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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고독, 배달공화국의 씁쓸한 자화상

음식·생활필수품 등은 기본

다린 와이셔츠까지 매일 배달

책·꽃 등 취향 맞춰 정기배송도

혼족·편의성 업고 급성장 이면엔

대인기피·단절 등 사회상 담겨

택배기사 과로사 등 부작용도





# 싱글족 김여정(37·가명)씨는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식재료를 비롯한 생활필수품은 인터넷쇼핑으로 간편하게 받는다. 옷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간 지도 오래다. 모바일쇼핑으로 글로벌트렌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뿐더러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트렌디한 해외 상품을 일주일 내에 집에서 입어볼 수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김씨는 과일 소믈리에가 일주일 동안 먹을 양의 맛 좋은 제철과일을 골라 신선하게 담아주는 과일박스를 정기적으로 시켜먹는가 하면 스타일리스트에게 컨설팅을 받아 고른 ‘신상’ 드레스와 가방을 배송받는 서비스도 종종 애용한다. 한 반려동물 쇼핑몰은 바쁜 김씨 대신 그의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를 위해 배변패드나 고양이모래·사료를 교체주기에 맞게 알아서 배송해주기 때문에 그는 애써 반려동물숍에 갈 필요도 없어졌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은 ‘배달 공화국’. 음식부터 꽃과 택배, 각종 심부름은 물론 이제는 취미와 반려동물, 출장 퍼스널트레이닝(PT)까지 세상에 배달되지 않는 게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들은 매일 배달되는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고, 배달된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퇴근해서는 출장 온 트레이너에게 운동을 배우고, 이후 다시 배달된 건강식을 먹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들은 또 배달된 수제맥주를 마시며 전문 북컨시어지(책 전문가)가 한 달에 한번 자신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 배송하는 ‘플라이북’을 통해 배달된 책을 읽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대한민국의 배달산업은 1~2인 가구 및 배달을 통해 시간 소요를 줄이려는 바쁜 직장인 증가, 아울러 배달 패키지 포장 기술 및 택배산업 성장과 맞물려 팽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2년 시작된 한국의 택배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7,000억원까지 성장했다. 모바일생태계의 새로운 플랫폼이 열리면서 배달음식 시장의 성장률도 물가 상승률을 웃돈다. 업계 일각에서는 매년 성장하는 배달음식 시장 규모를 13조~15조원으로 보기도 한다. 대표적 배달 앱인 ‘배달의 민족’은 2014년 500만회에 달했던 월 주문이 지난해 700만회, 올해는 1,000만회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배달 24시’의 이면에는 갈수록 관계 맺기를 꺼리고 점점 비사회적으로 변하는 현대 한국인의 면모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집단사회에서 구두로 정보를 얻어야 했다면 이제는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혼자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된 점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다. 또 치열한 경쟁사회 속 대인관계에서 고조된 피로도의 반작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박탈감과 고독감을 얻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피곤함을 느낄 바에야 문밖으로 나오지 않고 손가락 터치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집단적 관계에서 말로 정보를 얻어야 했다면 지금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외로움조차 웹서핑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충족되기 때문에 굳이 사회적 동물로 살 필요가 없다”며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대인기피증·사회공포증을 앓는 현대인들의 일면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배달을 통한 사적 영역의 확대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동네 빵집, 카페, 재래시장, 도서관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공적 영역이 쇠퇴해 인간관계가 점차 붕괴될 우려도 있다”며 “이렇게 되면 사회 신뢰 약화, 우울증, 자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달산업 성장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배달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편의라는 이름으로 배달원들의 위험과 희생을 담보로 더 빨라지고 있다. 집배원들은 올해만도 11명이 교통사고와 과로·자살 등으로 사망했고 얼마 전에는 과로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사망한 택배기사가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재사고를 당한 음식업 배달원은 연평균 1,500명에 달한다. 부당해고, 임금체불 의혹, 임금꺾기 등 ‘쿠팡맨’을 둘러싼 부당처우 논란 등 배달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과 관련한 사회적 불협화음은 계속되고 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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