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적폐 낙인 공무원들의 슬픈 자화상] "前정권 정책 주도" 고용부 100명 조사...산업부 '에너지통' 줄교체

공정위 前부위원장은 삼성 합병때 근무 경력에 퇴진

문체부 블랙리스트 뒤진다며 130명 수사의뢰·징계

"역량 인정받던 간부들 밀려나...일할 맛 나겠나" 토로





지난 17일 대구고용노동청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몰려들었다. ‘삼성 봐주기 인사’라는 손팻말을 든 조합원들은 얼마 전 부임한 권혁태 대구고용청장의 퇴진을 소리높여 외쳤다. 권 청장은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 의해 ‘적폐’로 분류됐고 본부 요직인 고용서비스정책관에서 대구고용청장으로 물러났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에 관한 근로감독회의를 이끌어 수사를 무산시켰다는 게 권 청장에게 제기된 혐의다. 하지만 권 청장은 “당시 서울고용청장으로서 회의 참석 지시를 받았을 뿐 아무런 역할도 한 게 없다”며 억울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이처럼 공무원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정권은 바뀌어도 자리를 지키는 ‘늘공(늘 공무원)’인 이들은 “전 정부 정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좌천성 인사나 퇴직 압박을 받는 형편이다. 고용부의 한 간부급 직원은 “외부 태스크포스(TF)가 지난 정권에서 지시한 업무를 샅샅이 헤집고 1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조사했다”며 “역량을 인정받던 간부들이 적폐 논란 속에 줄줄이 요직에서 밀려나면서 부처 사기도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 노동개혁이었던 이른바 양대지침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관여한 고용부 국장급 간부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정지원 전 부산고용노동청장이 23일자로 명예퇴직하는 것 외에도 일부 국장들이 본부 요직에서 지방청으로 물러났다. 삼성 불법파견 근로감독 문제와 관련해 이태희 전 대구고용노동청장도 본부에서 인사 조치를 당했다. 그는 최근 명예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기관 채용건으로 적폐로 몰린 사례도 있다.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채용비리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갑질문화 등 생활 속 적폐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뒤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의 A국장을 전격 구속했다. 그가 한국서부발전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점수 조작을 지시한 것을 비롯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A국장은 4월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산업부 내에서도 선두를 달리던 엘리트 공무원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 뒤였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라며 “무죄가 나온들 개인의 삶은 누가 보상해줄 것이냐”고 토로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지난달 오후 6시 정시퇴근을 한 뒤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뒤 산업부 에너지 라인이 통째로 바뀌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을 총괄했던 우태희 전 2차관과 김학도 전 에너지자원실장이 지난해 7월과 9월 옷을 벗었다. 이후에도 에너지산업정책관과 에너지자원정책관·원전산업정책관·에너지산업정책단장이 모두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도 문제가 됐다. 산업부 안에서는 에너지 라인이 초토화됐다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오히려 탈원전이 적폐가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신영선 전 부위원장은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때인 지난해 1월 임명됐다. 하지만 올 1월 청와대의 반대로 결국 임기 2년을 남겨 두고 스스로 물러났다. 2016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공정위 사무처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예산실도 현 정부 출범 초 재정 확대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적폐로 몰리기도 했다.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이미 풍비박산이 난 문화체육관광부도 최근 민관 합동기구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로부터 총 130명에 이르는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에 대해 수사 의뢰 또는 징계를 권고받았다. 문화부는 5월 윤미경 전 국립극단 사무국장을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로 임명했지만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이 제기되자 하루 만에 취소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수장이 없다. 익명을 요청한 전직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실무자도 많은데 문화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가담자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사법부 판사들도 ‘적폐’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부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사태가 터지자 재판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급기야 현직 부장판사들이 연이어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은 당시 사법부를 위해 적극 나섰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재판거래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일찌감치 법복을 벗고 검찰 수사에 응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박병대 전 처장 등이 다음 조사 순서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역시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나 정점식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 전 전현준 대구지검장 등이 좌천성 인사를 당한 뒤 옷을 벗었다. /세종=이종혁·강광우기자 안현덕·나윤석기자 2juzs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