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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수많은 안희정 있다" 권력의 추한 민낯

[미투 블랙홀 빠진 정치권]

상명하복 위계질서 강한 문화

평판조회 통한 보직이동으로

성폭력 앞에 여성들 속수무책

정치권 "올것이 왔다" 당혹감





# 국회 모 의원실 비서관인 A(여)씨에게 지난 2012년부터 3년의 시간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의원실 보좌진 중 최고 선임자인 B보좌관(4급)으로부터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 “뽀뽀해달라”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달라” 등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치를 떨었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앞에 있는 여자 가슴이 네 가슴보다 크다”는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았다. A씨의 항변은 소용이 없었다. B씨의 성추행은 A씨가 해당 의원실을 나올 때까지 3년간 이어졌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과 국회 비서관의 미투 폭로가 연달아 터지면서 정치권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전직 의원과 심지어 청와대 인사도 연루돼 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와 평판에 따른 보직이동이 많은 구조 탓에 여성들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6일 국회에 따르면 A씨는 5일 국회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국회 내 성폭력 문제는 그동안 국회 보좌진이 모인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를 통해 언급된 바 있지만 실명으로 피해 사실을 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성폭력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회 내 여성 보좌진은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가 이 같은 현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직급에 따른 상명하복이 명확하다 보니 잘못된 행동을 지적할 경우 오히려 업무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A씨는 “항의할수록 직위를 이용하는 가해 보좌관 때문에 의원실 내에서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토로했다. B씨가 소속된 현 의원실은 “국회 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폐쇄성을 잘 알기에 피해자의 용기에 공감한다”며 B씨를 면직 처리하기로 했다.

상관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도 여성 보좌진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 여성 보좌진은 총 836명으로 전체 보좌진(2,548명)의 32.8%에 불과하다. 최고 직급인 4급의 여성 비율은 7%에 머물렀다. 말단일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남성의 비율이 높아져 내부 분위기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위계적 권력이 강하고 여성의 대표성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왜곡된 조직문화의 영향이 크다”며 “입법기관으로의 위상이 강조되다 보니 오히려 감시의 사각지대가 더 커진 측면도 있다”고 비판했다.



평판 조회를 통한 인사이동이 많다는 점도 운신의 폭을 좁힌다는 지적이다. 상급자의 평가는 물론 소문에 민감한 조직의 특성상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의 한 여성 비서관은 “‘누구누구 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게 삽시간에 의원회관 전체에 퍼지는 게 이곳”이라며 “‘성추문’ ‘불만 많은 애’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보니 위험을 감수하려는 생각을 감히 못 하게 된다”고 전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절망스럽게도 여의도(국회)에는 수많은 안희정이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엄격한 상하관계와 이에 따른 폐쇄적인 조직운영을 볼 때 국회 내 피해사례는 앞으로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 800명이 넘는 여성 보좌진이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표기구는 없는 상황이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이날 긴급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 내 성폭력 실태를 전수조사하겠다”며 “독립기구인 인권센터도 설치해 인권 전반에 대한 상담과 교육·예방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주희·하정연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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