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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최저임금 어설픈 봉합 농촌 날벼락]"뼈 빠지게 일해도 빈손...외국인 월급 주려 농사 짓나" 탄식

그나마도 일손 품귀...인건비 부담 치솟아도 울며 겨자먹기

농촌 등 비용압박 심한 지역·업종 최저임금 차등적용 필요

"산업연수생제 도입해 내·외국인 임금격차 벌려야" 지적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따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나 오른데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현물로 지급되는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되면서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나상덕(가명)씨는 요즘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 식구처럼 일하던 직원들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급여를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나씨는 “지난해까지는 해당 직원이 우리 회사에 입사한 연도를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해도 문제가 없었다”며 “최근 자국 근로자들끼리 카톡 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다른 농가에서는 이미 급여를 올려줬다며 이직할 뜻까지 비쳐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올 들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됨에 따라 농촌에서는 거세게 몰아치는 임금 인상 압박에서 더 나아가 급기야 농업인과 근로자 간 갈등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생산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은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이 높아 최저임금의 ‘사각지대’로 통하던 곳이다. 외국인 근로자 상당수가 불법 채널로 입국하면서 관행적으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돈을 받고 일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구인난에다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인건비 인상 압박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번에 국회가 합의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근로자에게 현물로 제공되는 숙박 및 식비 등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농촌은 임금 인상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전남 나주에서 연 소득 30억원 규모의 배 농사를 짓는 이경신(가명) 대표는 “중소제조 업체는 월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면서 임금 인상에 따른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일반 농가에서는 관행적으로 식사나 숙박을 현물로 지급하고 있어 임금 인상 부담은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이를 상쇄할 어떤 보완책도 없는 실정”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농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낮은 농가 소득, 인력수급 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가 화산처럼 폭발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에서 엽채류 농사를 짓고 있는 김수균(가명)씨는 “요즘 농촌을 보면 10명 중 9명은 외국인 근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농민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직원한테 월급 주려고 뼈 빠지게 농사를 짓는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오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농가 소득은 정체 및 감소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농가경제조사에 따르면 2017년 평균 농가 소득은 3,823만원으로 2012년의 3,103만원에 비해 72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더구나 흑자 여부를 나타내는 농가경제잉여액은 지난해 759만원에 불과했다. 1년 동안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흑자가 1,000만원도 안 되는 것이다. 나씨는 “제조업은 제조원가가 매출보다 작으면 포기하면 되지만 우리 농업인들은 (날씨나 작황 등 환경조건으로 인해) 농산물 생산에 100원이 투입될지, 1,000원이 투입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농업은 인건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이익률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김씨는 “우리 농가의 지출 중 80% 이상이 인건비로 나갈 정도로 임금 부담이 높다”면서 “농업이나 어업처럼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업종은 따로 떼어내 최저임금 기준을 책정해주면 안 되겠느냐”며 기자에게 반문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농촌에서 일할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라 큰 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나씨는 “내국인 중에서는 농촌에서 고된 일을 하려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고 그나마도 일하겠다는 사람은 70세가 넘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고용허가제를 통해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공급량이 제한적이라 불법 체류자를 찾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령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가운데 농업인 사이에서는 “전에는 우리가 ‘갑’이었지만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갑’이고 우리는 ‘을’”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표는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카톡이나 인터넷을 활용해 어느 농가가 1,000원이라도 더 주는지 금방 찾아낸다”며 “차라리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일본과 대만처럼 산업연수생제도를 시행해 내외국인의 임금 격차를 30% 이상 벌려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통해 농촌처럼 인건비 압력이 심한 산업군에 맞춤형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농촌처럼 외국인 근로자의 의존율이 높은 업종에서는 인건비 인상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80%로 적용하는 등 지역별·업종별·국적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심우일·김연하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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