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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가슴은 언제부터 영혼까지 끌어올려야 했을까

코르셋부터 브래지어까지
가슴 '영끌'의 역사

  • 정혜진 기자
  • 2018-08-10 13:17:03
  • 인물·화제

코르셋, 가슴, 토플리스, 여성, 브래지어, 속옷, 젠더

[스토리텔링]가슴은 언제부터 영혼까지 끌어올려야 했을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분)가 드레스를 착용하기 전에 코르셋을 착용하면서 거친 숨을 쉬고 있다. /영화 화면 캡쳐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패션아이템 중 하나로는 ‘오프 숄더(Off shoulder)’ 패션이 있죠. 이 의상이 500년 전 중세시대에 등장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지금이야 자연스러운 노출이지만 중세시대만 해도 목, 어깨 둘레의 과한 노출 차림으로 지적을 받았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선이나 어깨를 드러내는 건 더 이상 성적 이미지화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하나 변하지 않는 건 가슴에 대한 노출이죠.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가슴은 언제부터 영혼까지 끌어올려야 했을까’하는 것과 동시에 ‘왜 이렇게 가려야만 하는 게 됐을까’죠.

의문을 풀려면 중세 시대부터 찾아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중세를 지나면서 가슴에는 독특한 ‘감옥’이 생깁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코르셋(Corset)이죠. 엉덩이부터 가슴까지를 꼭 조이기 위해 고래뼈나 목재, 철사를 넣어 만들어 빳빳하고 튼튼합니다.

이 감옥에 들어가려면 여성들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등 뒤에서 코르셋 끈이 조여지면 견갑골은 평평해지고 어깨는 뒤로 젖혀집니다. 여린 살을 단단하게 조이다 보니 위, 간 등 내부 장기는 비좁은 공간 속에 움츠러듭니다. 배를 통한 호흡은 불가능해지죠.

이 감옥의 목적은 가슴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다는 것이었죠. 당시 사람들은 흔들리는 가슴은 단정하지 못하고 보는 것만으로 남성들에게 성적 충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게 일종의 예절로 여겨진 셈이죠. 임산부조차도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으면 교회 입장을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허리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상반신을 압박하다 보니 코르셋을 입은 채 제대로 앉고, 뛰고, 먹는 등의 일상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코르셋을 착용하면 어떤 행동들은 하기 힘들어지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었죠.

[스토리텔링]가슴은 언제부터 영혼까지 끌어올려야 했을까
한 여성이 코르셋을 착용한 모습. 허리부터 가슴까지 이르는 상체가 전부 조여져 숨 쉬기가 힘들어 보인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아름다운 가슴을 평가하는 기준도 엄격했습니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봉긋하되 크지 않은 가슴을 이상형으로 삼았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가 중요했죠. 중세시대에는 ‘사과 형태이되 손으로 가릴 정도의 크기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기준이 나올 정도였죠.

그러다 19세기부터 풍만한 가슴을 좋아하는 흐름이 생기면서 여성들은 납작한 가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슴에 연고를 바르거나 ‘가짜 가슴’을 덧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슴을 열심히 가꾼 건 성적 매력으로서의 가슴 때문이었습니다.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영국의 헨리 7세는 첫 아내가 사망한 후 재혼을 생각하던 중 페르난도 2세의 미망인인 나폴리의 젊은 왕비를 관찰하기 위해서 사절들을 보냅니다. 그가 사절에게 요구한 건 가능한 한 왕비가 착용한 드레스의 목선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큰지 작은지 그녀의 가슴과 젖꼭지를 주목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시대가 흘러도 가슴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때 바뀌지 않는 기준은 있었습니다.

‘처진 가슴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진 가슴은 이미 수유를 끝냈거나 임신한 여성을 떠올리게 해 성적 매력을 잃은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중세부터 여성들의 가슴을 조였던 코르셋이 20세기 들어 여성들이 생산활동 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후에 이를 대체해 나타난 브래지어는 무겁고 불편한 코르셋과 달리 가슴을 가볍게 눌러주는 게 목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또 다른 용도가 생겨납니다. 가슴을 처지지 않게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1899년 처음 브래지어로서의 코르셋이 특허를 받은 뒤 1907년 잡지 ‘보그(Vogue)’에서는 브라시에르라는 모델을 소개합니다. 이때의 명칭을 따 오늘날의 브래지어가 알려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두 개의 손수건과 리본으로 구성돼 가슴을 눌러줬다면 이후 1940년대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가슴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탄두 브래지어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스타일의 브래지어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가슴을 더 커 보이게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선호하게 됐죠. 1950년대에는 마릴린 먼로가 착용했던 콘 브래지어 형태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1960년대에 가슴선은 최대한 끌어올리고 가슴골을 노출한 원더 브래지어의 시대가 옵니다.

결국 브래지어 역시 가슴을 들어 올리는 용도로 진화하게 된 겁니다.

‘여성의 가슴에는 왜 이렇게 제약이 많을까’

브래지어가 가슴을 끌어올리게 변화할수록 일부 여성들에게는 하나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의문 때문에 1968년 미국에서는 브래지어를 쓰레기통에 던지는 시위가 일어났고 상의를 벗고 메시지를 전하는 토플리스(Topless) 형태의 시위가 늘어났습니다.

여성들의 문제의식이 더해져 점차 가슴을 덜 압박하는 브래지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첫 스포츠 브래지어가 나와서 브래지어를 입고도 격렬한 스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돼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노브라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들은 홑겹 원단이나 레이스로 가슴을 감싸는 브라렛(Bralette)이나 가슴을 받치는 와이어와 봉제선이 없는 심리스 브래지어를 선호합니다.

[스토리텔링]가슴은 언제부터 영혼까지 끌어올려야 했을까
한 속옷 매장에 봉제선을 없앤 심리스 브래지어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브래지어는 여성들의 요구에 맞춰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여전히 불편해합니다.

이들이 브래지어보다 불편해하는 건 가슴을 성적 이미지화하는 시선들일 수 있습니다. 이 시선이 만든 감옥을 피하기 위해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간다는 거죠.

이 때문에 가슴을 성적이미지화하는 시선이 있는 한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할 수 있는 또 다른 ‘감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코르셋이 브래지어로 명칭과 형태만 달리해 나타난 것처럼요.

토플리스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가슴은 음란물이 아니다’, ‘가슴은 여성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토플리스 운동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인류문명과 함께 사회적으로 형성돼온 가슴의 성적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고 합니다. ‘가슴이 여성의 신체 일부인 건 맞지만 타인의 시선과 생각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연유진·정혜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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