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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전격연기] 김상조도 호응했지만... 헤지펀드 흔들기에 현대차 '속도조절'

엘리엇 '주주가치 제고' 명분 내세우며 주주 유혹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 논란 트라우마에 방관

"정부 지배구조 개편 작업 속도조절 필요" 목소리





현대자동차그룹이 시장 및 주주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로부터 시작된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지분이 1% 남짓한 엘리엇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반대하며 시작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지원 사격에다 반기업 정서를 바탕으로 한 여론의 동조가 더해지며 임시주주총회 취소라는 결과를 낳았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은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 논란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실상 국부펀드의 역할은 하지 못한 채 소극적인 태도로만 방관했다. 헤지펀드의 공격에 취약한 국내 기업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6일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국내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일부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을 요구했다.

◇31% 꺾은 1.6%=엘리엇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1.6%다. 실제 보유기간도 6개월 미만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의 우호지분으로 평가되는 지분은 31%. 하지만 1%대인 엘리엇의 주장이 훨씬 매력적이었고 이를 추종한 세력들이 결국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멈춰 세웠다.

엘리엇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중 가장 쉽게 논란이 될 만한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았다.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된 이력이 있고 정부까지 나서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을 깔아준 만큼 엘리엇 입장에서는 공세를 이어가기 유리했다.

엘리엇은 모비스의 분할과 글로비스와의 합병이 타당한 사업 논리가 결여됐고 모든 주주에게 공정한 합병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데다 실질적으로 기업경영구조를 간소화시키지 못한다며 비난하고 대신 유보금으로 배당을 늘리라며 주주들을 유혹했다. 소액주주들 역시 각종 배당 등 지배구조 개편안에 따른 플러스 알파를 거부할 리 없었다. 결정적 반대의 역할을 한 의결권 자문기구도 이 논리에 따랐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분할합병 비율 1대0.61에 따라 기존 현대모비스 주주는 현대글로비스 주식도 함께 받게 된다. 모비스 주식 100주를 가지고 있는 주주의 경우 모비스 주식 79주와 글로비스 주식 61주를 받게 돼 향후 모비스 및 글로비스의 성장에 따른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현재 주가로만 계산해도 이익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도 “분할합병 평가는 법령상 요건 및 확고히 형성된 국내 시장 관행을 따랐으며 이사회 및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투명경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충분히 거쳤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국부펀드인 국민연금이 직접적으로 우군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점도 엘리엇에는 호재였다.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지분을 비슷하게 함께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모비스의 분할합병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장기 투자와 기업 가치 개선이라는 점에서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이 어찌 보면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에 따른 문제가 불거진 후이고 계약을 맺고 있는 의결권 자문사들이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직접 나서 외신과 인터뷰를 하고 미국 뉴욕까지 날아가 주주 설득에 나섰지만 이번에 제시한 안으로는 설득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결국 모비스 주총은 취소됐다.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주주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해오지 못한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11일 모비스가 진행한 애널리스트 대상 간담회에서도 이런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합병안이 미래 가치 면에서 좋다고 해도 일단 현대차그룹의 불통 이미지가 한몫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재벌 개혁 빨간불=당장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플랜B를 마련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3년여간 총 100개의 지배구조 개편 모델 중 가장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은 모델을 선택했다.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현재 지배구조를 유지하며 노조와의 임금협상으로 기업 부담을 줄이고 미래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지지 의사를 보였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장도 난처하게 됐다. 정부 주도로 지배구조 개편안을 진행할 경우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음을 현대차그룹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엘리엇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처럼 각 기업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지배구조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엘리엇에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만큼 지배구조 개편에 뒤따르는 경영권 위협에 대한 방어장치 마련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상장사협의회 등은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 세계 주요국에서 보편화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우리 기업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특정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이며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으면 신주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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