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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긴축정책, 불공정한 책임전가의 고약한 셈법

■ 마크 블라이스 지음, 부키 펴냄

유럽 국가 재정위기의 원인은

방만한 복지지출 탓이 아니라

대형 은행의 도덕적 해이 때문

"소득 상위계층이 초래한 문제

하위계층에 책임 떠넘기는 꼴"

투자은행 모델 전면 재검토해야





대형 은행의 잘못이 어떻게 공공의 책임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돈 많은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낳은 부작용을 돈 없는 이들이 뒤집어쓰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중심에는 원인을 호도하고, 본질을 숨긴 채 ‘경제문제 해결의 도깨비 방망이’처럼 등판한 ‘긴축’이 있다.

미국 브라운대 국제정치경제 교수인 저자는 신간 ‘긴축-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에서 유럽 재정 위기의 사례를 분석하며 잘못된 은행 시스템과 유로화라는 통화제도가 겹쳐져 만들어진 은행 위기가 그 본질임을 강조한다. 재정 위기의 해결책으로 복지를 비롯한 각종 공공 지출의 대규모 삭감을 요구하는 긴축정책은 결국 소득 상위 계층이 초래한 문제의 해결비용을 하위 계층에게 내라는 불공정한 요구라는 이야기다. 불평등하고 긴축적인 세상에서는, 소득분포 하위 계층에서 시작한 이들이 계속 하위에 머물 수밖에 없다. 노력해서 더 나은 삶을 만들 가능성이 없어진다면 남은 선택지는 폭력. 긴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그 배경에 깔린 불공정함을 짚어보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책은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진 긴축 정책이 원인을 호도하고 본질을 숨겼다고 지적한다. 공공의 이익보다 특정 집단에 이익을 몰아주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선택된다는 것. 예컨대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등 이른바 ‘피그스’(PIIGS) 국가들의 경우 국채 이자율 폭등에 따른 유동성 경색 및 재정 위기가 터지면서 복지 지출이 가장 먼저 뭇매를 맞았다. 국가부채를 무절제하게 늘리는 재정 운용이 위기의 원인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진단에 거대한 속임수가 있다고 말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유럽의 은행과 투자자들은 유럽 주변부 국가의 국채 매입을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설마 그냥 두겠어?’라는 배째라식 심보다. 해당 은행이 노출된 위험과 높은 레버리지, 국경을 넘어 타국 은행과 엮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국가나 유럽중앙은행이 결국엔 나서 위험을 떠안아줄 것이라는 ‘고약한 셈법’이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긴축으로 은행과 은행이 보유한 자산 가치는 유지됐다. 대신 돈 없고 그달 그달의 임금과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에 기대 살던 사람들의 신음은 더욱 커졌다.



이 책이 지닌 대단한 반전은 출간 시점이다. 2013년 유럽의 상황을 바탕으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긴축정책이 저소득층의 삶을 파괴하고 불안정성을 가중시켜 파멸의 결과로 치달아 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2014~2016년 사이 유럽은 정확히 이 예측을 따라가고 있다.

이 무서운 예측을 보며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저자는 투자 은행이라는 모델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당장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부실 은행은 파산하도록 두거나 투자은행 모델 자체에 상당한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일랜드는 은행을 국가가 구제해 여전히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아이슬란드는 부실 은행을 청산한 뒤 건전한 실업률과 경제성장률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또 “국가 부채는 경제성장으로 극복해야 한다”면서 ‘최고 소득 계층을 겨냥한 증세’와 국채 보유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방식의 ‘금융억압’으로 상당한 세수 증가가 가능해 긴축 없이 국가 부채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럽이 재정 위기를 향해 걸어간 길을 대한민국 역시 걷고 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기존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 저성장의 늪에 빠졌고,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주택담보대출과 투기 광풍이 휩쓴 부동산·금융시장이 문제를 일으켰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경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간. 각국의 경제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도 책 속 국가들이 겪은 재정 위기와 일련의 정책, 그리고 그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2만 2,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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