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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크리스마스 전야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이겁니다. (…) 크리스마스날 저는 이삿짐센터에서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 사다리차로 올라가 그 창문을 다 떼잖아요. 그 텅 빈 틀 너머로 우울한 하늘이 가득 보였는데, 정신없이 짐을 나르다가 어느 순간 포근해 보이는 눈송이가 창틀을 넘어서 텅 빈 방 안으로 천천히 하나둘씩 조용히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그 순간 정지 버튼을 누른 듯이 분주하던 그 모든 게 정지하고 눈송이만 하나둘씩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거예요. 그저 그 순간 입을 벌린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없었습니다. 그런 크리스마스이브에 일해야 하는 처지를 탓할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 불평을 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실은 속으로는 일하고 있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핑계를 대면서 돈을 안 쓸 수 있잖아요.”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2019년 열림원 펴냄)

올해 우리는 유례없는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시끌벅적하게 파티를 열어서도 안 되고,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쇼핑을 갈 수도 없다. 호화로운 식당에서 만찬을 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작고 고요하게, 아무 날도 아닌 듯 최소한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는 해마다 늘 이렇게 조그만 크리스마스를 보내온 이도 있을 것이다. 흥겨운 캐럴도 달력의 빨간 글자도 자신의 몫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들. 크리스마스에도 평소처럼 일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타인들이 아낌없이 돈을 쓰는 날이기에 자신이 그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그 흥청거리는 날을 성실한 노동으로 묵묵히 메꾸는 사람들. 김애란 작가는 크리스마스에 고된 이삿짐 일을 하던 대학생에게 축복처럼 위로처럼 날아든 눈송이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올해는 소소한 나만의 공간에서 작고 겸허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잊기 좋은 이름’과 풍경들을 기억하고 싶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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