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안을 실시간으로 관측해 지금보다 5배 이상 성능이 개선된 리튬황 배터리를 개발했습니다. 안정성 테스트 등이 남아 있지만 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한 번 충전으로 지금보다 훨씬 먼 거리를 갈 수 있어요.”
이현욱(35)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리튬황전지의 충전·방전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성능을 높인 배터리에 대한 논문을 27일 미국화학회지(JACS)에 게재할 예정이다. 이 논문은 그동안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리튬황 배터리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여 주목받고 있다.
리튬황전지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 물질로 황을 이용하는 배터리다. 상용화된 리튬이온전지보다 용량이 5배 높아 차세대 전지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충전·방전 시 황이 심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전해액에 녹아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용화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황을 다양한 화합물 형태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교수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한 싱가포르 연구진은 황을 몰리브덴으로 코팅한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황의 부피 팽창이나 녹는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배터리 분야의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in situ TEM) 전문가’다. 이 교수는 전 세계에서 10명도 안 되는 ‘인 시추 템 가이(in situ TEM guy)’로 꼽힌다. 이 분야의 실력자로 알려지다 보니 해외에서 공동 연구를 제안받기도 한다.
싱가포르 연구진은 배터리 내부에서 이 물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어 난관에 부딪혔다. 싱가포르에는 배터리 분야의 실시간 TEM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연구진이 시작한 연구에 이 교수는 날개를 달아줬다. 이 교수는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충전·방전 때의 부피 팽창 정도와 리튬이온의 확산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부피 팽창을 파악해냈다.
이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에도 TEM이 있지만 원하는 장면을 제대로 잡아낼 전문가가 없다”면서 “이번에 연락이 온 싱가포르 연구진과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 함께 연구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TEM은 물질에 전자빔을 통과시켜 내부를 관찰하는 장비다.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어 다양한 소재 연구에 꼭 필요하다.
이 장비로 배터리 내부를 보려는 시도는 지난 2010년 시작됐다. 당시 KAIST 박사과정 연구원이던 이 교수는 우연히 TEM과 인연을 맺었다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당시 이 교수는 실패를 거듭했지만 연구하면서 쌓인 접근법과 경험이 남다른 실력이 됐다. 이 교수는 “TEM은 10억원이 훌쩍 넘는 비싼 장비라 미국에서도 국가연구소와 일부 대학에만 있다”며 “KAIST에서 TEM을 다뤄본 경험이 2012년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할 때까지 자연스레 이어졌고 지금은 ‘실시간 TEM’이 특기가 됐다”고 말했다.
사실 실시간 TEM으로 배터리 충전·방전을 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원하는 장면과 각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도 주말과 공휴일을 모두 반납한 채 밤새 TEM과 씨름할 정도로 이 장비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내공은 요즘 이 교수를 ‘함께 연구하고 싶은 연구자’로 만들었다. 이 교수는 “X레이로 환자의 몸을 진단하면 처방이 명확해지는 것처럼 실시간 TEM으로 배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수명이나 출력·용량 등의 연구를 더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서 “어디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알아내 개선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배터리 물질 개발과 더불어 배터리 이미징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 살 때 손에 배터리를 쥐고 찍은 사진이 있어요. ‘배터리가 제 운명’이었던 것을 암시한 장면이죠. 앞으로 용도에 따른 다양한 종류의 배터리 물질 개발과 함께 실시간 TEM도 계속 연구해 세상에 기여하는 연구자가 되겠습니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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