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고교학점제 어떻게 운영되나] 10과목 중 7과목꼴 선택...학교 옮겨 다니며 수업도 가능

3년간 이수해야할 204단위중

132단위 수업 직접 골라 들어

인근 학교와 과목 공동개설도

인기 없는 과목 교사들은 불안

선택 못받으면 전근 가야할수도

강사 활용땐 비정규직 양산 우려

지난달 27일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선택형 교육과정의 우수학교로 지정된 서울 한서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참여수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인천의 한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한 김모(19)양은 1학기 시간표 30시간 중 27시간을 직접 골라 수강 신청을 마쳤다. 회계사가 꿈인 김양은 일주일에 4일은 2교시에 ‘확률과 통계’ 수업을 듣고 ‘경제수학’도 4시간을 수강한다. ‘논리학’과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등도 진로를 위해 필요한 수업이라고 생각해 수강 신청했다. ‘진로영어’ ‘언어와 매체’ ‘고전과 윤리’ 등 평소에 관심 있던 수업도 선택해 채워넣었다. 학교에서 정해준 수업은 ‘음악감상과 비평’ ‘스포츠 생활’ 등 2과목 3시간뿐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적성에 맞춰 수업을 선택하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상정한 가상 사례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지정해 운영하는 100곳가량의 연구·선도학교에는 당장 내년에 닥칠 눈앞의 현실이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교육 공약 중 하나다.

고등학생은 재학기간 3년 동안 총 204단위의 수업을 이수해야 한다. 1단위는 50분 수업 기준 17회 이수 수업량이다. 한 학기가 통상 17주인 만큼 한주 한시간 수업 분량이다. 대학으로 치면 1학점인 셈이다. 현행 교육과정은 창의적 체험활동 24단위를 제외한 180단위의 교과수업을 원칙으로 한다. 이 가운데 국어·영어·수학 등 기초 교과의 수업 단위는 90단위를 초과하지 못하고 나머지는 학교가 결정한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은 선택권이 거의 없다.

하지만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 확 달라진다.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아 정부와 학교가 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선생님만 바꿔가며 수업을 듣는 수동적 방식에서 벗어나 교실은 물론 학교까지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대규모 캠퍼스가 있는 대학과 달리 고교생의 학교 간 이동은 시간과 거리 때문에 쉽지 않다”며 “주로 방과 후나 토요일에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 시간표도 크게 달라진다. 수업 과목만 적힌 단순한 시간표는 사라지고 강의실과 선생님 이름까지 표시된 대학교 식 시간표로 바뀐다.





내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시범 실시하는 연구·선도 학교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을 제외한 180단위 중 86단위를 학생이 선택해 들을 수 있다. 필수 이수단위인 94단위에서도 국·영·수 등 공통과목 48단위를 제외한 46단위는 교과군 범위 내에서 제한적 선택이 가능하다. 결국 전체 204단위 중 창의적 체험활동을 포함해 70%에 가까운 132단위의 수업을 학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시범운영 결과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저학년 때 필수 이수과목을 듣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문화된 선택과목을 듣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 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심화 수학’ ‘융합과학 탐구’ ‘생태와 환경’ 등 전문 교과를 중점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외국어 계열은 각국 언어와 문화 수업을, 국제 계열은 ‘국제 정치’ ‘국제 경제’ ‘현대 세계의 변화’ 등을 택하는 식이다. 학생들의 수요가 다양한 만큼 학내에서 소화 불가능한 과목은 인근 학교와 연합해 수업을 개설하거나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게 된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교사들은 학생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국·영·수 같은 입시와 밀접한 필수과목 교사들은 별 걱정이 없지만 다른 과목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전공과목 개설 여부부터 불투명해진다. 경매 시장에 나온 상품의 처지가 되는 셈이다. 일부 교원 노조가 고교학점제에 결사 반대하는 이유다. 학교에 자신의 전공과목이 개설되지 않으면 부전공을 하거나 다른 학교로 순회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서울의 한 소수 과목 교사는 “최악의 경우에는 반강제로 전근을 가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공립에 비해 고용 안정성이 약한 사립학교 교사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일각에서는 일부 소수 과목을 위해 외부 강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 비정규직 교사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고교학점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인기 과목 쏠림 현상, 교사 수급, 학교 시설 개선 등 선결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대통령 공약이라고 무리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입 제도와의 관계 설정도 풀어야 할 숙제다.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를 전제로 하는 제도인데 교육부는 정작 “대입 제도는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할 문제”라며 입을 닫고 있다.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을 위해 서두르다 보니 대입 제도는 그대로 둔 채 고교학점제부터 도입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고교학점제는 내신을 절대평가화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이 없다”며 “국가교육회의가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교육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능현·진동영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