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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후체제 시대 산업계의 대응 전략

파리협정은 의무가 아닌 새로운 기회<br>저탄소 미래산업에 적극 투자 나서야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되면서 이른바 ‘신(新)기후체제’가 본격화하게 됐다. 김성우 삼정KPMG 기후변화·지속가능경영본부장이 신기후체제 시대를 맞아 한국 산업계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지에 대해 조언한다.

작년 말 파리에서 진행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끝난 이후, 이번 협상의 주요 내용 및 향후 전망을 제시하는 다양한 보도기사 및 분석자료가 발표되었다.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최초로 전 세계 195개 당사국 모두가 참여하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합의했으니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만했다.

하지만 정작 기업의 관점에서 파리협정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실제 필자의 경우 다양한 기업들의 의사결정권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도대체 이번 협상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는 파리협정이 국제사회가 나아갈 거시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각론은 차기 당사국총회 및 각 국가별 정책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협정은 국내 기업들이 간과해선 안 되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가 있어 이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파리협정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선 글로벌 장기목표가 처음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1.5도를 넘기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세기 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숲이나 바다에 흡수되는 양과 같아지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개발도상국도 참여하는 감축체제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선진국만 의무감축에 참여하던 과거 협약과 달리 개도국들도 모두 자발적으로 감축목표를 설정하되 5년마다 이행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진전된 목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나아가 효율적 실행을 위한 국제 탄소시장 메커니즘도 설립하기로 했다. 즉, 각 국가들은 5년마다 국가의 최고 의욕수준(highest possible ambition)을 반영한 상향된(progression) 목표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마지노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번 협상에서는 선진국의 재정 · 기술 지원을 다짐하는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포함한 연간 최소 100조원 이상의 재정지원을 개도국들에게 하기로 재확인했다.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이 입주해 있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기후산업 투자에 나설 때 GCF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파리협정은 저탄소경제 이행에 관한 국제합의
특히 기업의 관점에서 주목할 점은 우선 국제사회가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 모델 탈피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파리협정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모두 합의한 최초의 온실가스 감축 협약으로, 이는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성장 모델에서 탈피해 저탄소경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는 전 세계적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석탄화력발전소의 점진적 퇴출을 예고하며, 전기차 시대가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는 국제 탄소시장의 형성을 주목해야 한다.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 탄소시장 메커니즘 설립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2017년부터 시작될 중국의 배출권 거래제는 이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탄소시장은 각 국가별 체제에 비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에게는 명료한 탄소가격 시그널을 제공해줄 것이다. 내년이 되면 탄소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제 탄소시장 활성화 및 기업에 대한 탄소가격 시그널은 점차 명확해질 것이다.

특히 국제사회의 탄소감축 합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된 상황에서 세계 7위의 탄소 배출국이자 무역국인 우리나라는 국제적 이행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뿐더러 직·간접적인 규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선진국의 재정 지원과 개도국의 시장 기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저탄소 교통 등 청정기술 분야에 대한 매년 100조 원 이상의 재원 유입은 개도국 인프라 시장 형성의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대규모 재정 지원은 곧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 등 ‘파괴적 혁신기술(Disruptive Technology)’에 기반을 둔 미래산업 주도권 확보와 개도국 시장 선점을 위한 전략적 속내를 포함하고 있다.

앞서 말한 선진국 재정 지원의 중심인 ‘녹색기후기금(GCF)’ 본부가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 있는 데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 발굴이 절실한 상황에서 개도국 인프라 시장 선점의 기회를 선진국에 양보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국내 동향 및 전망을 살펴보자. 우선 ‘위협’ 측면이다. 우리나라는 파리 당사국총회 직전에 국가 감축목표를 유엔에 제출했고, 파리협정 채택과 감축목표 확정에 따라 2030년에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37%(3억1500만톤)를 줄여야 하며, 글로벌 장기목표와 이행점검 규정에 따라 5년 단위로 지속적인 목표 성향이 불가피하다.

특히 산업 부문의 감축목표는 배출 전망치 대비 12%이며, 배출권 구매 가정 시 연간 최대 1조6000억 원의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 이런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적인 탄소배출권 확보가 필요한데, 유엔에 제출된 37% 국가 감축목표 중 11.3%는 해외에서 배출권을 충당하기로 이미 명기되어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 배출권을 단순 구매하지 않고 해외 기후투자를 통해 우리 기술을 수출하는 동시에 배출권도 확보한다면 배출권 확보 비용은 단순 구매 대비 약 6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파리협정을 ‘기회’ 측면에서 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지난 4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협정 조인식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부 추진 에너지신산업에서 기회 찾아야
이러한 기회 관련 국내 동향을 잠깐 살펴보자. 현재 정부는 주력 산업의 저성장 환경 속에서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 전기차, 친환경산업공정 등 ‘에너지신산업’ 분야에 20조원을 투자해 연간 100조원 시장으로 키우는 한편 2030년 12조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송도에 위치한 GCF는 이미 12조원 규모의 초기 재원을 조성해 작년 말 처음으로 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승인했고, 올해는 약 3조원 규모의 투자를 승인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에너지신산업과 파리협정에 따른 재정 지원 대상인 기후산업은 같은 것이고, 결국 개도국 인프라 시장이 그 대상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파리협정의 함의가 먼 미래의 국가간 개념적 합의가 아닌 당장 대응하고 선점하지 않으면 향후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는 ‘발등의 불’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기업은 다음 세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첫째, 설비투자나 인수합병 등의 투자 결정에 ‘탄소가격’을 고려해야 한다. 한번 건설하면 최소 30년간 사용할 설비 혹은 한번 인수하면 수십 년을 운영할 회사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탄소가격을 제대로 평가·고려하지 않을 경우, 예상치 못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국내 탄소 배출량 100위권의 배출권 할당 대상 기업들의 평균 배출권 구매 비용은 매년 약 118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가령 이 중 한 제조업체를 탄소가격의 고려 없이 인수할 경우, 30년간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사모펀드도 필자의 조언으로 기업 인수합병 시 탄소비용 리스크를 기업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탄소규제를 시작한 해외 400개 이상의 선진 기업들은 이미 투자 의사결정 시 미래 탄소비용 유출을 반영하기 위한 탄소가격을 고려하고 있다. 독일계 다국적 화학회사인 바스프(BASF)는 중장기 탄소가격을 전사위원회가 승인한 탄소가격 예측치에 적용하고 있고, 네덜란드 페인트회사인 악즈노벨(AkzNobel)은 모든 투자 결정에 톤당 50유로의 탄소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둘째, GCF 같은 국제기후기금의 활용이다. 에너지신산업을 포함해 개도국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사업 발굴, 국가 리스크, 재원 조달 등에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데, 국제기후기금이 바로 이런 리스크를 경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의 사업 전략, 개도국의 수요, 국제기후기금의 운용 전략과 모두 부합하는 비즈니스모델을 새롭게 개발하거나 이미 추진 중인 해외 기업들은 국제기후기금과 사업 리스크를 나눔으로써 잠재시장을 효율적으로 선점할 수 있다. 심지어 재원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는 해외 사업들의 경우도 국제기후기금을 활용하여 사업을 재추진할 수 있다.

셋째, 우리가 이미 경험한 사업을 바탕으로 기후사업 모델화를 통해 수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섬의 에너지를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에너지자립섬 모델은 태양광발전, 에너지저장, 지열발전, IT 모니터링 등 요소기술이 모두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미 경험한 기술인 동시에 GCF 최초 투자 승인에 이 모델이 포함되어 있을 만큼 해외 수요 측면에서도 잠재력이 큰 비즈니스 모델이다.

또한 개도국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온실가스 인벤토리)하고 감축 실적을 점검(모니터링, 리뷰, 검증)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수십년간 에너지관리 등에 관련된 시스템을 구축·운영해온 데다 IT 강국이기 때문에 개도국에게 적용 가능한 적정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구축해줄 수 있는 최적의 국가다. 국내에서만 이미 500여개의 기업과 정부기관이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 역시 구축된 바 있다. 향후 이러한 시스템이 100개 이상의 개발도상국에 보급될 경우 관련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한 상황이다.


개도국 기후변화 인프라 산업에 진출하라
추가적으로 살펴볼 것들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상하수도 설비 개선, 해수 담수화 등 수자원 관련 산업, 관개설비 구축 및 품종 개량 등 농업 관련 산업, 제방구축 및 사면 보강 등 토목 관련 산업 등이 절실히 필요한데, 이러한 산업 분야 역시 이미 다양한 기술을 보유한 우리 기업이 기후사업 모델화를 통해 수출 기회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GE, 필립스, BMW 등 해외 기업들은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전략을 바탕으로 기후산업이라는 색채를 입힌 신규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하여 자사 사업의 매력도를 높임으로써 해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파리협정 채택 이후 우리의 시선은 사상 최초로 전 세계 모든 당사국이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체제에만 쏠렸다. 한국은 이미 569개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권 거래제라는 탄소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데다 산업구조가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이어서 의무감축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리협정 내용을 단지 부담으로만 보는 것은 편향적 시각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다가오고 있고,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 먹거리 창출이 없으면 모두 망한다는 각오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포트폴리오의 구축이 필요한데, 그런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기후투자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는 2002년 IT 사업으로 번 돈 1조8000억여원의 일부를 당시 황무지였던 전기차 사업에 과감히 투자해 현재 시가총액 27조원의 전기차업체 테슬라를 탄생시켰다. 우리도 과거 성장 기반에서 번 돈과 얻은 기술을 과감히 활용해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려야 한다.

과거의 자산을 과감히 활용하지 않고 계속 지키는 데만 급급하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자에겐 미래가 없다. 경쟁자들은 지금도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페이팔이 테슬라로 재탄생하지 않았다면 아마 구글에 먹혔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시점에 기후투자만한 신사업 기회가 없다.




김성우 본부장은…
삼정KPMG 기후변화·지속가능경영본부장과 글로벌 회계·컨설팅기업 KPMG의 기후변화·지속가능성 부문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를 맡고 있다. 또 서울대학교 글로벌환경경영학부 겸임교수와 녹색기후기금(GCF) 외부 기술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의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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