길이 그 사례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
[건축과도시] 빌딩 숲과 하나된...'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9.23 16:00:00서울 강남구 삼성역 일대에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코엑스 맞은편 옛 한국전력 부지에 현대지동차그룹이 105층 규모의 메인 타워를 중심으로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조성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서울시는 영동대로 지하공간을 ‘복합환승센터’로 조성하고 종합운동장을 리모델링하는 등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을 연결하는 국제교류복합지구를 조성한다. 최근 공식 오픈한 ‘파르나스타워’는 삼성역 앞 한국종합무역센터 블록에서 테헤란로의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호텔과 영동대로 트레이드타워 사이에 있다. 원래 계획은 전체 39층 중 상층부 10여개 층에 최고급 호텔을 배치하는 것이었지만 전면 재설계를 통해 오피스빌딩으로 바뀌었다. ●트레이드센터의 오마주 ‘블록 맏형’ 트레이드센터 고려 높이 일부러 낮춰 깎인 모서리·투명유리 등 디자인콘셉트까지 고려 ‘파르나스(Parnas)’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사는 신성한 산 ‘파르나소스(Parnassus)산’에서 따온 것이다. 건물 설계를 맡은 미국 KMD와 국내 창조종합건축사무소는 이 파르나스에서 신전 기둥과 같은 이미지를 차용해 호텔의 콘셉트로 삼았다. 오랜 세월을 버텨내며 묵직한 존재감을 갖게 된 신전처럼 한국 현대건축의 시기별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게 목표였다. 무엇보다 한국종합무역센터의 상징적인 건물인 트레이드센터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었다. 이에 맞춰 법적으로 250m까지 올릴 수 있는 건물을 183m로 낮췄다. 이 블록의 ‘맏형’ 격인 트레이드센터의 디자인 콘셉트를 반영해 호텔 정문 쪽 하단과 영동대로 쪽 상단을 투명유리로 덮으며 사선 형태로 튀어나오거나 들어가게 했다. 대신 밋밋할 수 있는 빌딩에 두 개의 모서리는 45도로 깎아내고 나머지 두 곳은 둥글게 처리해 수직성을 강조했다. 설계에 참여한 이경수 창조건축 상무는 “일본 니켄세케이는 트레이드타워를 설계할 때 한국 고도성장기를 꺾은선 그래프 형태로 건물에 반영했다”며 “파르나스타워에서 45도로 깎인 건물의 두 모서리, 반사유리가 아닌 투명유리를 돌출·함몰시킨 일부 벽면, 타워 입구 천장의 캐노피 역시 모두 트레이드센터에 대한 ‘오마주’”라고 강조했다. ●단조로움 속에 빛나는 건축미학 외벽 검은 루버로 하늘과 맞닿을듯한 수직성 효과 기둥 절반으로 줄인 3m 천장 오피스 개방감 탁월 주변보다 튀지 않으려는 디자인 때문에 자칫 단조로울 뻔했던 건물을 살린 것은 외벽의 검은색 루버(louver)다. 원래 햇빛이나 빗물이 내부로 들이치지 않도록 하는 차양 같은 용도인데 일정 간격으로 수평부착된 검은 루버는 파르나스타워에 수직적인 팽창감을 부여했다. 아래에서 쳐다보면 연속되는 수평선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며 내는 ‘그러데이션’ 효과로 건물이 마치 하늘로 끝없이 연장되며 닿을 듯한 느낌을 주는 것. 한눈에 알기 힘들지만 이 루버들 사이에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시스템(BIPV)이 부착돼 있다. 매 층 5개씩 설치된 루버 중 천장-바닥면 아래위에 부착된 3개 사이에는 유리 대신 BIPV가 쓰였다. 옥상의 BIPV와 함께 전체 건물의 조명용 전력 중 25%를 생산한다. 사실 자랑거리는 내부에 더 많다. 1층 로비는 천장 높이가 14m, 호텔과의 사이를 채우는 아트리움 공간은 유리천장까지 높이가 무려 26m다. 여의도 전경련회관 로비보다 더 높다. 또 오피스 공간은 일반 건물보다 훨씬 높은 3m 천장에 기둥 수도 절반 수준으로 줄여 개방감이 뛰어나다. 전력·통신 케이블과 바닥 난방 시스템 등을 위해 바닥을 30㎝ 띄웠음에도 무려 4.5m의 층고를 확보해 가능했다. 기둥 수를 줄이는 것에는 콘크리트 타설 당시 사용한 ‘포스트텐션 슬래브’ 공법이 숨어 있다. 백준범 창조건축 설계총괄전무는 “이 공법은 기존보다 비용이 20% 정도 높지만 개별 층고는 물론 전체 층수도 높아지는 효과가 난다”며 “천장이 높아지고 기둥이 줄어들면 그만큼 채광량과 개방감이 커져 사무실 환경이 더 쾌적해진다”고 설명했다. 또 파르나스타워는 자연채광을 내부로 끌어들인 태양광 집광 조명 등의 설계로 미국 친환경건축물등급(LEED)에서 골드 등급을 받았다. ●10~20년 뒤가 기다려지는 건물 현대차그룹 GBC·국제교류복합지구 완공되면 삼성동 컨벤션타운 ‘상전벽해’ 수준 변화 기대감 파르나스타워는 앞으로 변화될 삼성동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4년 테헤란로 일대가 중심상업·업무지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1988년 즈음에는 삼성역 옆 한 블록에 대한무역협회 주도로 종합무역센터가 건립되면서 테헤란로 일대가 오피스 중심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종합무역센터는 트레이드타워(무역회관), 코엑스(종합전시장),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코엑스, 도심공항터미널, 아셈타워 등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국제적인 컨벤션 공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오는 2021년 말께 앞서 말한 현대차그룹 GBC와 더불어 서울시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공사까지 마무리되면 일대에 ‘상전벽해’ 수준의 변화가 예상된다. 파르나스타워가 단순히 빌딩 하나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설계자 인터뷰 - 창조종합건축사무소 백준범 설계총괄 전무 “파르나스타워는 보는 방향마다 다른 디자인 즐길 수 있는 건물” “파르나스타워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보는 각도마다 다른 입면(파사드)을 보여주는 빌딩입니다. 단순히 직사각 기둥 형태가 아니라 곡면과 사선으로 처리된 빌딩의 네 개 모서리, 외벽 전체를 덮고 있는 반사유리 사이 투명유리로 처리된 돌출·함몰 부분, 수직성을 강조하는 루버 등 다양한 디자인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백준범 창조건축 설계총괄 전무는 언뜻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파르나스타워 외관이지만 조형적인 고려가 잘 스며 있는 건물이라고 강조했다. 동부타워·포스코빌딩·강남타워·스타타워 등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가 쌓여 있는 테헤란로에서 주변과의 조화를 강조했지만 진보된 기술과 현재의 디자인 경향 역시 반영돼 있다는 얘기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비바람에 마모되고 깎인 신전 기둥처럼 주변 건물들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리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진보한 기술과 디자인을 세련되게 반영한 현대 건물이지만 혼자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변 건물에 녹아드는 형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사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중간에 호텔 구역을 사무실로 바꾸는 것도 복잡했지만 현재 사용 중인 두 건물 사이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장애가 많았다. 더 어려웠던 것은 기존 지하 4개 층 밑으로 다시 주차장 4개 층을 추가하는 작업. 소위 ‘뜬구조공법’을 적용해 기존 시설을 구조물로 받쳐놓고 밑을 파들어가 지하를 건설하는 난공사였다. 백 전무는 “명동 신세계백화점이나 서울시청에서도 이처럼 지하 증축이 있었지만 파르나스타워의 경우에는 무려 4개 층을 추가하는 공사였다”며 “바로 옆 호텔의 영업에 영향이 없도록 무소음·무진동으로 진행해야 해 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공사에서는 3차원 설계 방식인 BIM 설계를 적용했다. 2차원 도면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공종 간 공간 간섭을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체크하고 그에 맞춘 자재를 공장에서 바로 들여와 현장서 조립하는 형태로 공사가 진행됐다. 벽면에 구멍을 뚫다가 강선을 훼손하면 구조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포스트텐션 슬래브’ 방식 공사에서 필수적인 방식이다. 그는 “시공사인 GS건설 추계로는 공사비 중 200억원 정도가 BIM 설계로 절약됐다”며 “3차원 설계로 공사 결과를 미리 확인한 후 자재를 주문하고 현장에서 도면 대신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공사하는 것은 파르나스타워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유기자 -
[건축과 도시] 모두를 위한 건물...'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
부동산 주택 2016.09.09 16:27:11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시립대. 캠퍼스 정문을 통과해 오른쪽 길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유리가 외관을 감싸고 있는 건물과 마주한다. 마땅히 주 출입구라 불릴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어 헤매는 것도 잠시. 차량이 다니는 주도로와 맞닿아 있는 붉은빛의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으로 진입할 수 있다.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넓은 광장을 통해 내외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건물. 법학관과 체육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가 그 주인공이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다 공간 단절 없이 연결된 2개 동의 건물 사용자 의도 따라 내부공간 변화가능 건물의 첫인상은 얼핏 보면 평범하다. 통유리가 건물 외관 대부분을 감싸고 있다는 점을 빼놓고는 특별한 점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건물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 내외부를 이동하면서 느낀다. 크게 보면 체육시설인 웰니스센터와 법학관 두 개의 동으로 구성된 건물을 들어가고 나올 때 모든 이동 경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주 출입구를 특별히 두지 않은 덕분이다. 건물 곳곳에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마련돼 있어 공간의 단절을 느낄 새가 없다. 복도 끝에 위치한 계단 역시 개방감을 강조해 이동자 간의 소통이 가능하게 했다. 건물을 설계한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개인적으로 이 건물을 계획할 때 내부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했다”며 “학교 내에 위치한 건물인 만큼 어떤 과나 시설이 들어와도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동시에 사용자들이 공간 곳곳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고 말했다. ●공공성 확보한 건축 설계 체육관 옥상이 소통과 휴식·이동공간 기존의 고정관념 깬 공간구성 돋보여 외관이 평범해 보인 또 다른 이유는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썼던 나무 데크로 구성된 커뮤니티 공간이 마치 건물의 일부가 아닌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치한 탓이다. 웰니스센터와 법학관이라는 전혀 다른 역할의 공간은 웰니스센터 옥상에 넓게 설치된 나무 데크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공간은 법학관 가장 높은 층부터 차량이 다니는 주도로까지 길게 연결돼 있다. 일반적인 체육관 옥상이 돔 형태로 구성돼 활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체육관 옥상을 소통과 휴식·이동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공공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건물을 처음 계획할 당시부터 의도된 모습이었다. 건축주인 서울시립대는 장 소장에게 법학관과 일반 강의실, 체육관 세 곳이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것 외에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장 소장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건물 설계를 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웰니스센터 내에 마련될 테니스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많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된 목표가 있었다”며 “체육관 옥상의 나무 데크 계단이 차량이 이동하는 1층 도로까지 연결되는 것도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건물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설계자 의도 알아주는 사용자들 야외 강의·작은 공연 펼쳐지는 나무데크 학생은 물론 인근 주민 즐겨 찾는 쉼터로 건물을 설계하는 이들이 가장 보람될 때는 아름다운 미관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설계자의 의도 이상으로 사용자들이 건물을 활용하는 경우일 것이다. 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가 바로 그런 사례다. 소통 공간으로 사용되기를 기대했던 나무 데크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구름다리와 이어지는 넓은 무대에서는 야외 강의나 소규모 공연도 진행된다. 웰니스센터 내의 헬스장 앞에서 만난 김씨(24·국사학과 4학년)는 “체육관 옥상의 나무 데크는 계단으로서의 주된 역할에 더해 학생들을 서로 이어주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대학생활 내내 날씨가 맑은 날이나 저녁 즈음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나무 계단에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의도된 공간의 기능이 명확하게 드러난 점이 주효했다. 당시 심사에 참여한 위원들은 “건물 지하에서 고층까지 연결되는 데크의 기능이 명확하다”며 “교육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로 느껴진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 설계자 인터뷰 -장윤규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소장 “외적 디자인 집착하기 보다 건물 개념 설정하는 게 우선” “설계를 할 때마다 프로젝트에 맞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뛰어듭니다. 건물이 들어갈 위치나 쓰임새, 사용자들의 연령대나 특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좋은 건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는 설계 당시 정했던 목표가 잘 실현된 건물이라고 자부합니다.” 성북구 운생동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장윤규(사진) 소장은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건물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 건물이 도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그런 생각은 새로운 건물을 설계할 때마다 도시와 건물의 관계를 생각하며 적합한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었다.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장 소장의 특성 때문인지 건축사사무소 건물 역시 일반적인 사무실의 모습과는 달랐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어서다. 1층 대문을 통과하면 바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오고 그 길의 끝에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마당 정원이 펼쳐진다. 그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원이 있는 곳을 사무실로 정하게 됐다”며 “밖에서 보기에는 영락없는 단독주택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업무공간으로서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 사용 방식이나 특징보다는 미적 디자인 등에 집착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장 소장의 철학은 뚜렷했다. 설계하는 건물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먼저 설정해야만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설계를 하다 보면 각종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탓에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먼저 건물의 개념을 정하고 그에 맞춰 형태를 완성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건물을 설계해나가는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장 소장은 “우리만의 건축, 나만의 건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크게는 한국 건축의 독창성, 작게는 나의 독창성을 확실히 찾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건축과 도시] 아파트 공동체 철학 담은...'LH 강남 힐스테이트'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9.02 16:00:31아파트가 우리 주거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사라져가고 있다. 이는 주거 공간이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적 폐쇄성과 함께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 ‘누가 내 이웃인지 모르게 되는 개방성’이라는 모순된 개념이 아파트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0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설계 공모해 지은 ‘LH 강남 힐스테이트’는 어느새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주거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라 할 만하다. 건물 가운데 공간을 가둬놓아 자칫 폐쇄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모습은 오히려 그 공간 속에서 걷고 대화하는 사람을 우리 동네 사람임을 확신시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모든 세대의 현관 앞을 지나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순환식의 복도는 중앙 정원의 건너편에 사는 어느 누구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함께 개방감을 주고 있다. ●중정(中庭)을 통한 독립과 통합 오각형·육각형 건물에 둘러싸인 중앙정원 각각의 주택 하나로 모은 ‘소셜믹스’ 시도 ‘LH 강남 힐스테이트’는 LH가 설계공모를 통해 공동주택 설계경험이 많은 ‘선진엔지니어링종합건축(대표 정종화)’에 설계를 맡겼으며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사업에 참여한 발주처와 시공사·설계사가 수많은 경험을 가진 만큼 실험적인 시도가 가득해 여러모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선 전체 단지는 5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ㅡ’자형이나 ‘ㄱ’자형·‘ㄷ’자형이 아닌 ‘5각형’이나 ‘6각형’ 등 다각형의 건물이 중앙 정원(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건물의 한 곳이 뚫려 있어 외부에서 중정으로 들어와 다시 건물 현관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는 식이다. 이 때문에 각 동은 독립적이지만 또한 통합적인 공간이다. 설계사인 선진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는 건물 하나일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건물 하나가 독립된 하나의 단지가 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중정은 나무와 놀이터·운동기구와 산책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애초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정원이 아니라 유럽의 공원과 같이 잔디와 벤치가 있어 앉아서 쉴 수 있는 빈 공간으로 설계됐지만 한국적 정서를 반영해 다소 바뀌었다. ●공공의 특징 살리면서도 일탈 꿈꾼 아파트 반지처럼 500~600m 이어진 편복도 이웃과 인사 나누는 산책로처럼 이용 건물 내부 설계도 다양하다. 505동의 경우 ‘중복도식(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세대가 들어서 있는 형태)’으로 지어졌다. 흡사 호텔 내부와 비슷한 모습이다. 복도 가운데쯤 외부에 노출돼 있는 휴게 공간이 있다. 중복도식 건물의 단점 중 하나인 환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인 공간이자 해당 층의 주민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의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중복도식과 달리 ‘편복도식’으로 설계된 다른 아파트 동은 복도가 반지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다. 동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500~600m는 족히 된다. 복도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웃과 마주칠 수 있으며 중정의 곳곳을 살펴볼 수 있어 산책로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민간 아파트와 달리 크기가 다른 주택들이 한 건물에 모여 있게 만든 것도 특징적이다. 이른바 건물 내부에서도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셜믹스’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건물은 부정방형이지만 세대 내부 설계는 여전히 내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판상형’의 공공아파트 전통을 잇고 있다. 때때로 복도를 위아래로 감싸는 형태로 설계된 복층형 아파트와 같은 파격적인 일탈도 시도하고 있다. 선진엔지니어링 관계자는 “LH가 처음 설계를 위한 입찰 안내서를 보내올 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것이 새로운 아파트 유형을 제안하라는 것이었다”며 “도대체 아파트에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말했다. ● 통일된 디자인 속 변화와 다양성 공존 롤러코스터 같은 옥상…슬라이딩 윈도 건물 곳곳 설계자 번뜩이는 발상 눈길 전체적인 디자인도 특색이 있지만 건물 곳곳에서 보이는 설계자의 ‘반짝’거리는 발상은 건물을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외관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창문에 설치된 슬라이딩 윈도(미닫이창)다. 슬라이딩 도어가 없는 상태에서는 건물의 외관은 층을 나눠놓은 평행한 선만 눈에 띈다. 위 세대의 창문과 아래 세대의 창문이 똑같은 곳에 설치돼 외관에 통일감은 느낄 수 있어도 변화는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거주민들이 창문에 설치된 슬라이딩 도어를 완전히 닫아두거나 반쯤 열어두고 있어 외관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같은 동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곳은 18층에 달하고 또 어떤 곳은 6층에 불과하다. 이는 건물 옥상이 롤러코스터처럼 위로 솟았다 아래로 내려갔다 하는 모습을 하게 만들었다. 바람이 그 길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불어와 사방이 막혀 있는 중정에서도 전혀 답답한 느낌을 들지 않게 하고 있다. 선진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높이를 달리해 들쭉날쭉한 건물의 스카이라인은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이 꼭 사각형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라며 “아이들에게 서 있는 곳마다 다른 형태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다양한 사고를 가지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 주공 아파트의 변신 ‘밋밋한 주공 아파트’는 옛말 … 설계 혁신 주도한 LH의 실험정신 한때 ‘주공아파트’로 불렸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아파트는 서민들의 아파트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서민 아파트’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다. 네모 반듯한 판상형에다 내부설계도 3베이(3개의 방과 거실이 아파트 전면에 배치된 형태)가 대부분으로 큰 고민 없이 지어진 아파트로 받아들였다. 공기업이 짓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마감재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으로 사용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국내 아파트 문화는 LH의 실험정신으로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됐다. 여전히 판상형 사각형 아파트가 주를 이뤘지만 때때로 민간 건설사가 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혁신적 설계와 개념을 LH 아파트가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0년대 말부터 국내 아파트에 친환경 설계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부산 당감지구 공공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계단식 테라스 구조로 건물을 짓고 단지 내에 개울을 만드는 등 파격적인 설계가 돋보였다. 지금 위례신도시나 광교신도시 등 주요 택지지구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테라스하우스의 원형인 셈이다. 이후에도 LH 아파트는 혁신을 거듭했다. 제주도 노형지구 ‘뜨란채’는 제주도 자연환경과의 조화가 돋보인 설계를 선보였으며 판교 휴먼시아 e편한세상은 타운하우스 같은 아파트 설계를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2010년 분양한 판교신도시의 ‘월든힐스’는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일본의 실험주택으로 유명한 야마모토 리켄, 노키아 본사를 설계했던 핀란드의 페카 헬린, 미국의 마크 맥 등이 설계자로 참여하면서 LH 공공아파트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변화시킨 사례였다. 가장 최근에는 ‘LH 강남 힐스테이트’와 이웃하고 있는 서울 강남지구 A4블록 ‘강남브리즈힐 아파트’를 들 수 있다. 이 아파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부 평면보다 외부공간 활용에 초점을 맞췄다. 이 때문에 아파트라는 공동주거시설 속에서 옆집과 어떻게 대지를 공유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 아파트라는 극찬도 받았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
[건축과 도시] 남산을 감싸안은 건축....'밀레니엄 서울 힐튼’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8.26 16:35:07서울의 허파로 불리는 남산. 그 산자락에는 여러 호텔이 둥지를 틀고 있다. 밀레니엄서울힐튼·서울신라호텔·그랜드하얏트서울·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등 쟁쟁한 호텔들이다. 이들은 지난 1960~1970년대에 건설된 곳들로 남산의 풍치와 기운을 누리기 위해 자리 잡았다. 이 중에서도 남산 자락의 끝나는 지점에 위치해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곳이 있다. 바로 밀레니엄서울힐튼(5성·전 서울 힐튼)이다. 서울 남산시립도서관과 서울역 사이 내리막에 있는 힐튼호텔은 남산을 등지지 않고 바라보는 형태다. 특히 양팔을 벌린 듯한 병풍형의 건물은 남산을 포옹하는 모양새다. 이 호텔을 설계한 김종성 건축가(83·서울건축 명예대표)는 “남산 힐튼호텔은 다른 호텔과 다르게 대지의 높은 쪽에서 호텔 로비에 들어서게 된다”며 “이 경사진 대지를 십분 활용해 설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 내부에 아파트 6개 층 높이 광장 호텔 건축경험 없는 김종성 설계자 낙점 “당시 기술로 구현 쉽지 않은 경지 이뤄내” 호텔 정문을 지나쳐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넓고 환한 공간이 펼쳐진다. 지상 3층 맨 꼭대기에 있는 수백 개의 격자 모양 창에서는 햇빛이 쏟아진다. 1층 로비에는 오크나무로 장식된 벽과 이태리석으로 만든 분수, 그리고 대리석 층계 등이 도입돼 중후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느낌이다. 가장 큰 특징은 지하층인 로어 로비부터 2층 천장까지 아파트 6개 층 높이의 공간을 트이게 한 ‘아트리움(atrium·건물 내부 중앙의 안마당 같은 공간)’이다. 연회장 등의 기능을 내리막 지형상 지하층인 로어 로비 안쪽에 몰아 배치해 공간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1층 로비에 서면 건너편 끝까지 훤히 보일뿐더러 로어 로비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김종성 건축가는 이 아트리움을 호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으로 꼽았다. 그는 “남산 힐튼호텔은 동쪽 정문에서 아트리움을 지나 서쪽 로비 라운지까지 64m의 깊이를 방문객의 시선이 서서히 수평으로 옮겨지게 한다”며 “그 가운데에 자리 잡은 아트리움이 로어 로비에서 2층 천장 스카이라이트까지 18m의 수직적 확장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이고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지금 다시 설계한다고 해도 비슷할 것” 로비서 2층 천장까지 18m 수직으로 연결 건너편 끝까지 훤히 보이는 공간구성 탁월 이 호텔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에 지어졌다. 대우개발(당시 동우개발)이 1977년 12월14일 힐튼인터내셔널과 호텔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하면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김 전 회장은 호텔의 설계자로 외국에서 공부하고 경험 있는 젊은 건축가를 원했고 그러한 사람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김종성 건축가가 낙점됐다. 그전까지 김종성 건축가에게는 호텔 건축 경험이 없었음에도 김 전 회장이 믿고 맡겼다는 후문이다. 남산 힐튼호텔은 1979년 3월 건물 공사를 시작해 1983년 12월7일에 전면 개관했다. 이 호텔은 당시 국내 설계 기술로는 구현하기 쉽지 않은 경지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남산 힐튼호텔은 세계 힐튼호텔 중 가장 으뜸”이라며 “김종성 건축가는 한국 건축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김종성 건축가는 당시의 예산과 기술 내에서 구상한 바를 모두 실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힐튼을 설계할 1970년대에 당시 한국사회에서 조달할 수 있으며, 예산이 허용하는 기술을 구사하려 했고 기술의 한계로 당시 실현하지 못한 구상은 없었다”며 “40년 지난 지금 시점에 그 대지에 다시 호텔을 설계한다고 해도 호텔 기능들의 인접 관계는 같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와 비슷한 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40여년 만에 제2의 탄생 앞둬 김우중 대우 회장 일가가 애지중지한 호텔 지상 20층 별동 증축 … 2019년 준공예정 대우그룹이 소유한 두 개의 특급호텔 중 하나였던 남산 힐튼호텔은 대우 일가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이 호텔의 23~24층은 개관 이후부터 쭉 김 전 회장의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 전 회장의 아내인 정희자 여사는 호텔을 소유한 대우개발의 회장직으로 있으면서 호텔 인테리어부터 파스타 재료까지 구석구석 신경을 기울였다. 이런 가운데 1998년 IMF 여파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호텔 역시 새로운 주인을 찾게 된다. 1999년 CDL호텔코리아가 대우개발로부터 2,600억여원에 사들인 것. CDL은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홍룽그룹 자회사로 싱가포르 최대의 부동산 투자개발 회사다. CDL호텔코리아는 2008년에 차익 실현을 위해 호텔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다. 다만 총 5,800억원에 매수하기로 했던 국내 개발회사 강호AMC가 PF대출에 실패하면서 거래는 최종 무산됐다. 현재 힐튼호텔은 별동 증축을 통해 제2의 탄생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가 5월 건축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증축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지하 8층~지상 20층, 연면적 6만5,287㎡ 규모의 별동 2개(가족동 210실, 비즈니스동 306실)가 들어선다. 착공은 오는 9월, 준공은 2019년 2월 예정이다. 별동 증축에 대해 김종성 건축가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2개 별동이 기존 객실동 매스(덩어리)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 외벽 디자인이 기존건물과 질감·재질에서 동질성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객실로 구성되는 고층부는 효율이 우선이나 공공 기능으로 구성되는 저층 매스들은 비례와 형태의 조화를 우선으로 만들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 설계자 김종성 서울건축 명예대표 인터뷰 “비·바람 막는 데서 더 나아가 삶의 질 높이는 게 건축의 본질” 밀레니엄서울힐튼을 설계한 김종성(서울건축 명예대표·사진) 건축가는 한국의 모더니즘 1세대 건축가로 꼽힌다. 그가 설계한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 아트홀), 경주 우양미술관(옛 아트선재미술관), 서린동 SK그룹 빌딩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런 김종성 건축가에게도 밀레니엄서울힐튼은 뜻깊은 건축이다. 당시 그는 미국 일리노이공대(IIT)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힐튼호텔의 설계를 계기로 귀국하게 된 것. 이후 서울건축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건축 활동에 돌입했다. 그가 말하는 건축의 본질은 ‘인간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김 대표는 “건축의 시작은 기능을 충족하는 것인데 단순히 기능 또는 수요를 충족하는 데 그치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는 ‘건축’도 있다”며 “결국 건축의 본질은 한 마디로 비·바람 막는 데서 더 나아가 인간생활의 질을 높이게 하는 사명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건축 철학과 미학은 세계 현대 건축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와 연관이 깊다. 그는 서울대 건축학과에 재학하던 중 미국 일리노이공대 건축학과에 들어가 미스 반데어로에를 만난다. 이후 미스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자 동료로서 미스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캐나다 토론토 도미니언센터 프로젝트 등에 참여한다. 한국 건축계에서의 공로도 적지 않다. 그는 지난 2011년 세계건축연합(UIA) 총회 서울 유치위원장으로 선임됐고 결국 그해 총회에서 서울은 2017년 세계건축대회 개최지로 선정됐다. 세계건축대회는 UIA가 1963년부터 3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건축계 최대 행사다. 그는 “2017년 UIA 서울 총회를 계기로 한국 건축계가 완전히 국제적으로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범사회적인 홍보와 정신적 및 물질적 지원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종성은 여전히 한국 건축의 최전선에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 프로젝트의 설계책임 건축가(Director of Design)로 선임된 것.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가 지향하는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향한 끝없는 혁신,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위한 비전이 GBC 단지와 건축물에 드러나도록 다양한 디자인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올바른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완성된 GBC 프로젝트가 한국 건축계 도약의 한 이정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제 소망”이라고 말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
[건축과 도시] 서울 도심 프라임빌딩의 효시 '서울파이낸스센터'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8.05 18:00:24도심은 서울을 대표하는 업무 지구다. 600년이 넘는 수도 서울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들도 많아 외국계 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업무 지구로 알려져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JP모건·모건스탠리 등 대형 외국계 투자은행(IB)도 모두 도심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한때 도심 업무지구도 강남 테헤란로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 신규 오피스빌딩이 대거 쏟아지면서 오피스 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준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이후 그랑서울·디타워·타워8 등 도심에 프라임 오피스빌딩이 대거 공급되면서 강남에 빼앗긴 서울 오피스 시장의 패권을 되찾아왔다. 서울파이낸스센터는 다시 한 번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도심 오피스 시장을 대표하는 대형 빌딩이자 도심 프라임 빌딩의 효시로 여겨지는 건축물이다. ■ 호텔에서 오피스로...사연 많은 건축물 건축비리·자금난에 공사 중단·재개 되풀이 싱가포르투자청 인수... 2001년 돼서야 완공 서울파이낸스센터는 착공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준공되기까지 사연이 많은 건축물이다. 이 빌딩은 애초 호텔로 지어질 계획이었다. 1984년 해당 부지에서 10층 규모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던 유진관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형 호텔로 재건축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중간중간 건축 관련 비리사건이 터지고 자금난도 불거지면서 공사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결국 1993년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이 유진관광을 인수하면서 사업이 재개됐다. 이후 김 회장은 당초 계획대로 호텔이 아닌 업무시설로 재인가를 받고 서울파이낸스센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에도 사업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당시 김 회장은 서울파이낸스센터를 지금보다 8층 높은 38층 건물로 세우기 위해 고도제한이 풀리기를 기다리다가 사업이 지연되는 바람에 결국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유진관광도 부도가 났다. 이후 2000년 싱가포르투자청(GIC)이 4억달러(약 3,500억원)에 서울파이낸스센터를 인수했으며 2001년 완공이 됐다. 서울파이낸스센터는 GIC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들인 부동산이다. ■ 흉물에서 도심 랜드마크로 외국계 회사 유치위해 착공부터 ‘최고’ 표방 20년간 방치된 애물단지서 금융메카로 변신 20년 가까이 흉물로 방치됐던 건물이지만 완공 이후에는 도심의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건물의 가로, 세로 길이 및 높이가 각각 36m, 106.6m, 124.43m(최고 높이)에 달하는 대형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실제 밖에서 보면 서울파이낸스센터는 인근의 주변 건물을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워낙 규모가 커서 생긴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당시 서울파이낸스센터 설계에 참여한 이원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상무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준공 이후 남산의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서울 사대문 안의 고층 건물은 입면의 폭이 50m를 넘지 못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며 “요즘 재개발하는 빌딩들이 같은 단지인데도 두 동으로 지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애초에 외국계 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건물을 지을 당시부터 최고를 표방한 점도 서울파이낸스센터가 도심을 대표하는 프라임 빌딩으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이다. 실제 현재 서울파이낸스센터 입주사 중 대부분이 외국계 회사다. 이 빌딩을 관리하고 있는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총 77개의 입주사 중 83%인 64개가 외국계 회사다. 싱가포르 대사관을 비롯해 굴지의 외국계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시민들에게 다가간 건축물 ‘사대문’ 역사성 고려 건물 외벽 화강암으로 시각적 편안함 위해 1~7층 넓은구조로 설계 최근 도심에서 지어지는 신축 건물들의 외관은 유리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랑서울과 타워8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서울파이낸스센터는 건물 외관이 화강석으로 돼 있다. 사대문 안이라는 역사적인 장소를 감안해 클래식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당시 설계에 참여한 심재현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사대문 안의 건축물들은 디자인적으로 돌을 주재료로 많이 사용했다”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유리로 된 건물은 사대문 안의 맥락과 맞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 어울리는 재료를 찾다 보니 화강석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 지역에 공존하는 건물들이 너무 자기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을 강조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불편해진다”며 “주변 건물들이 일관성과 동질성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심 교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사대문 안과 그 외 지역이 차별화된 계획을 가지고 개발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울파이낸스센터가 다른 고층 건물들과 구별되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저층부인 베이스와 중간 부분인 몸통, 맨 꼭대기 머리 세 부분으로 구분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들이 고층 건물을 대할 때 느끼는 공포감을 완화시켜 주기 위함이다. 심 교수는 “사람들은 아래로부터 위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고층 건물 앞에 서면 건물이 쓰러질 것 같다는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며 “서울파이낸스센터는 1~7층은 좀 더 넓은 구조로 설계하고 윗부분을 안으로 들여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건물을 대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카페·식당찾는 발길 줄이어...리테일 몰 빌딩 가치 향상에 한몫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1~2층과 3층 일부 공간을 사용하는 리테일몰은 국내 오피스 리테일 개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입주사들의 비즈니스를 돕는 고급 식당은 물론, 주변 유동인구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특색 있는 식당과 카페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파이낸스센터의 리테일몰 개발은 지난 2000년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인수를 하면서 시작됐다. 해외 투자경험이 풍부한 GIC가 리테일 개발을 제안했고 현재 세빌스코리아 리테일팀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해외 시장조사를 통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리테일몰을 개발했다. 서울파이낸스센터의 독특한 구조도 리테일몰 활성화에 영향을 미쳤다. 서울파이낸스센터는 워낙 입면의 길이가 길다 보니 건물의 한쪽 끝은 세종대로에 면해 있고 반대편 끝은 무교로와 만난다. 설계에 참여한 심재현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당시 세종대로 쪽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고 무교로 쪽으로 보행자가 많았기 때문에 양쪽 보행을 연결하자는 취지에서 세종대로와 무교로 양쪽에 출입구를 만들고 갤러리 형태로 길게 로비 공간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계는 다른 오피스빌딩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스트리트형 리테일몰을 탄생시켰다. 구성미 세빌스코리아 차장은 “스트리트형 구조이기 때문에 시야나 동선이 막히는 경우가 없고 동선이 단순한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리테일몰의 출입구는 세종대로와 무교로, 그리고 1층 로비 중간에서 연결되는 세 곳이다. 이를 고려해 세종대로 쪽은 주로 가격대가 높은 고급 식당을 입주시켰고, 무교동 쪽은 길을 가는 보행자들도 쉽게 들를 수 있는 식당으로 구성했다. 또 입주사 직원들이 휴식을 위해 리테일몰을 찾거나, 세종대로와 무교로 양쪽에 위치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사람들이 디저트를 즐길 수 있도록 중간에 다양한 종류의 카페를 입점시켰다. 구 차장은 “기존에는 리테일 구성과 행사를 모두 입주사 위주로 계획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외부 보행자들이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
[건축과 도시] 성당건축 고정 관념 깬...'용인 보정성당'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7.29 15:48:52보통 성당 건물하면 떠올리는 것은 빨간 벽돌 소재에 검은 첨탑 위 십자가, 낮은 담과 정원의 성소 같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규모가 큰 개신교 교회가 대부분 현대적인 외양을 갖춘 것과 달리 가톨릭 교회는 규모에 무관하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정관념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콘크리트 골조에 한옥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지어진 서울 용산 천주교 순교성지의 새남터성당을 비롯해 새로운 형태의 건물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성당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보정성당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 관계자는 “성당 건축에 기본적인 원칙이 있고 교구별로 설계단계에서 심의를 거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것을 걸러내는 수준”이라며 “요즘에는 기존 종교적인 관념을 넘어 지역과 주민 의견에 맞춰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수직성과 빛 그리고 중량감 정육면체 외벽에 세로로 길게 낸 창 보는 방향따라 달라지는 입체감 이채 지난 2012년 봉헌미사를 올린 경기 보정성당은 서울 강남에서 차로 30여분, 지하철 분당선 보정역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골프장인 한성CC를 등지고 자리 잡고 있다. 기자가 본 성당의 첫인상은 사각 돌기둥을 뭉쳐놓은 듯 만만치 않은 중량감, 덩어리(mass)의 무게감이었다. 외벽에 세로로 길게 낸 창과 ‘줄눈’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육면체 단위의 단단한 질감이 전반적으로 건물을 이 땅에 잡아주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감이 이채롭다. 정면에서 보면 성당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서서히 솟아오르면서 그 정점에 십자가가 설치돼 있다. 십자가는 마치 쌓아올린 제단 위에 꽂힌 깃발 같았다. 설계자인 한철수 시건축 소장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수직성과 빛, 그리고 존재감(중량감)을 기본 요소로 삼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하늘에 대한 갈망’,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건축양식의 그 수직성이다. 그는 “유럽의 1,000년이 넘은 성당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수직성”이라며 “인간의 하늘에 대한 갈망이 하늘에 닿을 듯한 ‘고딕양식 지붕’으로 표현된다면 반대로 빛은 종교적 감응 이전에 (계시처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신성에 대한 교감의 전초”라고 설명했다. ●기존 모습과 다른 새로운 성당 밝고 쾌적한 커뮤니티 공간 확보 위해 성당 핵심공간 성전 과감하게 3층으로 그가 설계를 맡게 된 것은 성당 측의 요청이 먼저였다. 2009년 당시 신축을 준비하던 성당 건축위원회 위원이 서울 신사동 도산대로 변에 있는 ‘의화빌딩’을 눈여겨본 것. 의화빌딩은 한 소장이 설계한 작품. 흥미로운 것은 의화빌딩의 경우 육면체를 불규칙하게 쌓아올린 듯한 독특한 외양. 사람들에게 익숙한 국내 성당 모습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을 형태다. 현상공모를 통해 설계업체로 선정된 후에야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기존 성당 건물 형태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성당 건축위원회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성당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는 것. 설계를 맡은 한 소장에게는 ‘성당에 대해 정말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면 어떤 모습일지 알고 싶다’는 당부가 더해졌다. 크게 성전과 사제관, 커뮤니티시설로 구성되는 성당에서 그가 성전 다음으로 중점을 둔 것은 커뮤니티 공간이다. 땅값이 비싼 서울·수도권에서는 별수 없이 커뮤니티 공간이 지하에 배치된다. 성전으로 향하는 신도들의 접근성에 대한 배려가 크지만 성전 위에 다른 시설을 배치한다는 것이 역시 부담스럽기 때문. 하지만 지하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은 채광·환기 부족으로 어둡고 눅눅해지기 쉽고 그만큼 평상시에는 가기 싫은 곳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려를 반영해 보정성당의 성전은 3층으로 올라갔다. 대신 가장 볕이 좋고 밝은 서쪽에 성전까지 바로 이어지는 넓은 완만한 계단을 배치했다. 덕분에 학습관이나 각종 모임 장소가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는 신도·비신도 할 것 없이 오가며 어울리는 로비 공간과 사무·편의시설이 차지했다. 한 소장은 “1층은 아직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도 부담 없이 들어와 어울릴 수 있는 ‘회색지대’로서의 공간”이라며 “교리문답이나 소모임을 가질 수 있는 크고 작은 공간은 2층 동쪽과 공원 방향으로 배치해 밝고 쾌적하다”고 설명했다. ●절제된 성전…빛으로 채운 제단 천장·벽면 유리로 햇빛 끌어들인 성전 종교 건축물 위한 고민의 흔적 엿보여 성당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성전에 들어선 것은 오후3시가 넘어선 시각.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어두운 저편 제단 뒷벽 십자가상에서 빛을 쏟아냈다. 서쪽 벽면에 길게 낸 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붉게 푸르게 물들이는 대로 천장 유리에서 쏟아지는 자연 그대로의 빛과 어우러진다. 기도하는 자리는 어둡지만 벽면은 밝다. 동서 벽면에 블라인드처럼 길게 늘어뜨린 나무 재질의 루버가 천장 유리로 들어오는 빛을 끌어들이고 있어서다. 한 소장은 역시나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성전이었다며 “유리로 된 천장과 벽면 유리로 오후의 빛을 제단에 끌어들였지만 그 연출이 과도하지 않도록 신경썼다”며 “역으로 기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리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도 보이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놓치기 쉽지만 설계자가 종교건축물로서 고민한 흔적이 하나 더 있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성당 서편으로는 건물을 두르는 수로 같은 바닥분수가 조성돼 있고 이를 건너 성당 건물에 들어서게 돼 있다. 설계자가 의도한 것은 세속과 성역을 가르는 종교적인 경계의 의미다. 기독교에서의 물이란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를 떠올린다. 성당에 들어서는 한 걸음, 스스로 신자임을 한 번 더 각인하는 의미에서다. /용인=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설계자 인터뷰 - 한철수 시건축 소장 “새로운 울림 줄 수 있어야 사람에게 가장 좋은 건물” “가장 좋은 건물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울림을 줄 수 있는 건물이죠. 물론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가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조물로서의 기능성, 건축주의 요구, 도시계획적인 배려, 공공성 등을 모두 정리하고 솎아낸 후에야 자신만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죠” 한철수(사진) 시건축 소장은 건축물로서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만족시키면서도 독자적인 건축철학을 담은, 감동을 주는 건물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프랑스 롱샹성당. 동부의 시골 마을에 지어져 300명 정도 수용할만한 작은 성당이지만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프랑스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이다. “성당에 도착해서 외부에서만 3시간 가까이 구경했을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자연 채광과 촛불만으로 만들어내는 성당 내부의 빛도 좋았지만 구석구석의 형태나 비율이 완벽했죠. 계단 핸드레일 같은 디테일까지 본질적이면서 기발하다고 할까요. 사진으로는 1,000분의1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죠.” 그런 그는 자신이 설계한 보정성당에 대해 ‘실패하지 않은’ ‘괜찮은’ 정도라고 평가했다.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판단의 순간을 거칩니다. 종교적인 건축물이라고 해도 건축가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존 성당건축의 관행과 ‘성당답다는 것’, 그리고 신이라는 존재에서 오는 어떤 지켜야 할 것들과 건축가로서의 주관·자아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교회건축은 건축가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업입니다.”/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
[건축과 도시] 품위 있게 늙어가는...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7.22 14:09:59모든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간다. 이는 건축도 마찬가지다. 과거 유럽에서는 건축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깎이고 약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에 따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건물이 좀 더 천천히 늙어가거나 품위 있게 소멸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다. 하지만 근대건축으로 접어들면서 ‘늙어감’은 무조건 막아야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안에 위치한 ‘꿈마루’는 멋지게 늙어가는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지난 1970년 준공 당시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탄생한 이 건물은 1973년 어린이대공원 개원 시 교양관으로 활용됐다. 이후 전면 철거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근대건축 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리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꿈마루가 됐다. ●사라졌던 나상진의 건축 1970년 국내 첫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건축 기둥 위에 떠 있는 듯한 지붕 모습 ‘환상적’ 40여년간 ‘교양관’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던 꿈마루는 사실 아예 헐리고 새로 지어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설계도면을 본 조성룡 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는 오랫동안 덧붙여지고 훼손된 이 건축물이 원래 뛰어난 건축미를 가졌다는 점을 파악했다. 거의 잊혔던 1세대 건축가 고(故) 나상진의 작품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도면 속 건물은 네 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위에 지붕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면 속 원래 건축물에 대해 조 교수는 “환상적”이라고 표현했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시간과 장소의 흐름을 연결하는 커넥터로서의 건축(공간 2011년 9월호)’에서 “김중업의 프랑스대사관, 김수근의 공간사옥과 함께 한국 현대건축의 최고 걸작”이라고 밝혔다. 당초 이 건물은 나상진이 골프장으로 사용됐던 어린이대공원 터에 1970년 국내 최초 골프장 클럽하우스(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용도로 지은 곳이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골프장을 옮기고 대신 어린이를 위한 공원을 조성하라고 지시하면서 사용가치가 사라져버렸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관’으로 바뀌면서 노출 콘크리트에 페인트가 칠해지고 임시 합판 등이 덕지덕지 붙여졌다. 그 후 40여년 동안 어린이대공원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막상 원래 건축물이 가졌던 특색이 사라진 교양관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라진 건물이 된 것이다. ●소멸을 향해 가는 건축 사무실로 쓰기 위해 쓰기 위해 새로 지은 ‘집 속의 집’ 시간 지나며 썩는 재료 등 사용 리모델링에 나선 조 교수의 작업은 나상진이 탄생시킨 원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이 천천히 늙어갈 수 있도록 두는 것이었다. 40년 동안 필요에 따라 덧붙여진 외벽을 뜯어내고 콘크리트에 칠해진 페인트를 벗겨냈다. 강 위에 세워진 거대한 다리 같은 구조도 되살렸다. 클럽하우스로 사용되던 시절 골프장 조망을 위해 유리로 덮여 있던 외벽 부분에는 철제 창틀을 새로 설치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1970년대에 지어진 좋은 건축이었으니 당장 없애버리지 말고 올바르게 이용하다가 조금만 더 천천히 버리자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관리사무실 등으로 이용되는 3분의1의 공간은 ‘집 속의 집’ 형태로 새로 지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시민의 세금으로 짓는 공공건축인 만큼 건축비와 유지관리비를 줄여야 했다. 이에 따라 ‘집 속의 집’ 부분에만 전기와 수도 등이 들어오도록 하고 나머지는 내부인 듯 외부 같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꿈마루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바람과 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가운데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따라 빛이 천장에서 아래로 흘러들어오면서 이곳저곳으로 반사되기도 한다. ‘집 속의 집’ 역시 다른 공간처럼 시간을 거쳐 가며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 있도록 붉은 벽돌로 지었다. 조 교수는 “나중에 쉽게 썩는 재료를 쓰는 것이 설계 원칙”이라며 “자연재료인 벽돌이나 나무·쇠 등을 사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한 공간에 담긴 세 개의 시간 클럽하우스→교양관→꿈마루로 3번 변화 노출콘크리트의 거친 질감, 낯선 경험 제공 어린이대공원 터는 굴곡진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변해왔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비(妃)인 순명황후의 능이 있었지만 1926년 능을 옮기고 골프장이 조성된다. 이후 1970년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가 지어지고 3년 만에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뀐다. 이 중 꿈마루는 클럽하우스부터 지난 40여년간의 시간을 오롯이 담아 보여준다.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를 통해 나상진의 시간을 엿볼 수 있으며 군데군데 덧칠돼 남아 있는 교양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붉은 벽돌의 새 공간은 꿈마루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를 두고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저서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을 통해 “꿈마루는 시간여행을 떠나는 출입구”라고 지칭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간 속에서 꿈마루는 어떤 공간일까. 계단 옆 벤치, 옥상 위 피아노, 정원 안 테이블 등 내외부의 모호한 경계 속을 파고드는 이들에게 제 품을 내주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이 낯선 경험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조 교수는 “꿈마루를 노란 병아리색으로 칠해 아이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면서 성장해간다”고 말했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건축사 나상진은..... 건축가 김수근·김중업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만 나상진을 아는 이는 드물다. 나상진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잊힌 건축가다. 나상진은 192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40년 전주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실무에 뛰어든다. 이후 1950년대부터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1950~1970년대 대표적인 건축가로 자리 잡았다. 서울 남대문 그랜드호텔과 경기도청사, 후암동 성당, 제일은행 인천지점, 명동 한일관 등 150여개 건물을 설계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정부종합청사 설계안은 그에게 시련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1967년 현상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돼 착공까지 했지만 정부에서 몰래 미국에 설계를 맡겨 현재의 높은 건물로 탄생시켰다. 당시 나상진은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를 위해 옆으로 길고 상대적으로 층수가 낮은 건물로 설계했다. 한 시대를 대표한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나상진이 기억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조성룡 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는 그의 학력을 원인으로 꼽는다. 조 교수는 “많은 건물을 설계했는데도 불구하고 건축계에서조차 이름이 거론되지 않아 살펴봤더니 나상진 건축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더라”며 “학벌 위주 사회에서 그 배경이 없으니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렸다”고 설명했다. 군사정권 시절 밀실정치가 이뤄지던 안가 등 정부 관련 시설을 다수 설계한 것도 약점이 됐다. 정치적인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을뿐더러 보안상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못한 작품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건축과 도시] 시선 따라 색다른 모습...'판교 엑소우스'
부동산 주택 2016.07.15 14:29:46서울 강남에서 차로 20분여를 달려 도착한 서판교의 단독주택 밀집지역. 지난 2006년 공급될 당시만 하더라도 미분양을 기록하며 수요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곳인 만큼 몇몇 부지가 비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미 대부분의 필지에 고급 단독주택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고 잘 정비된 길과 조용하고 쾌적한 주변 환경 등은 저절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을 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연 돋보이는 외관을 가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종이접기를 해놓은 듯한 모습으로 시원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주택이 서판교의 고급주택촌 내에서도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엑소우스(X+HOUSE)’다. ● ‘건축 문외한’ 부부의 도전 꿈꾸던 집 짓고 싶었지만 경험 없어 고전 이현수 호수건설 사장 만나 만족스런 결실 엑소우스의 건축주는 조성준·오현정 부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두고 있는 부부는 본래 일반적인 아파트에 거주했다. 자녀들이 커가면서 가족이 중심이 될 수 있는 단독주택에서 보다 많은 추억을 쌓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에 서판교에 집을 짓고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오씨는 “원래 닫혀 있고 갑갑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좀 더 개방적이고 시원한 주거공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일은 순조롭지 못했다.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부부가 직접 설계사무소나 시공업체를 찾아다니고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들을 도운 것은 남편과 가까운 선배인 이현수 호수건설 사장이었다. 이상적인 집을 짓고는 싶었지만 경험이 없어 고전하던 부부의 부탁을 이 사장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사장은 “엑소우스 건축의 총괄 프로젝트 매니징을 맡아 사내의 인적 자원과 협력업체 등을 동원해 건축을 진행했다”며 “건축주와 유기적인 대화가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 완성된 주택의 만족도가 높을 수 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세련되고 색다른 외관 ‘붉은 도료+흰색 가변’ 세련된 조화 돋보여 도로쪽 창 배치 최소화한 과감함도 눈길 엑소우스의 외관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네모 반듯한 모습으로 쉽게 질릴 수 있는 일반적인 주택의 디자인과는 전혀 다르게 각각의 방향에서 뻗어나오는 사선들이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덕분이다. 현대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 색의 배합도 엑소우스의 외관에 힘을 보탠다. 구조를 담당하는 벽체는 붉은 도료를 사용하고 그 위를 흰색 가변이 덮어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외관을 구현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완스디자인연구소의 설계안을 기본으로 건축주와의 협의를 거치며 완성해나갔다. 엑소우스라는 이름은 조씨가 운영하는 회사 이름에서 ‘엑스(X)’라는 단어를 따와 ‘하우스(HOUSE)’와 결합해 만들었다. 독특한 디자인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창의 배치다. 외부에서 봤을 때 집에 창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노출을 최소화했다. 이 사장은 “도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창의 배치를 최소화해 사생활의 노출을 막았다”며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은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질 수 있는 수준에서 독특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달라진 가족의 삶 뻥 뚫린 천창 통해서 집안 곳곳에 햇빛 내력벽 없는 무주공법으로 거실도 ‘시원’ 외관을 둘러보며 들었던 의문 중 하나는 불을 켜지 않고 집 안에서 생활이 가능한 지의 여부였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의문은 완벽하게 해소된다. 마치 야외에 나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햇볕이 집 안 곳곳을 밝히고 있어서다. 이런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주택 외벽 대신 천창에 통유리를 둔 덕분이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위를 올려다보면 뻥 뚫린 천창으로 스며드는 빛을 마주할 수 있다. 엑소우스의 거실 역시 특별하다. 별다른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소파 하나만 둔 채 시원스러운 개방성을 강조하고 있다. 내력벽이 없는 무주공법을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2층은 가족 각자의 방이 있는 사적인 공간으로, 거실은 외부와 가족들은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의도했다. 주거 공간의 변화가 가족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옮긴 후 반년 정도가 지났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 오씨는 “답답하지 않고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옥상에서 고기를 굽고 언제든지 야외의 녹지를 즐길 수 있는 점 등은 아파트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생활”이라고 강조했다./판교=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인터뷰 - 이현수 호수건설 사장> “아파트 만큼 힘든 단독주택 짓기 경험 … 회사 전문가들 모두 달라 붙어” “단독주택 건축을 진행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동주택 시행 사업을 주로 해왔는데 평소 친동생처럼 여기는 건축주의 부탁을 받고 취미생활을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습니다. 아파트 1,000가구 짓는 것만큼 힘이 드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시행 업계에서 역량을 발휘해온 이현수(사진) 사장이지만 그도 단독주택 건설만큼은 해본 경험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마치 본인의 집을 짓는 것처럼 즐기면서 최선의 노력으로 엑소우스를 완성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이 사장은 단독주택에 대한 철학도 확고했다. 조그만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부터 삶이 시작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시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흔히 통 건축이라고 일컫는 높은 빌딩들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내가 걷고 운전하면서 눈높이에서 마주하는 낮은 건물들도 그에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한다”며 “단독주택 등을 짓는 과정에서부터 인테리어 측면을 신경 쓰는 것이 살맛 나는 도시를 만드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엑소우스를 지을 때 외관의 디자인을 먼저 완성하고 내관을 채워나간 것도 그런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 우선 도시와의 연결을 이뤄내고 집 내부는 철저한 사생활의 공간으로서 가족들이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실제로 집 내부 흰 벽에는 액자나 인테리어 소품 등이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았다. 사용자가 살아가면서 각자의 감성대로 공간을 꾸며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그는 앞으로도 조성준씨 부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랬다. 건축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가야 좁게는 본인이 사는 지역, 넓게는 우리나라의 공간 전체가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사장은 “좋은 공간을 이뤄내는 건물이라는 것은 저렴하더라도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고 그만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의 인식도 아름답고 비싼 건물에 맞춰질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유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에 집중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요즘 이태원에서 가장 뜬다는 그곳 가봤더니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7.08 14:18:31장소는 인간의 경험을 통해 그 정체성이 형성되며 특수한 사회와 역사적 관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런 면에서 이태원은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 속에서 특별한 정체성이 형성됐고 지금도 그 의미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90년대 이전 이태원은 주한 미군기지의 영향으로 퇴폐적으로 변형된 미국 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이태원은 한국에서 소위 ‘문화 세계화’의 중심지가 됐다. ‘좀 놀 줄 아는 녀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태원 클럽에 한두 번은 출입해봐야 했고 길거리의 외국인과 ‘헤이-요(hey-yo)!’를 외치면서 어깨 인사 정도는 한 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태원은 지배하는 문화와 사람들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무한한 ‘소비와 배설의 장소’라는 점에서는 1980·1990년대의 모습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이태원은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곳이 아닌 창조해내고 즐기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갤러리 두루, 갤러리 골목, ‘다시서점&초능력’ 등 다양한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리고 지난해 완공돼 운영 중인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맞은편에 서 있는 ‘스트라디움’과 함께 단지 소비하는 것이 아닌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는 장소로서 이태원의 정체성에 또 다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행인들 눈길 사로잡은 건축물 리셉션 공간 바닥도 경사진 모습 고정관념 비튼 신선한 발상 눈길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인사동 쌈지길의 설계자로 유명한 최문규 연세대 교수와 ‘가아건축사사무소’가 디자인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뮤직라이브러리’지만 사실 지상 위로 올라와 있는 건물은 그리 크지 않다. 건물 구조를 보면 지상 4층 높이지만 실제 방문객이 이용하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은 2층까지다. 반대로 지하는 주차장을 포함해 5층까지다. ‘도서관’은 지상에 노출된 2층까지이며 지하에는 ‘렌털 스튜디오(연습실)’와 200석 규모의 공연장인 ‘언더스테이지’가 들어서 있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은 직사각형이다. 건물의 절반가량은 ‘라이브러리’ 건물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의 공간은 앞뒤를 ‘뻥’ 뚫어놓았다. 흡사 건물 앞에 지붕이 있는 마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뮤직라이브러리’의 비워진 공간은 도로 옆에 빽빽하게 채워진 건물만 보는 행인에게 잠시 동안의 여유를 갖게 한다. 건물이 들어서는 부지의 경우 초기 계획안에 경사진 지형을 만드는 것이 포함돼 있었고 최 교수는 언젠가 최초의 계획안대로 다시 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사면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건물의 출입공간으로 쓰이는 리셉션 공간의 바닥도 경사진 모습을 하고 있다. 최 교수는 “남산에서 내려오는 땅의 모양을 존중한다는 의도로 생각했다”며 “매일 평지만을 만나는 건축에서 경사진 바닥은 약간의 긴장과 즐거움을 준다는 면에서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건물 앞마당의 지붕과 벽면은 빌 오웬스가 찍은 1969년의 롤링스톤즈 공연 사진을 활용해 프랑스의 아티스트 JR이 초대형 그래피티로 재해석한 작품이 감싸고 있다. 이 공연은 자유와 저항을 상징했던 미국 ‘히피’ 문화의 절정이었고 동시에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록 음악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중심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의 ‘뮤직라이브러리’도 당시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기대와 바람이 녹아들어 있다. ●거리 향해 열린 ‘이태원의 쌈지길’ 철골 이외 모든 부분이 통유리 길 건너편서도 건물 내부가 훤히 애초 건물은 일정 기간 사용하고 해체되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 때문에 최 교수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철골을 사용해 전체 건물의 구조를 짰다. 그래서 건물도 화려하다기보다는 차분하고 중성적인 느낌이 든다. 인도에서 건물을 봤을 때 드러나는 부분이 지상 2층에 있는 라이브러리다. 방문객들은 경사로를 따라 1층의 리셉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건물의 철골 이외 부분은 모두 통유리로 돼 있다. 길 건너편에서도 건물 내부가 훤히 내다보인다. 희귀 바이닐과 중요한 자료가 저장돼 있어 건물은 현대카드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도록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적인 통유리는 이런 느낌을 상당히 희석시키고 있다. 마당에서도, 그리고 길 건너편에서도 건물 내부의 수많은 바이닐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건물 외부의 사람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1층에는 6개의 턴테이블과 바이닐을 대여해주는 사서의 공간, 희귀 앨범을 틀어주는 디스크자키(DJ) 공간이 있다. 벽면에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앨범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길거리를 마주하는 벽면의 반대편은 초대형 스피커와 희귀앨범이 일부 전시돼 있다. 건물 앞마당을 향한 외벽에는 베란다가 설치돼 있다. 마당에는 공연용 곤돌라가 설치돼 있어 가끔 ‘버스킹(길거리 공연·busking)’이 진행된다. 베란다에 앉아 공연을 지켜볼 수도 있어 베란다는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음악 서적과 한국 뮤지션들의 앨범이 돼 있는 공간으로 올라가려면 철제 난간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계단을 지나 공중에 난 길에 서면 유리창 너머로 주택가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길과 내외부와의 열린 공간은 흡사 축소된 인사동 ‘쌈지길’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 교수는 “쌈지길이 하늘로 열린 마당으로 과밀한 도시에 숨통을 만들었다면 뮤직라이브러리는 지붕은 있지만 앞뒤로 열린 공간으로 도시 속에 여유를 만들려 했다”며 “이러한 점에서 두 건물은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 뮤직라이브러리의 색다른 지하공간 ‘언더 스테이지’ 엘튼 존도 반한 ‘스테이지’...음악·예술공연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건물은 지하에 ‘언더스테이지’라는 거대한 공간을 감춰두고 있다. 이곳은 현대카드가 정기적으로 국내외 음악가와 공연 예술가들을 초청해 공연을 하는 곳으로 이미 이태원의 유명한 명소가 됐다. 유명 배우와 가수·음악가가 큐레이터로 참여해 공연을 기획해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뮤지컬, 비보잉 공연, 패션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신중현 그룹, 전인권, 혁오 등 국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영국의 엘튼 존 역시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 언더스테이지는 두 개 층을 사용하는데 위는 렌털 스튜디오로 사용하며 아래층은 공연장이다. 공연장과 렌털 스튜디오는 중앙 천정이 뚫려 있어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렌털 스튜디오는 일반 관람객은 출입이 제한된다. 2개의 연습실과 1개의 녹음실이 있고 공간 구석에는 사람이 쉴 수 있도록 소파 등이 설치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렌털 스튜디오 벽면에 걸려 있는 담벼락 아트로 유명한 ‘빌스(Vhils)’의 아트피스다. 빌스의 아트피스는 지상 라이브러리의 2층 가장 높은 벽면에도 설치돼 있다. 빌스의 작품뿐만 아니라 건물의 곳곳에서는 때로는 고급스럽고 때로는 트렌디하고 가끔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갖가지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건축 설계는 최문규 연세대 교수가 담당했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은 겐슬러(Gensler)에서 맡았다. 공연장은 스탠딩 공연일 경우 500명, 의자를 놓을 경우 200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지 않은 공간이다. 오히려 지상의 라이브러리 규모를 생각한다면 지하의 공연장은 거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장 뒤편에는 음향을 담당하는 콘솔 박스와 함께 공연을 즐기면서 음료수 등을 마실 수 있는 스낵바 공간도 마련돼 있는 등 편의적인 면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
[건축과 도시] 50여년간 그때 그자리 지킨 ‘장충체육관’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7.01 14:22:24서울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장충체육관으로 바로 연결되는 지하통로가 나온다. 이곳 한쪽 벽면에는 서울시민들의 낡은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사진으로 전시한 ‘시민 사진 공모전’ 입상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장충체육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그때 그 시절의 사진들이다. 이처럼 장충체육관은 많은 사람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도시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하지만 장충체육관은 그 변화가 빠른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50년이 넘도록 꿋꿋하게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영욕의 세월 고스란히 품은 50년 많은 체육인 스포츠 드라마 펼쳐진 현장 ‘체육관 선거’ 어두운 현대사 무대 되기도 현재 프로배구단 우리카드 한새를 이끌고 있는 김상우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 제일 먼저 찾아간 동네가 장충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감독은 장충동을 찾은 이유에 대해 그의 배구 인생에 있어서 장충체육관이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과거 추억의 스타부터 시작해서 현재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선수들까지 대다수의 배구 선수들에게 장충체육관은 각별한 장소로 남아 있다. 배구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닐 것이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실내체육관의 효시다. 지난 1963년 개관 이후 배구뿐 아니라 농구·권투·레슬링 등 수많은 스포츠 경기가 열렸으며(장충체육관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공식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많은 체육인의 땀과 눈물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다. 체육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각별한 장소이기는 마찬가지다. 입 다물고 조용히 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 장충체육관은 갑남을녀들이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공장소 중 하나였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표현의 자유(?)를 선사했던 장충체육관이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인 사건의 무대가 됐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민주주의를 가로막은 ‘체육관 선거’가 실시된 곳으로 과거 독재정치의 어두운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필리핀 원조설 시달린 우리 작품 이명박 前대통령 발언으로 근거없는 소문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정수씨가 설계 맡아 장충체육관은 오랫동안 ‘필리핀 원조’ 논란에 시달린 건축물이기도 하다. 장충체육관은 1955년 육군체육관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1959년 서울시가 운영을 맡아 개·보수한 후 1963년에 개관했다. 유엔에 따르면 장충체육관 개·보수를 시작한 1960년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은 67억달러로 한국(39억달러)에 비해 부강한 나라였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기에 한국보다 잘살고 기술력도 있었던 필리핀의 도움을 받아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얘기가 오랫동안 떠돌았다. 실제 2010년 한 종합일간지는 “1963년 한국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을 지을 때 국내 기술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필리핀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고(故) 김정수씨가 설계했으며 시공은 삼부토건이 맡은, 엄연히 한국 기술력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한국건축역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언론에서도 이를 보도하자 김정수 선생의 아들인 김석범씨가 직접 건축역사학회에 연락을 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근거 없는 소문의 진원지 중 하나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11월 필리핀을 방문해 장충체육관은 필리핀이 설계해서 지었으며 한국의 일류 건설회사들이 밑에서 하청을 했다고 얘기한 바 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필리핀에 5억달러 무상원조를 약속하면서 이같이 발언했다. 안 교수는 이와 관련해 “당시 외교통상부·수출입은행 등 정부 관계자들이 건축역사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장충체육관은 우리 기술로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며 “이 전 대통령이 필리핀에 무상원조를 약속한 근거 중 하나가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나중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나서 정부관계자들이 상당히 난감해 했다”고 말했다. ●그때 그자리 있어 빛나는 건축물 리모델링 통해 보전…옛 흔적 곳곳에 간직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과 대조 장충체육관은 동대문운동장과 곧잘 비교되고는 한다. 두 건축물 모두 한국 스포츠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장소인데다 하나는 리모델링을 통한 보존, 하나는 철거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기존의 체육시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건축물을 지은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건축물이라도 시간이 지나 낡게 되면 언젠가 한 번쯤 보존과 철거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안 교수는 “건축물을 보존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역사적인 가치”라며 “장충체육관은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때 그 자리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장충체육관은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약 2년6개월 동안 리모델링 작업을 실시했다. 장충체육관을 상징하는 돔을 뜯어내고 새로운 돔을 씌우고 관중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객석 수를 줄이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당시 리모델링을 맡은 김복지 유선건축 건축소장은 “기존 건물의 역사성을 고려해 옛날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들을 남기려고 했다”며 “건물 내부에 기존 구조물을 일부러 노출시켜 새로 리모델링하는 부분과 구분했으며 기존 돔을 철거하면서 나온 철골 구조물을 체육관 외부에 따로 전시해 사람들이 옛날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장충체육관 설계한 한국건축 1세대 故김정수> 국회의사당 설계 참여…한국 최초 건축설계사무소 만들기도 1919년생인 건축가 고(故) 김정수씨는 한국 건축 1세대로 꼽히는 김수근씨나 김중업씨보다 앞서 한국의 현대건축을 개척한 인물이다. ‘건축가 김정수 작품집’을 낸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한국 현대건축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며 “일반적으로 건축가라고 하면 미적인 측면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김수근씨나 김중업씨를 중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초기 건축가는 엔지니어로서의 이미지가 강했으며 김정수씨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한 건축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해방과 전쟁 후 복구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에는 건축에 쓸 만한 새로운 재료들이 별로 없었다”며 “김정수씨는 1950~1960년대에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건축 재료와 구조가 무엇인지를 고민했으며 한국 현대건축 형성 초창기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정수씨는 프리캐스트 공법을 직접 개발해 풍문여고 과학관에 적용했으며 공업기술 미학의 정수로 불리는 커튼월을 직접 만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커튼월 건물인 명동 가톨릭회관에 적용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김정수씨는 당시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트렌디한 세계 건축의 미학을 도입하는 데도 앞장섰다”고 설명했다. 김정수씨는 장충체육관 외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종로 YMCA회관, 연세대 학생회관, 성모병원 등을 설계했다. 한국 최초의 건축설계사무소인 ‘종합건축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
[건축과 도시] 도로 곁 시선의 쉼터..."한남동 현창빌딩"
부동산 오피스·상가·토지 2016.06.24 14:41:12남산 제1호터널과 한남대교 사이는 상습 정체구간 중 하나다. 서울 도심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는 주요 통로이기 때문이다. 정체된 차 안에서는 자연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차창 밖을 보게 된다. 시선을 돌리다 보면 눈에 띄는 흰색 건물을 찾을 수 있다. 몇 초간 바라보고 있으면 꾸불꾸불한 벽면이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뻥뻥 뚫린 커다란 구멍에는 유리와 테라스 등이 들어서 시선이 머물게 된다. 이는 ‘한남동 현창빌딩’이다. 현창빌딩이 소규모임에도 시선을 붙잡는 이유는 요동치는 하얀 벽면의 힘도 있지만 전면부에 발코니를 도입한 효과가 크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은 “이 건물은 대로변에 접한 30m의 전면부에서 모든 문제를 다 풀어야 했다”며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발코니”라고 말했다. ●발코니를 통한 도시민과의 소통 밋밋한 도로 풍경 바꾼 촉매제 역할 ‘멍게’ ‘스머프’ 등 다양한 애칭 붙어 우선 발코니가 실내 면적 산정에서 제외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발코니를 꾸불꾸불하게 만들어 너비를 다르게 해 건물의 용적률을 산정하는 데에(수정)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 덕에 건물은 발코니 면적만큼 부피가 더 늘었다. 또 발코니는 건물 입주민들에게 쉼터로 활용되는 동시에 인근을 지나는 도시민과의 소통의 장 역할을 한다. 건물 이용자들이 업무 중 잠시나마 나와 시원한 바람을 쐬는 동안 도로 위 차량 속 사람들은 발코니와 입주민을 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김 소장은 “도시 생활에서는 이동하는 중에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단편적인 생각이라도 떠오르게 된다”며 “건물이 무표정하게 서 있기보다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삶의 아주 작은 촉매제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건물 외벽을 흰색으로 칠한 것도 의도한 바다. 파란색·초록색 등의 색깔을 입히면 사람들은 그 색깔로만 건물을 기억하기 쉽다. 이와 달리 흰색일 경우에는 사람들이 건물의 형상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투영해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다. 실제로 이 건물은 ‘멍게’ ‘스머프’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수익성 높이고 가치도 잡아 규칙적 반복의 비밀 숨어있는 발코니 ‘실용성·비정형의 美學’ 두토끼 잡아 현창빌딩을 보면 비정형 발코니 등을 짓느라 건축비가 제법 소요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건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발코니의 물결 무늬는 시공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가늠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발코니에 규칙적인 반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코니 상층부와 하층부는 서로 대각선 방향으로 같은 모양이다. 거푸집 모듈 두 개를 마련해 교차시켜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모듈을 교차·반복해 만들어낸 자유곡선 같은 비정형이다. 이를 통해 비용과 시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발코니를 통해 실내 사용자를 위한 가치도 높일 수 있었다. 발코니 덕분에 근무자들은 건물 1층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가끔 외부 공기를 쐴 수 있다. 실제로 건축가는 업무시설에서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중요시해 오피스 건물에는 발코니와 옥상정원 등 외부 공간 확보에 주력한다. 김 소장은 “오피스 공간은 기본적으로 사용자 중심으로 접근한다”며 “이와 달리 리테일 공간은 외부의 인지를 더욱 중시하는 등 건물의 용도와 프로그램에 따라 가치의 조화와 균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축주도 설계자도 만족한 건축 시간·비용 줄이고 건물 부피는 키워 “첫 설계案 끝까지 간 해피 프로젝트” 이처럼 모듈을 통해 비정형 발코니를 시공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건물의 부피는 더욱 키웠다. 건축주가 최종 후보 설계안 10여개 중 현재의 것을 낙점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설계자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설계 단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전했다. 동시에 이 건물이 이 도시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도 고려해 설계안을 마련했다. 이처럼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고안한 절묘한 해법으로 건축주와 설계자 모두 만족하는 건축물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김 소장은 “모든 프로젝트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만 결정해서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남동 현창빌딩은 처음의 안이 변경 없이 끝까지 간 ‘해피’한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인터뷰 - 설계자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 > “실험적 방식·소재 선택은 최적의 솔루션 위한 고민의 결과물” “건축은 인간이 투자하는 재화의 크기가 가장 큰 일입니다. 이 때문에 건물을 지을 때는 누구나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은 이와 같은 건축주의 생각과 필요를 잘 읽고 표현해주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은 건축에서는 우선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프로젝트를 의뢰한 건축주들이 건물을 짓는 목적은 일차적으로 수익성 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시스템랩은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솔루션을 탐색한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의 프로젝트에 ‘비정형(비평면)’이나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 다소 실험적인 방식과 소재를 쓴 것도 그러한 최적화된 솔루션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는 설명이다. 김 소장은 “회사 이름이 ‘더시스템랩’인 것도 그러한 방침의 표현”이라며 “프로젝트마다 다른 예산·기간·위치 등의 조건이 구성하는 고유의 체계(시스템)에 가장 최적화된 솔루션을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거와 상업·업무시설 등 전 분야에서 지금과는 다른 전형을 창출해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정체성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가치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던지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 결과적으로 공간에 대한 취향의 다양성을 늘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 -
[건축과 도시] 화성시의 새 랜드마크...'폴라리온스퀘어'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6.17 15:35:12현대건축에서 건축의 3요소를 말할 때 보통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가 정의한 ‘기능·구조·형태’를 꼽는다. 하지만 실제 건축현장에서는 ‘설계자·시공사·건축주’의 조화를 꼽는다. 아무리 훌륭한 설계라도 제대로 시공되지 않거나 나아가 건물이 건축주에게 불편하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좋게 만난 이들이 건물 완공 후 불편해지거나 심지어 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폴라리온스퀘어’는 복 받은 건축물이다. 건축주인 정형원 폴라리온 대표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다듬어온 콘셉트가 있었다. 여기에 오랜 기간 함께 일해온 시공자와 설계사가 수익보다 완성도에 집중한 덕분이다. 그렇게 완공된 건물은 이듬해인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며 건축적 완성도까지 인정 받았다. ● 노출 콘크리트에 역피라미드·공중 브리지 건물 뒤 근린공원 보이게 한가운데 뚫고 레고 쌓은 듯 독특한 조형미로 눈길 잡아 폴라리온스퀘어가 위치한 경기 화성시 반월동은 병점신도시와 동탄신도시에 인접해 주거·상업시설이 혼재된 전형적인 신도시 외곽지역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경부고속도로를 꼬박 1시간 반을 달려 닿은 건물은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첫인상은 바람과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뚫어놓은 해변 동굴, 고전 공포영화 속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연상시켰다. 무엇보다 ‘젠가’ 게임을 하듯 쌓아놓은 블록 몇 개만 빼놓은 듯한 아슬아슬함이 돋보였다. 건물을 설계한 김창길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물부지는 이미 아파트와 상가로 둘러싸인 주변의 마지막 나대지였다”며 “공공성을 감안해 배후 근린공원(행복공원)이 보이는, 가운데가 뚫린 형태를 제안했고 건축주가 흔쾌히 동의해줘 현재 형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건물을 보면 본사와 협력사를 위한 공간, 2개동으로 분리돼 설계됐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역피라미드 구조는 보완 설계를 통해 오히려 장점이 됐다. 모든 공간은 육면체 단위모듈(2.8m×2.6m)을 기본으로 필요한 만큼 옆으로 붙이고 위로 쌓아올리는 형태로 구상됐다. 최상층은 지붕처럼 공중 브리지로 연결된다. ●시행착오 끝에 현재의 건물 완공 완성도 높은 건물 위해 끊임없이 설계변경 한달이면 끝날 지하층 조성 넉달이나 걸려 건물 모양새만큼이나 시공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축주가 좋아하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처럼 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미요시 주택은 더운 지역에 지어져 단열재에 대한 고려가 없는 건물. 단열재 없이 한국에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냉난방 효율까지 갖추면 벽 두께가 1m로 늘어나야 했다. 결국 하나하나 연구하며 풀어갔다. 이 때문에 한 달이면 끝날 지하층 조성에 무려 넉 달이 소요됐다. 단열재를 고정하기 위해 벽면 양쪽을 관통하는 핀 볼트를 적용했고 녹물에 의한 벽면 오염을 막기 위해 스테인리스 재질로 직접 만들어 썼다. 결국 외벽 20㎝, 단열재 10㎝, 내벽 15㎝를 합쳐 벽 두께가 45㎝로 두꺼워졌다. 덕분에 유리창이 많은 건물임에도 ‘패시브 하우스(최소한의 난방으로 적정 실내온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건물)’ 수준의 난방효율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시공사인 세한건설은 국내 대형 건설사에 노출 콘크리트 건설 관련 기술 자문을 해줄 만큼 노하우가 쌓였다. 이 밖에도 역피라미드로 건물 두 동이 이어지는 구조 설계도 연이은 거절 끝에 다섯 번째 업체가 해결책을 찾아줬다. 대형 현수교처럼 두꺼운 케이블로 연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던 8층 지붕 작업도 여러 업체와의 협업으로 현재처럼 해결됐다. 김 대표는 “잦은 설계 변경에도 불구하고 건축비는 3.3㎡당 600만원 정도, 일반 건물 정도의 비용으로 완공됐다”며 “마진 보다 제대로 된 노출 콘크리트 건물 한번 만들어본다는 생각으로 전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옥상 공중 브리지 압권…아쉬움은 활용도 독특한 외관에 영화·드라마·CF촬영 명소로 보기드문 완성도 불구 입지 탓에 용도 제한적 독특한 외관 때문에 이 건물은 영화·CF 등 20여편의 촬영 장소로도 사용됐다.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회장 집무실. 복층 구조로 이뤄진 이곳은 가로 7.5m, 세로 6m의 벽면을 6장의 특수유리로 채웠다. 바로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남자 주인공의 사무실로 등장하는 곳이다. 또 옥상정원에서는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의 주인공이 액션 장면을 선보였고 천장이 유리 연못으로 처리된 지하주차장은 패션쇼 런웨이로도 쓰였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국내 빌딩으로는 보기 드문 완성도를 보여주는 이곳이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은 활용도. 아무래도 신도시 외곽에 위치한 입지의 한계 탓이 커 보인다. 원래 레스토랑으로 설계돼 세 벽면을 유리로 마감하고 그 앞에 연못까지 둘러놓은 A동 1층은 현재 한 제조업체의 작업장으로 쓰인다. 다양한 활용을 기대했던 B동 8층은 여유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열리는 파티·회식장소로 용도가 한정됐다. 그래도 주민들의 반응은 좋다. 폴라리온스퀘어 건설현장의 총괄책임자이기도 했던 장현희 폴라리온 이사는 “처음에는 주민들도 조금 뜻밖이라는 반응이었지만 이제는 이 건물 덕에 동네가 달라 보인다고 얘기해주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화성=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인터뷰 : 설계자 - 김창길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 대표> “공공성에 대한 배려·과감한 시도가 건축설계 기본” “건축주를 만나면 항상 공부하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설계자나 시공자가 편한 집을 짓게 되기 때문이죠. 완공될쯤 이게 아닌데 바꿔달라고 해봐야 불가능하니까요. 처음부터 설계자·시공사·건축주 ‘3박자’가 맞아야 제대로 된 집이 됩니다.” 김창길(사진)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축주가 확고한 건축관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알아서 잘 지어주세요’하는 식은 일종의 책임 회피에 가깝다는 것. 그가 초기 설계 과정에 매주 정형원 폴라리온 대표를 만나며 회의를 거듭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 대표가 건축설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공성이다. 애초에 건물 중앙부를 비워 배후의 공원을 가리지 않게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개인 소유 부지와 건물이지만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건물인 만큼 사적 재산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며 “네모난 건물로 공원을 가렸다면 이 건물의 의미도 그만큼 퇴색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창길 대표는 여기에 폴라리온스퀘어처럼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주변에 비해 너무 튀고 조화롭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한다”면서도 “서울 청담동 정도면 각각 다른 외관을 뽐내면서도 상향 평준화된 퀄리티와 디자인으로 조화될지 모르지만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신도시 외곽에서 조화를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폴라리온스퀘어를 볼 때 먼저 길 건너 좌우에서 한 번씩 입면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조금 거리를 두고 좌우에서 건물을 보면 높이도 다르고 연결되는 느낌도 다르다”며 “그다음에 중앙에서 올려다보고 A동, B동, 옥상 순으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
[건축과 도시] 학교건축의 새로운 도전…동화고 '삼각학교'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6.10 14:35:22‘흩날리는 운동장 바닥 모래, 스탠드 뒤편에 네모 반듯하게 세워진 건물, 복도를 따라 일렬로 줄 세워진 교실들…’ 세대는 다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학교 건물의 모습은 같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교 건물은 거의 변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에 위치한 동화고 ‘삼각학교’는 이런 학교 건축의 양식을 파괴한 작품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건립돼 삼각학교라는 명칭이 붙은 이 작품은 시대의 교육적 가치를 담는 학교 건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 과거에 갇혀버린 학교건축 네모 반듯한 운동장·건물…일자로 뻗은 복도 19세기 교실서 21세기 아이 가르치는 학교 국내 교육에 대해 흔히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표현한다.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이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은 정작 19세기에 갇혀 있는 셈이다. 사각 운동장과 일자형 복도 등 일반 학교의 모습은 지난 1962년에 만들어진 표준설계도에서 확립된 형태다. 1990년대 학교시설 현대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표준설계도 사용 의무화가 폐지됐지만 학교 건물의 표준화된 모습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삼각학교의 설계를 맡은 유소래 네임리스건축 소장은 “학교 건물을 만드는 시스템이 고정돼 있는데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학교 건축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몇 십 년간 같은 학교 건물이 반복적으로 생산돼왔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수많은 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양적 팽창은 이뤄졌지만 역사성도, 지역성도 사라진 건축물로 남게 됐다. 동화중·고교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가운데 운동장을 둘러싼 채 10~20년의 시차를 두고 건물들이 하나씩 세워졌지만 겉모습과 재료만 약간 달라졌을 뿐 일자형 복도 등 틀에 박힌 속내는 그대로다. 이에 대해 박정현 마티출판사 편집장은 건축리포트 와이드(44호)에 게재한 ‘시선의 극장’이라는 비평을 통해 “급속히 인구가 팽창한 근현대사의 흔적이 학교의 무질서한 확장에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표현했다. ● 시장바닥 같은 학교를 꿈꾼다 화장실 갈때만 이용하던 복도 수다 떨며 공부하는 아이들 거실로 삼각학교를 탄생시킨 네임리스건축의 나은중·유소래 건축 듀오는 ‘시장바닥’과 같은 학교를 꿈꾸며 설계를 진행했다. 삼각학교는 북쪽으로는 운동장, 동·서쪽으로 각각 뒷산, 중학교 건물과 맞닿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인 직사각형 건물로 지을 경우 운동장과 중학교 사이를 전부 가로막게 되는 문제가 있어 삼각형 건물이 탄생하게 됐다. 삼각 배치는 기존 일자형 복도에서 벗어나 가운데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360도 순환하는 복도를 만들어냈다. 설계자는 복도 폭을 2.4~5.5m로 다양하게 배치해 복도가 단순히 이동통로가 아닌 ‘거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은중 네임리스건축 대표는 “복도는 학교에서 유일한 공용공간인데도 기능적으로 왔다 갔다만 할 수 있도록 비좁게 형성돼 있다”며 “복도가 학생들에게 문화적 장소이자 여러 부대낌을 유발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건물 바깥의 삼각형과 가운데 중앙정원의 삼각형을 약간 비틀어 배치해 2층과 3층 사이에 수직적인 틈을 만들었다. 이 틈으로 인해 2·3층 간 수직적으로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소통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바로 복도다. 한상현 동화고 교감은 “일자형 복도일 때는 화장실에 가기 위한 통로 정도로 이용했지만 요즘은 자율학습 시간에 복도에서 공부하거나 2·3층 간 틈을 통해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등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다”고 전했다. ● 학교 건축의 미래를 묻다 소통·투명성 모두 담아낸 건물속 중앙공원 천편일률 공간 구성 넘어서는 새 대안 제시 이 외에 투명성은 삼각학교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운동장 쪽 건물 정면은 투명한 유리로 뒤덮여 학생들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내부 중앙정원 3면도 모두 유리로 구성됐다. 나 대표는 “기존 학교들이 시선을 닫고 폐쇄적인 학습공간을 만들었지만 열린 교육을 위해 의도한 결과”라고 밝혔다. 건물 중앙에 자리 잡은 중앙정원은 소통과 투명성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하늘을 향해 뻥 뚫린 이곳에서 학생들은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유롭게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유리로 둘러싸여 해가 뜰 때부터 지는 순간까지 건물 내부로 빛을 고르게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지어진 삼각학교는 2014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하는 등 짓기 이전부터 완공된 후까지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삼각학교가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단순히 삼각형의 외관이 특이해서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학교 건축이 어떤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유 소장은 “국내 학교 건축은 시·구청사 등 다른 공공건물과 비교해봤을 때도 획일적”이라며 “교육열이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삼각학교 이후 국내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생겨나고 있다. 삼각학교가 학교 건축의 유일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정답‘들’을 위한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남양주=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변화의 싹 틔우는 지구촌 학교들 100m 육상트랙이 건물 관통한 英… 투명유리로 학교 뒤덮은 스위스 학교는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 시대의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건축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 브릭스턴에 위치한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는 학교 건축이 지역 재생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브릭스턴은 영국 내 대표적인 저소득층 거주지역이다.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는 이곳을 낙후된 주변 건물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랜드마크로 만들어 교육 성취율이 낮은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이 가져다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대지면적이 영국 평균 학교의 6분의1가량에 불과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0m 육상트랙이 학교 건물을 관통하도록 만드는 등 창의적인 도전도 시도했다. 현재 육상트랙 등은 지역민들을 위한 사회기반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스위스는 몇 십 년 전부터 학교 건축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나라다. 나은중 네임리스건축 대표는 “스위스 취리히 교육청에서 지난 1999년에 새로운 공모 시스템을 만들어 2000년대부터 변화된 학교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취리히의 대표적 공립학교인 로이첸바흐 스쿨과 임 비르히 스쿨은 학교 전체를 투명한 유리로 뒤덮었다는 점에서 폐쇄적인 국내 학교와는 정반대의 교육적 가치를 드러낸다. 6층으로 이뤄진 로이첸바흐 스쿨은 건물 전체가 투명 유리로 둘러싸여 학습공간과 체육활동, 교사들의 연구활동까지 모두 노출된다. 임 비르히 스쿨도 내외부를 유리로 구성했으며 필요에 따라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복도 대신 3~4개의 교실을 연결시켜주는 공용공간을 만들어 교육이 교실을 넘어 바깥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건축과 도시] 공공성·디자인·기능 3박자 갖춘...‘을지로 119안전센터’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6.03 14:58:39‘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로 나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왼쪽에 두고 쭉 걷다 보면 네모난 박스를 위로 겹쳐놓은 듯한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공원 입구에 위치한데다 주변에 개방된 형태로 들어서 있는 덕분에 자칫 ‘공원 안내센터’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건물은 24시간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들이 근무하는 소방서 건물이다. 네모 반듯하고 딱딱한 느낌의 기존 소방서와 달리 독특하고 매력적인 형태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이 바로 지난 201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과 서울시건축상 우수상을 연달아 휩쓴 ‘을지로119안전센터’다. ● ‘공공성’ 강조해 지어진 건물 1층은 좁히고 2~3층 넓힌 디자인 적용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한몸같이 연결 을지로119안전센터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맞닿은 대지에 지어졌다. 옛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그 자리를 시민에게 환원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이라는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고 을지로119안전센터의 설계에 반영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을지로119안전센터를 설계한 류재은 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소장은 “설계 과정에서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특히 소방서라는 주민들에게 필수적인 공공시설을 짓는 만큼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건물이 대지에 접하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실제 을지로119안전센터는 필수적인 공간만 1층에 배치하고 대부분의 기능들은 2~3층으로 띄워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건물이 저층은 넓고 고층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가진 것과는 반대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확보된 지상의 공간을 통해 건물과 주변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소방서 본연의 기능에도 충실 소방·구급차 ↔ 정비창고 동선 최소화 차고 내려다 보이는 곳에 상황·회의실 공공시설의 경우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연의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설계되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들을 위한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결국 공공성을 확보하는 건축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류 소장은 “소방서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차고와 상황실·회의실·장비창고 등 소방 및 구조활동에 필요한 공간 설계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며 “각각의 공간이 어우러져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효율적인 배치를 우선시했다”고 말했다. 을지로119안전센터의 차고에 들어서면 그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소방차와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정비하는 차고를 중심으로 정비창고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일반 소방서의 경우 상황실에서 차고를 바로 내려다볼 수 없는 것과 달리 한 층 위 차고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상황실과 회의실을 배치해 비상시의 활동에 빠른 지시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건물의 주인공 소방관 거주·근무공간 분리해 완벽한 휴식 배려 소음 차단·외부빛 전달 최소화 세심함도 소방서를 지을 때는 외부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24시간 이 공간을 이용하는 소방관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류 소장 역시 소방관들이 주인공인 건물을 지으려 했다. 그는 “본인들의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좋은 공간을 짓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다”며 “소방관들에게 소방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며 설계 과정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는 건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소방서의 특성상 소방관들의 휴식과 대기가 병행돼야 하기 때문에 거주공간과 근무공간을 분리했다. 거주 공간 전체를 2~3층으로 올려 업무의 피로가 휴식처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다. 복도도 건물 한쪽 끝으로 밀어넣었다. 지역 특성상 낮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면 밤에는 시끄러워 소방관들이 소음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휴식을 취하는 방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쪽으로 모두 배치해 소음을 차단했고 방에 나 있는 창도 내부로의 빛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각지대에 설치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을지로119안전센터의 소방관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정익훈 을지로119안전센터 팀장은 “근무하는 건물이 디자인적으로 훌륭해 소방관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설계도 기능적으로 뛰어나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설계자 인터뷰 - 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류재은 소장> “새롭고 친근한 공공건축물 만들고 싶어” “설계 사무실을 24년 넘게 운영하면서 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해왔습니다. 성공적으로 끝낸 작업에 안주하다 보면 정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다 나은 설계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류재은 소장은 건물을 설계할 때 본인만의 철학이 있느냐는 질문에 새로움을 추구해나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지난 199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의 ‘시’도 비로소 시라는 한자를 사용해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작업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가 설계했다고 느낄 만한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를 두지 않고 건물의 기능과 주변과의 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해왔던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직을 과감히 그만둔 것도 그런 그의 성향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류 소장은 “교수로서 일을 하다 보니 학장이나 대학원장 등 더 큰 책임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직책을 맡아달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안정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설계에 더 큰 욕심이 있기도 했고 그 모든 것을 하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류 소장은 앞으로도 본인이 가져왔던 건축 철학을 이어갈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단독주택이나 재건축·재개발 설계를 많이 해왔지만 을지로119안전센터와 같은 공공건축물 설계도 더 활발히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는 “공공건축물은 효율성이 높고 사용자의 편의가 극대화되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권위적이고 상징적인 느낌이 강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만족할 수 있는 공공건축물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가 목표한 것과 같은 공공시설을 설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더 좋은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길일 수 있다. 류 소장은 “결국 도시는 많은 건물과 구성원들이 모여 이뤄가는 것”이라며 “아름답고 효율성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 도시,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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