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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호된 신고식 치른 文 경제정책…학계에서 낙제점 받은 이유는

“‘국가가 가장 큰 고용주’라는 생각은 틀렸다.”

“부동산정책은 관료들의 규제논리에 휘말려 실패전력이 있는 엉뚱한 규제만 남발하고 있다. 공급을 최대화시키는 정책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최저임금 공약을 수정하고 탈원전,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기업을 혁파할 객체로 보는 시각을 고치고 국가주의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고 이념대로 경제를 끌어갈 수 있다는 이념주의적 사고방식은 없어져야 한다. 적극적인 규제개혁과 국민과의 소통이 절실하다.”

국내 경제학자 1,000여 명이 1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여 연구성과를 나누는 학술의 장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성토장이 됐습니다. 나이, 전공, 경력,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수요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정책, 실종된 노동시장 개혁, 천편일률적인 교육시스템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졌습니다. 경제학계 원로들은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경제팀에 대한 ‘공개 저격’을 서슴지 않았고 국제적인 시각과 데이터로 무장한 소장 경제학자들도 규제에 치우친 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소신 발언을 내놨습니다.

지난 1~2일 한국경제학회 주관으로 강원도 춘천 강원대학교에서 열린 ‘2018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얘기입니다.





가장 많은 포격을 받은 것은 이미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빚고 있는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입니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16.4% 올렸습니다. 최근 5년간 평균 인상률(7.4%)을 2배 이상 웃도는 급격한 인상폭입니다. 영세 사업주는 물론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됐던 저임금 근로자도 고용 감소, 수당 삭감 등 부작용을 호소하자 정부는 임대료 인상률 상한조정(9%→5%),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 같은 추가 규제책을 줄지어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혼란은 진정될 기미가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이 “국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인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 부의장은 2일 전체회의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임금이 올라가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가정이 맞는지, 노동시장이 얼마나 복잡한지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노동시장의 현실은 (정부가)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하지가 않아 참 어려운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정부가 영세업주들을 돕겠다며 내놓고 있는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나 임대료 인상률 상한조정 방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 부의장은 “수수료율 인하는 시차 효과가 있는데다 혜택을 줄 가맹점의 매출액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 데 이어 “임대료 문제도 보증금·관리비·권리금 등 임대료 시장 자체의 복잡성이 있어서 ‘5% 이상 못 올리게 하겠다’고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부작용을 교정하겠다는 정부의 또 다른 규제책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2일 한국경제학회 주관으로 강원대에서 열린 ‘2018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청년부채를 보는 시각’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춘천=빈난새기자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도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비판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꾸준히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이 교수는 1일 “일자리라는 마차를 성장이라는 말 앞에 둘 수는 없다”며 “최저임금 관련 일자리안정기금을 3조원이나 만들어서 지원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근로자의 실질임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최저임금은) 대체로 5~10% 정도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그 혼란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현 방식은 모순적이라는 것입니다.

서울경제신문이 1일 학술대회에 참석한 경제학자 60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우려는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최저임금 급등이 일자리에 주는 영향을 묻자 10명 중 8명꼴인 78.3%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특별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15.0%에 불과했습니다.

최저임금 급등이 낳을 부작용에 대한 대책으로는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한 새 정부의 공약을 수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46.7%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고 최저임금에 상여금 등을 포함하는 산입범위 조정이 필요하다는 답도 26.7%였습니다.





경제정책 전반이 정부 규제 강화 흐름으로 치우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높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정책입니다. 지난해부터 거듭된 정부의 부동산대책에도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는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1월 서울 집값은 0.86% 올라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고, 강남·송파구는 2%대 급등했습니다. 그 원인으로 서울경제신문 설문조사에 참여한 경제학자의 25.2%는 ‘공급 부족’을 꼽았습니다. 투기심리라고 답한 비율도 23.2%에 달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고, 자사고 폐지 등 교육여건(20.2%)과 정부규제(17.1%)를 고른 응답자도 많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수급을 균형 있게 맞춰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집값 안정 대책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1.7%가 ‘강남급 주거지 공급’을 선택했고 학군 등 교육정책 개선이 28.3%로 뒤를 이었습니다. 최근 정부가 추가 부동산 대책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인상을 고른 사람은 18.3%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결국 무조건 규제를 강화할 게 아니라 강남처럼 교육여건이 좋고 교통이나 주거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제2, 제3의 강남이 많아져야만 특정 지역의 집값 급등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형마트·쇼핑몰 규제… “규제에 치우친 기업정책 바뀌어야”

정부의 기업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정책이나 보완해야 할 부분’을 묻는 질문에 “기업을 혁파할 객체로 보는 시각을 고쳐야 한다” “정부의 기업활동과 노동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모든 문제의 원인” “기업을 죄악시하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기업친화적”이라며 정부가 기업활동을 돕겠다고 강조했음에도 ‘아직은 말 뿐’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압도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국내 대표 소장 경제학자들도 규제에 치우친 기업정책의 변화를 주문했습니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2일 “일본 경제가 살아난 것은 결국 기업들이 살아났기 때문”이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일본은 2015~2016년부터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의 수 자체가 늘어났다”며 “단순히 인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이익이 늘어나고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 최첨단 분야의 경쟁을 이겨내면서 고급일자리도 일본에서 많이 생겨났다는 얘기입니다.

전현배 서강대 교수도 전통시장 지원과 대형마트·쇼핑몰 규제를 당연시하는 시각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전 교수는 “대형마트 등 현대화된 대형체인의 확장은 지역 내 중소형 상점의 진입과 퇴출을 촉진해 소매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역경제 성장을 위해선 진입규제와 기존 업체에 대한 지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생산성이 높은 사업체 중심으로 구조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경제정책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조정능력·유연성 높여라”

청와대 참모진과 문재인 정부 경제팀을 향한 몸 사리지 않는 직언도 쏟아졌습니다. 1일 전체회의에서 주제발표를 맡았던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모든 경제문제를 정부의 시장개입과 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문제”라며 “소득주도성장 같은 잘못된 개념에 집착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정책 개입은 ‘경제 적폐’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차기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인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도 “희망하는 목표와 가능한 목표를 구별하는 기본적인 훈련을 안 한 분들이 지금 정부에 너무 많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최 교수는 “경제학에서는 목적과 제약요건을 구별하는 것이 기본인데 지금 정부에서는 제약요건에 대한 검토를 얼마나 면밀히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문제 하나에만 매몰되다 보니 부작용이 부작용을 낳는 양상인데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조정을 하고 있는 건지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결국 공약에 집착하기보단 다양한 의견과 시장의 현실에 따라 경제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고언입니다. 일본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도 진화를 거듭했다는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의 얘기도 참고할 만합니다. 박 교수는 “‘아베노믹스’란 게 매년 바뀐다”며 “처음에는 허점이 많았지만 약점을 지적받고 계속 보완하다 보니 지금은 상당히 틀을 많이 갖추게 돼 일본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자극제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종원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전 성균관대 교수)은 “소득주도성장론은 지금의 방식으로는 논리가 아직 상당히 빈 곳이 많고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 의견 가진 사람들의 얘기도 좀 듣자”면서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을 인용해 “혁명은 없다. 서서히 바꿔나가야 현실에서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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