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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칼럼] 우린 조선시대를 살고 있나

이신우 논설실장

조선 500년, 역모와 탄핵으로 점철

당쟁 승리를 위한 손쉬운 정치수단

헌정사에 반복되는 탄핵 본질도

헌법 위배보다 정치적 몰락에 초점





김평우 변호사는 저서 ‘탄핵을 탄핵한다’에서 미국은 건국 이래 240년간 대통령 탄핵이 단 두 번뿐인데 우리나라는 건국 70년에 탄핵 사태가 벌써 두 번째라고 개탄한다. 하지만 그 정도야 개탄할 것도 아니다. 조선에서 역모(逆謀) 고변은 무려 1,000회를 넘어선다(김남, 조선왕조실록). 역모와 탄핵으로 시작해서 역모와 탄핵으로 끝난 것이 조선왕조 500년이었다.

역모란 왕을 몰아내고 새 정권을 수립하려는 음모나 행위다. 왕조 내내 이토록 끈질기게 역모에 대한 고변이 이어진 것은 왜일까. 조선에서 출세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면 된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다. 역모 고변이다. 국문(鞠問)을 통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고발자는 영달해 특진을 거듭한다. 설령 고변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날조된 역모 사건을 통해 상대 당파를 엮을 수만 있다면 애초의 목적을 완수하는 것이다. 허위 고변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사실 역모와 탄핵은 상대 당파를 쓰러뜨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정치적 수단이었다. 조선 24대 왕인 헌종이 죽고 후사 논의가 벌어졌을 때였다. 당시 왕실에서는 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인 이하전이 적자로 꼽혔다. 하지만 집권 세력이었던 안동 김씨 집안에서는 이하전을 외면하고 다루기 쉬운 시골 무지렁이 강화도령을 새 왕으로 옹립했다. 그가 바로 철종이다.

그럼 이하전의 운명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흔한 함정인 역모에 걸려들었다. 이재두라는 하급 관원이 몇몇 사람과 작당해 이하전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고변이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문이 벌어졌고 시나리오대로 제주도 유배형을 받았다. 이후 사간원(언론)과 사헌부(검찰)에서 유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상소가 쏟아진 끝에 사약을 받고 죽어야 했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의 눈에 나면 필연적인 순서가 탄핵이었다. 최근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사건 모두 여소야대 때 벌어졌음을 상기해보라. 사헌부와 사간원을 통해 탄핵이 올라오면 조정 대신들이 일제히 이에 동조해 왕을 독촉하고 왕도 마지못한 척 재가를 내리게 마련이다. 철종 때도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 홍원섭, 사간원 수장인 대사간 이교인이 연명으로 이하전을 탄핵했다. 언론과 검찰·국회의 살가운 협력관계는 결코 역사적 DNA를 잊지 않는다.

철종의 하교 역시 오늘날의 언론사 사설들과 너무나 빼닮았다. “지금 국론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뜻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급선무이니 제주에 위리안치된 죄인 이하전을 사사하도록 하라.”(철종 실록 권14)



앞서 조선의 역모 고변이 1,000회를 넘어선다고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고변 사건이 벌어진 것은 광해군 시절이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정세가 위급하다는 보고가 올라갔으나 ‘또 그 소리냐’며 무시하고 지나쳤다가 당하고 만 것이다.

1612년 광해군 4년 때 ‘김직재의 역모’를 들여다보자. 황해도 봉산 군수인 신율은 관내의 김경립이라는 촌민이 병조판서와 왕이 발급한 명령서를 자랑한다는 허풍을 접하고 문서 위조에 불과한 그를 역모범으로 몰았다. 고변이 올라가자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대북파는 이 기회에 소북파를 몰아내기로 작당하고 소북파 상당수를 연계시켜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닥치는 대로 구금했다.

심지어 광해군을 몰아내고 선조의 아들 순화군의 양자인 이태경을 추대하려 했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내 이태경을 처형시켰다. 성균관 학록인 김직재를 비롯해 소북파 100여명이 숙청당한 것은 물론이다. 고변한 신율은 공적을 인정받아 참판(차관)으로 승진했다.

역모로 날이 새고 해가 지다 보니 백성의 삶에는 조정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김직재의 역모가 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때가 1612년 2월13일이다. 그 후 사건이 대충 마무리되는 4월 말까지 실록의 95% 이상이 국문과 처벌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나머지 5%조차 백성이 먹고사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들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바 있는가. 지난 노무현 대통령 때도 그렇고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탄핵도 차이가 없다. 우리의 탄핵 소용돌이는 헌법이나 법률 위배 그 자체보다 어떻게 얽어매든 상대방의 정치적 몰락에만 초점을 맞추려 든다. 그것이 우리 헌정사에서 반복되는 탄핵 사건의 본질이다.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고 있다. shinwo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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