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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통화정책만으론 저성장 못막아"…재정·구조개혁 쓴소리 예고

[통화정책 울타리 넘는 韓銀]

◆이창용 신임 총재 취임

재정보단 민간 주도 성장에 방점

"韓銀 본연역할 물가와 금융안정

조사 역량 높이고 소통 늘릴 것"

통화정책 변수에 의사 표현 의지

성장 감안한 긴축 행보 나설듯

보수적 조직 대대적 변화 예고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 인근의 부영태평빌딩 내 컨벤션홀. 키 190㎝가 넘는 장신의 이창용 신임 한은 총재가 취임식장으로 들어섰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300여 명의 직원들 앞에 선 그는 A4 용지 8쪽에 달하는 취임사를 통해 중앙은행 고유의 기능인 통화정책뿐 아니라 정부 재정 정책과 구조 개혁에도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조용한 절간과도 같다는 의미가 담긴 ‘한은사(韓銀寺)’로 불리던 보수적 조직인 한은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발언이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는 전문성 제고와 외부와의 소통 확대, 글로벌 이슈 발굴 등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이 총재가 취임 첫날 메시지로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를 꺼내든 것은 통화 당국 수장으로서 그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4%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1862조 원의 가계부채 등이 부각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마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영업자 지원, 병사 월급 200만 원 지급 등 포퓰리즘 정책은 여전하다. 긴축 시그널을 보내면서도 실상은 유동성 확대가 계속되면서 이 총재의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 운용 방향과 조직 관리 방안 등을 주로 강조해온 전임 총재와는 결이 다른 취임사가 나온 배경이다.

이 총재는 “한은 본연의 역할은 물가와 금융 안정인데 왜 이렇게 큰 거시적 담론을 이야기하는지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했을 때 한은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총재는 가파르게 늘어가는 가계 및 정부 부채와 함께 구조 개혁 과정에서 불거질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를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있는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시장에 긴축 시그널을 보내면서도 성장 잠재력 훼손 요소를 항상 유의하겠다고 밝힌 이전 발언과 맥이 닿아 있다.



윤석열 차기 정부도 한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은이 물가 안정만을 명분으로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릴 경우 가계와 기업의 잠재 부실이 터져 성장률 타격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장금리가 뛰는 상황에서 국채 매입의 우군으로서 한은의 역할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 총재로서는 중앙은행 역할 확대라는 화두를 통해 통화량 증감에 영향을 주는 여러 변수를 챙기고 여기에도 직간접적인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가 취임 전까지 8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으로 일해온 점도 한은 역할 확대론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가 우선순위인 국제결제은행(BIS)과 달리 성장에 관심이 더 큰 IMF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신임 총재의 성향이 반영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한은의 조사 역량 강화와 정부와의 소통 강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총재는 지명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나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성장 동력을 훼손하지 않는 통화정책의 중요성과 함께 정부 당국자와도 자주 만나 정책 조율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이 총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환담에서 “거시경제의 안정을 위해 쓴소리도 하겠다. 조용한 조언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조언자가 되겠다”고 강조한 것도 정부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문가들도 경제위기 국면에서 전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한은도 독립성과 중립성에만 매몰되지 말고 정부·시장과의 소통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70~1980년대만 해도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맞서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가치였다”며 “하지만 지금의 경제 상황은 워낙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통화정책만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 총재가 이날 2400명이 넘는 한은 직원과의 첫 대면에서 역량 강화를 독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총재는 전문성 제고, 외부와의 소통 확대, 글로벌 이슈 발굴 등을 통해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를 뒷받침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여러분 모두가 각자 맡은 분야의 대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한 연구 성과를 서랍 안에만 넣어두지 말고 정부, 시장, 민간 기관과도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노조에 따르면 자체 설문 결과 조합원의 56%가 이 총재 취임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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