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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우리는 언제부터 '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에 살게됐을까?

2000년 래미안·e편한세상 시작으로 브랜드 시대 개막

집값을 올리고 싶다는 욕망 자극하며 시장 재편

브랜드 세탁, 국적불명 프리미엄브랜드 만들며 기형화





30평대 브랜드 아파트를 소유하고 중형 자동차를 타는 화목한 4인 가족.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입니다. 중산층이 되어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브랜드 아파트가 있습니다. 아파트가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에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그런데 외국에서는 서민들이 주로 주거하는 형태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욕망의 대상으로 떠오른 걸까요? 우리는 어떻게 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에 살게 됐을까요?

1999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아파트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 주도로 아파트를 짓던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아파트의 이름에는 종암아파트, 마포아파트, 한강아파트와 같은 지명이 붙었죠. 아파트의 위상도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라기보다 서울로 몰려든 서민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실험적 건축물’이었죠.



1970년대 중반부터 여의도 개발계획 아래 민간건설사들이 지은 아파트들이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이름은 여전히 무미건조했죠. 달라진 게 있다면 삼익아파트, 한양아파트처럼 지역과 함께 건설사의 이름이 붙었다는 정도랄까요?

강남 개발과 함께 중대형 평형으로 지어진 고급아파트의 ‘시조새’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작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76년 1차가 완공된 뒤 지금도 초고가 아파트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건설사인 ‘현대건설’에 아파트를 합쳐놓은 이름이 붙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브랜드가 붙게 된 것은 2000년. 삼성물산이 ‘래미안’과 대림건설의 ‘e편한세상’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분양은 e편한세상이, 발표는 래미안이 먼저 하는 바람에 최초의 자리를 두고 논쟁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자 무미건조한 건설사의 이름으로 가득했던 아파트 시장은 순식간에 브랜드 아래 재편됐습니다. GS건설의 자이,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포스코의 더샵 등 브랜드가 2000년대 초반부터 연이어 발표됐죠.

뒤늦게 브랜드를 런칭한 후발주자들은 당대의 톱스타들로 광고를 채웠습니다. 브랜드 아파트에 살면 톱스타들처럼 우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겠죠? 이영애, 김태희, 장동건, 이병헌 등이 아파트 브랜드의 광고모델을 맡았죠.





여기에 2002년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타워팰리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울 강남 도곡동 한복판에 우뚝 솟은 타워팰리스는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분양이 나기도 했지만 당시 분양가는 평당 1,400만원 수준이었죠. 그러다 점차 가격이 3배 이상 치솟아 지금 시세는 3.3㎡당 5,000만원에 달합니다.

타워팰리스의 성공은 아이파크삼성, 목동 하이페리온, 성수 갤러리아포레 등 건설로 이어지며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시대를 열었어요.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아오른 주상복합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건 사회적인 지위도 그만큼 올려준다는 만족감을 주니까요. 타워팰리스와 같은 특정 아파트 주민들에게만 초청장을 발송해 금융상품이나 명품을 파는 ‘입주민 마케팅’도 시작됐습니다.

이때부터였습니다. ‘너 어디 사니?’라는 물음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지역과 함께 아파트 브랜드를 말하기 시작한 것 말입니다. “타워팰리스”, “반포래미안”처럼 말이죠. 사는 곳을 밝히기만 해도 나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파트에 주거공간의 의미를 넘어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위치재’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브랜드 세탁을 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공공임대 주택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공기업 LH나 LH의 아파트 브랜드 ‘휴먼시아’를 이름에서 빼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시공에 참여한 대형 민간건설사의 브랜드가 대신 붙었죠. 오래전에 지어진 삼성아파트, 대림아파트 등은 래미안, e편한세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기도 했습니다.



기존 브랜드보다 더 고급임을 내세우는 프리미엄 브랜드도 생겼습니다. 대림산업의 ‘아크로비스타’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스타트를 끊은 뒤 ‘래미안 퍼스티지’, ‘자이 프레지던스’, ‘푸르지오 서밋’ 등이 나왔습니다.

사실 거창한 수식어가 나열돼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작명은 국적불명의 외래어의 조합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브랜드의 탄생이 계속 이어지는 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특별하게 보이게 하고 집값을 올릴 수 있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집이 자산의 전부이며 서민들이 집값만 바라보고 사는 한 집값을 올려준다는 브랜드의 마법을 기대하는 심리는 사라지지 않겠지요.



더구나 교통, 교육, 문화, 일자리 등 인프라 시설이 특정 지역에 몰려있고 이로 인한 생활수준에 격차가 있다는 점도 아파트의 브랜드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여건이 좋은 이른바 ‘부자동네’에 새로운 브랜드의 아파트가 나온 뒤 이들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누리고 싶은 지역에서 브랜드를 가져와 부자동네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식입니다. 브랜드로 가려놓은 진짜 생활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브랜드 아파트를 향한 열망은 자산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과 주거여건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기형적인 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에서 벗어나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연유진·정가람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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