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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속살을 담다…구보타 히로지 국내 첫 개인전

백두산·압록강·금강산…

세계적 다큐 사진가 구보타 히로지

수십년 걸쳐 北 내밀한 곳까지 찍어내

학고재갤러리서 내달 22일까지

구보타 히로지 ‘백두산, 북한’ 1987년작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구보타 히로지 ‘금강산, 북한’ 1986년작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구보타 히로지 ‘압록강 상류, 백두산 인근, 북한’ 1987년작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안개 자욱한 바닥에는 비천상(飛天像) 같은 여성 무용수들이 무릎 꿇은 채 손을 모아 올렸고 그 위로 노동자와 군인들이 전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이 향하고, 바라보는 곳에는 거대한 낫과 망치와 붓으로 이뤄진 북한 노동당의 상징이 빛난다. 지난 5일 대북특사로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과 면담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맨 꼭대기에 걸린 것과 같은 문양이다. 농민과 노동자와 노동당원 지식인을 뜻한다.

1982년 ‘김일성 주석 75번째 생일 축하공연’을 관람하며 이 사진을 찍은 일본 작가 구보타 히로지(79)는 “아주 아름답고(beautiful) 기쁜(joyful) 장면이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슬프더라”면서 “너무 제도적으로 짜 맞춰진 예술이라 그런 것 아니었을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구보타는 세계적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인 매그넘(Magnum) 소속의 유일한 일본 작가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청와대길에 위치한 학고재갤러리에서 다음 달 22일까지 열린다. 작가의 1960년대 초기작부터 대표작 109점을 엄선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관계도 급물살을 타는 요즘 정치상황이 아니었어도 그의 북한 사진은 눈을 끌고 발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안개와 구름 뒤에 숨어 쉽사리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백두산 천지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푸른 물색을 과시한다. 산자락은 빗겨놓은 머리칼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제멋대로 나고 자라 늙고 기울어진 나무가 인적 드문 자연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압록강 상류’ 풍경도 경이롭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안셀 애덤스(1902~1984)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사진이 안 부러운 풍경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자부심을 자극한다.

학생운동이 절정이던 1960년대 초 일본 와세다대 정치학과에 학생이던 구보타는 우연찮게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가를 도우면서 인생항로가 바뀌었다. 그는 정치학도의 꿈을 접고 뉴욕으로 사진 유학길에 올랐다. 새벽4시부터 밤11시까지 음식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1965년에 매그넘 작가가 된 그는 이듬해 크라이슬러의 의뢰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1978년에는 북한땅도 밟았다. 흑인 인권운동, 히피문화, 베트남전쟁 등을 찾아다닌 그는 “원래 한국과 북한에 관심이 많았다”면서도 “북한은 그간 방문해본 어떤 나라와도 다른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신뢰를 얻어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나기도 했으며 수년에 걸쳐 거듭 방문해 북한 지역 내밀한 곳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시간과 그들의 규칙을 지킨 덕에 믿음을 얻었고 그런 내 태도가 그들에게 ‘싫어할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금강산·압록강 등 북한 풍경과 함께 설악산·내장산 등 남한 명산의 장대함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북한 산하가 푸르스름한 위엄을 풍기는 반면 한국의 산에선 햇빛 때문인지 황금빛이 감돌아 따뜻한 경건함이 흐른다. 일사불란한 북한 매스게임과 퍼레이드 못지않게 ‘한강의 기적’을 보여주는 서울의 항공사진도 인상적이다.

중국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지대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중국 45여 지방을 1,000일간 일주하며 격동기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기록했고 이 방대한 문화사적 기록물은 7개 국어의 사진집으로 발간됐다.

전시장 밖에 포스터로 내걸린 미얀마 짜익틱요의 ‘불교성지 황금바위’는 흑백을 고집하던 작가를 컬러사진으로 돌려 앉힌 계기가 됐다. 소원을 빌며 한 장씩 붙인 금박이 거대한 바위를 뒤덮고 절벽까지 흘러내렸다. 자연의 힘과 인간의 의지가 이루는 팽팽함이 벼랑 끝 바위를 붙들고 있다. 미얀마를 특히 좋아한다는 작가는 “천천히 욕심없이 사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좋아서 인생 말년에는 미얀마로가 수도승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조국인 일본과 이방인으로 본 미국, 아시아 각국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이 객관적 풍경임에도 감성적으로 읽힌다. 매그넘 거장 엘리엇 어윗(90·미국)은 “구보타의 능력은 기교 없는 관찰이고, 섣부른 판정 없는 기록이다”라고 했고 정작 작가 자신은 “내게 사진은 집착”이라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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