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여성 침실사관, 왜와 싸운 흑인병사...재밌는 조선왕조실록 얘기

내달 9일 세계기록총회에 실록 일화들 펼쳐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그야말로 역사의 보고다. 인류 역사상 한 왕조가 무려 500여년을 지속한 것도 전무후무하거니와 정책과 사건은 물론 왕의 24시간 언행을 옆에서 지켜보며 낱낱이 기록한 것도 유일무이하다.

한자로 구성돼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 실록이 읽기 쉬운 형태인 웹툰 ‘조선왕조실톡(작가 ‘무적핑크’)과 만화 조선왕조실록으로 나오면서 전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472년의 세월, 총 1,894권 888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에는 곳곳에 무궁무진한 재미있는 ‘일화’들이 펼쳐져 있다. 국가기록원이 오는 9월 5일부터 6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6 ICA 세계기록총회’ D-50일을 맞아 소개한 ‘조선왕조실록’ 속 재미있는 일화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역사와 기록의 재미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신성한 병사(神兵) 대우를 받았던 흑인 병사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흑인병사의 모습에 대해 위와 같이 적었다.




1598년(선조 31) 5월 26일, 당시 명나라에서 파견군으로 나와 있던 장수 팽신고(彭信古)가 흑인 병사를 소개한다. “호광(湖廣)의 극남(極南)에 있는 파랑국(波浪國, 포르투갈) 사람입니다. 바다 셋을 건너야 호광에 이르는데, 조선과의 거리는 15만여 리나 됩니다. 그 사람은 조총(鳥銃)을 잘 쏘고 여러 가지 무예(武藝)를 지녔다.”고 소개했다. 이 흑인 병사의 주특기는 바다 밑에 잠수해 적선(賊船)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해군 특수전전단 UDT/SEAL(Underwater Demolition Team)과 비슷한 임무를 수행했는데, 외국인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선조는 신기해하며 “대인 덕택에 신병을 다 봤습니다. 이제 흉적을 섬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습니다”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 왕의 침실에는 여성 사관(史官)이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중종과 신하들의 논쟁을 재구성한 것이다.


사극이나 역사를 모티브로 한 콘텐츠에 ‘강직함’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사관.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다니며 말과 행동, 사건 등을 사초에 빠짐없이 기록해 지금의 ‘조선왕조실록’을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성리학 이론에 충실한 왕을 원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남자 사관들이 접근할 수 없는 왕의 침실까지 기록해 왕의 ‘완전한 삶’을 후대에 전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묘수는 ‘여자 사관’을 두는 것이었다.

1519년(중종 14) 4월 22일, 동지사 김안국이 중국 고사를 인용해 여성 사관을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사헌부 장령 기준까지 나서 중종을 압박했다. 침실까지 사관들에게 내줄 수 없었던 중종은 하루 종일 실랑이를 벌이며 신하들에게 맞섰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대응하다 신하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말았다.



여성 사관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선조실록’의 경우 임금이 몸살이 심해 침전에서 정사를 볼 수밖에 없을 때, 남자 신하들을 대신해 ‘여사’라고 불리는 여성 사관들이 서면으로 보고를 대신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출산 장려책을 실시했던 조선의 왕들



조선은 농경을 산업의 기본으로 삼았던 ‘농본주의’ 국가였다. 지금처럼 농기구가 발달돼 있지 않은 환경에서 노동력은 중요한 국력의 척도로 여겨졌다. 특히, 다자녀를 출산하는 가정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는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의 치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출산 장려 지원금을 현재(2016년) 화폐 가치로 따져 계산했다.


1431년(세종 13) 7월 5일, 세종은 신하들과 세 쌍둥이 지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조선시대에는 세 쌍둥이를 낳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금이 친히 쌀과 콩 10석을 하사할 정도로 기뻐했다. 세종은 세 쌍둥이를 낳은 가정에 제도대로 쌀과 콩 10석을 하사하려 했다. 그러나 변수가 하나 생겨버렸다. 세 쌍둥이가 세상 밖에 나왔지만 불행히도 두 아이가 죽고 한 아이만 살아 본래대로 곡식을 지급 해야 할지 말지 조정 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세종은 두 아이가 죽었어도 세 쌍둥이를 낳은 것이기 때문에 본래대로 지급을 명했지만 승지 안승선의 반대로 지급은 하되 5석만 하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조선왕조실록’에 숨겨진 이야기는 이외에도 무궁무진하다. 딱딱한 유교의 논리가 아닌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생생한 기록들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방대한 기록물에 담겨 있다.

지난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사료적 가치까지 인정받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외에도 12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록들이 한꺼번에 선보일 ‘2016 세계기록총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지 50일 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