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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 먹으며 철창 갇혀 발정제…저는 새끼 낳는 기계입니다

[지구용 리포트]

◆펫샵 그늘 속 '번식견'의 눈물

무허가 번식장 비닐하우스서 강제 출산

한켠엔 자궁수축제·주사기 등 무더기로

영양실조·탈장…강아지들 병든 채 방치

품종견 선호에 합법적 번식장마저 열악

加·獨 등 선진국선 펫샵 동물판매 금지

지난해 12월 경기도 남양주의 한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 /사진 제공=위액트




펫숍의 화사한 조명 아래 꼬물거리는 강아지들. 그 뒤에는 열악한 번식장에서 끊임없이 강제로 출산하는 번식견들이 있다.

지난해 12월 동물보호단체 위액트가 구조한 248마리의 번식견들은 이제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를 받게 됐고 일부는 무사히 반려 가정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품종견’ ‘품종묘’를 찾는 이들과 펫숍이 존재하는 한 마리당 수십 만원에 달하는 이익을 노리고 번식장을 짓는 이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4일 위액트 활동가들은 경기도 남양주 일패동에서 무허가 번식장을 발견했다. 12월 6일부터 며칠에 걸쳐 구조에 나섰다. 네 명의 소유주는 “반려 목적의 개”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리 봐도 사실이 아니었다. 비닐하우스 다섯 동에는 어림잡아 200마리 넘는 개들이 ‘뜬장(밑면이 뚫린 철제 사육장)’에 갇혀 있었고 밥그릇에는 얼어가는 음식물 쓰레기뿐이었다. 번식장 한편에서는 발정제와 자궁수축제(옥시토신)·주사기들이 발견됐다. 개들이 끊임없이 새끼를 낳도록 하는 용도다.

번식장에서 발견된 발정제· 자궁수축제 등 약품과 주사기. /사진 제공=위액트


동물 판매 허가도 없이 번식장을 운영해온 소유주들은 위액트 활동가들에게 오히려 고성을 지르며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소유권을 포기했다. 현장까지 달려온 남양주시 동물복지팀·환경팀·건축팀 공무원 10여 명이 지원한 덕분이다. 소유주들이 어긴 것은 무허가 동물 생산·판매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뿐만이 아니었다. 무허가 번식장 설치와 번식견들에 대한 음식물 쓰레기 급여, 발정제·자궁수축제 주사 등은 물환경보전법·가축분뇨법·사료관리법·수의사법 위반이다. 그러나 소유주들이 앞으로 받을 처벌은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혹여 이들이 가족 명의로 번식장 운영 허가를 받는다 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뜬장에 갇혀 살던 번식견들은 5~8세로 추정됐다. 피부병 때문에 피가 나도록 몸을 긁는 개, 지독한 치석 때문에 턱뼈가 녹아내린 개, 잦은 출산으로 유선종양을 앓는 개들이 흔했다는 설명이다. /사진 제공= 위액트


수십 명이 뭉쳐 구조한 번식견은 모두 248마리. 이후 뱃속의 새끼들이 태어나면서 298마리로 늘었다. 대부분의 개는 영양 부족, 근친 교배로 인한 유전병, 반복된 출산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번식장 소유주들은 자궁이 탈장된 모견조차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었다. 17마리가 구조 직후 세상을 떠난 이유다. 기생충, 피부병, 이빨의 절반 이상을 뽑아야 할 만큼 심각한 구강 질환은 대부분의 번식견에서 발견됐다.

구조된 개들 중 140마리는 위액트에서, 나머지 141마리는 다른 동물보호단체와 개인들이 보호하고 있다. 다행히 이들 중 일부는 반려 가정을 찾기도 했지만 여전히 치료 중이거나 사람을 극도로 피해 훈련 시설에 들어간 개들도 있다. 그리고 현재 23마리는 임시 대피소에서 보호받고 있다. 남양주 번식장의 참담한 실상을 접하고 십시일반 기부한 이들 덕에 마련한 대피소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임시 대피소에서 만난 개들 중 상당수는 사람을 매우 따랐다. 대피소의 개들은 푸들·몰티즈·포메라니안 등 펫숍에서 인기가 높은 소형 품종견이었다. /사진=유주희 기자


마지막 한 마리까지 반려 가정을 찾고 나면 임시 대피소는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하지만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그때쯤이면 또 다른 아이들을 구조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슷한 불법 번식장이 전국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번식장’이 훨씬 나은 것도 아니다. 조문영 위액트 대외협력팀장은 “합법 번식장이라 해도 동물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합법적인 ‘동물생산업자’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 몸 길이의 가로 2.5배, 세로 2배 이상인 케이지’ ‘출산과 출산 사이의 기간은 10개월’ 등을 지켜야 하고 신규 영업자는 뜬장을 설치할 수 없으나 기존 영업자가 이미 설치한 뜬장이라면 이 중 절반 이상에 대한 ‘평판 설치’ 같은 규정만 지키면 된다. 여전히 열악한 데다 실제 준수하는지 여부를 일일이 단속하기는 어렵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지난 2018년 3월 개정된 동물보호법을 재차 개정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다.

살풍경한 남양주 번식장의 번식견들. /사진 제공=위액트


성황리에 운영 중인 번식장과 펫숍이 사라질 수는 있을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나 동물보호단체의 보호시설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한 비율은 8.8%, 유기동물을 데려와 키우는 비율은 6.2%로 전년도 조사보다 각각 4%포인트, 3.8%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펫숍에서 동물을 ‘사온’ 비율도 22.5%로 1년 전보다 3.9%포인트 증가했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312만 9000가구(2020년 기준, 통계청). 1가구당 1마리로 계산해도 70만 마리 이상이 펫숍 출신인 셈이다. 펫숍의 품종 동물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는 한 동물 생산·판매업자들이 마리당 많게는 수십만 원에 달하는 수익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리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천한 국가들도 있다. 영국은 6개월 미만의 어린 동물 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프랑스는 오는 2024년부터 펫숍의 개·고양이 판매를 금지할 예정이다. 캐나다, 독일, 미국 뉴욕·캘리포니아주도 펫숍에서의 동물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아야 한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실현 가능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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