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년이 저물었습니다. 초유의 감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공상과학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됐습니다. 게임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요. “게임중독은 질병”이라고 선언했던 세계보건기구(WHO)가 사회적 거리 두기 일환으로 게임을 장려하는 입장으로 선회하며 ‘따로 또 함께 놀기(#Play_Apart_Together) 캠페인을 전개하는 일도 있었죠.
연초부터 연말까지 다수의 기대작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게임 수요가 늘면서 ‘코로나 특수’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숲’, ‘라스트 오브 어스2’, ‘사이버펑크 2077’ 등 게이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게임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게임계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올해 최고의 게임, 최다 ‘GOTY(Game of the year·올해의 게임)’는 어떤 게임 앞으로 돌아갔을까요?
가장 많은 게임 매체로부터 올해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되는 ‘최다 고티(GOTY)’는 모든 게임 제작자들의 꿈일 겁니다. 역대 최다 고티 작품을 살펴보면 ‘콜 오브 듀티’, ‘기어스 오브 워’, ‘언차티드’, ‘엘더스크롤’, ‘폴아웃’, ‘레드 데드 리뎀션’, ‘오버워치’, ‘더 위쳐’, ‘젤다의 전설’ 등 이미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수작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래픽, 사운드, 스토리 등 기본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대중성과 게임성을 두루 갖춘 게임만이 최고의 게임이라는 최다 고티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라스트 오브 어스2(라오어2)’, ‘사이버펑크 2077’처럼 이미 수년 전부터 게이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AAA급’ 대작 게임들이 다수 공개된 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들 게임은 서로 다른 이유로 출시 이후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지탄을 받으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게임이기도 합니다. 라오어는 독선적인 스토리 전개로 인해, 사이버펑크는 게임 퀄리티 논란에 휩싸였죠.
이에 올 최다 고티 수상작은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안갯속입니다. 수상을 하든 그렇지 못하든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최다 고티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협소하게는 5대 게임 시상식으로 꼽히는 BAFTA, D.I.C.E 어워드, GDC,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 더 게임 어워드에서 선정한 고티를 가리킵니다. 이 중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와 더 게임 어워드만 수상작을 발표한 상황인데요. 나머지 3곳에서 어떤 게임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협의의 최다 고티 향방은 결정되는 셈입니다.
어차피 우승은 라오어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와 더 게임 어워드는 나란히 올해 최고의 게임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2를 꼽았습니다. 라오어2는 그래픽과 사운드, 상황별 상호작용과 액션 요소, 연출, 장애인 접근성 등 모든 측면에서 콘솔게임의 레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역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로 인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전작에서부터 많은 이들을 몰입하게 한 주요 인물을 쓸쓸하게 퇴장시켜버리면서 원성이 극에 달했죠.
호불호가 갈리는 엔딩으로 인해 게임 평단과 대중의 평가가 극명하게 나뉜 게임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게임이 과연 올해의 고티를 차지할 수 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사의 의도를 존중해야 할지 여러 가지 질문이 따라 붙는 상황입니다. 현재 라오어2는 집계 결과 현재까지 전 세계 119개 웹진으로부터 고티로 선정되는 등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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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번, 사이버펑크
다음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작, 사이버펑크 2077입니다. 사펑은 제작 기간만 8년에 투입된 개발비용은 1억1,100만 달러(약 1,200억원)가 넘는 ‘더 위쳐’ 제작진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출시 일정이 수차례 미뤄지는 와중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직전 행해지는 과도한 집중근무)’에 대한 폭로로 게임사 안팎이 시끄러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출시는 됐으나 콘솔 최적화 문제와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의 오류, 부족한 콘텐츠 등으로 과장 광고 논란에 집단소송에까지 휘말렸죠. 개발사 CD프로젝트의 주가는 40% 가량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나친 기대감을 걷어내고 보면 사이버펑크가 괜찮은 게임이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고티를 종합하는 블로그에 따르면 캐나다의 ‘와치모조’, 러시아의 ‘DTF 리더스 초이스’, 독일의 ‘BR24’ 등 13개 웹진은 사펑을 고티로 선정하면서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즐길 거리가 많은 훌륭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동숲·하데스…'옳게 된 고티'론
이외에도 인디게임 ‘하데스’,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 ‘고스트 오브 쓰시마’, 전 세계적인 화제작 ‘모여봐요 동물의숲’ 등이 많은 웹진으로부터 고티로 선정됐습니다. 하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한 로그라이크 장르의 게임으로 뛰어난 타격감과 더불어 신선한 플레이 방식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숲은 누적 2,600만장을 판매하면서 코로나 시기 게이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힐링게임’으로 자리매김했죠. 특히 AAA급 게임으로 손꼽힌 두 후보작 라오어와 사펑이 게이머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이들 게임이 재평가되는 경향도 뚜렷합니다.
올 2021년에도 게이머들을 즐겁게 하는 고티 경쟁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히트맨3’. ‘엘든 링’, ‘파 크라이6’, ‘다잉 라이트2’ 등 신작 라인업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특히 국내 게임으로서는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이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쳐 게임으로 개발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고티를 목표로 4분기 출격을 선언했습니다. 붉은사막이 한국 최초의 제대로 된 AAA급 게임으로 이름을 날릴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입니다.
최다 고티라고 해서 반드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게임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선정하는 기준, 시기도 매체별로 상이하고 이를 집계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스토리 위주의 어드벤쳐 게임이 상대적으로 고티를 받기 유리하다든가 하는 통념도 존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고티로 선정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게임이 고티로 선정됐다고 해서 지나치게 열을 올릴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다 고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올 한 해 게임 속에서 찾아낸 재미일 테니 말입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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