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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는 건달같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18 11:09:10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어느 여자의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벚나무는 봄마다 나무인 걸 잊은 채 갓길 걸어간다. 겨우내 주린 벌 나비에게 꽃받침 잔술 팔다가 한 잔 두 잔 제가 비우고 취해 비칠거린다. 바람 불 때마다 한 소리 또 하며 하르르 까르르 웃는다. 꽃을 피운 건 봄이 아니라 제 -
해당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11 14:10:47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못 들은 체 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
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04 14:17:33밥은 사랑이다.한술 더 뜨라고, 한술만 더 뜨라고 옆에서 귀찮도록 구숭거리는 여인네의 채근은 세상 가장 찰지고 기름진 사랑이다.그래서 밥이 사랑처럼 여인처럼 따스운 이유다. 그 여인 떠난 후 주르르륵 눈물밥을 삼키는 이유다.밥은 사랑이다.다소곳 지켜 앉아 밥숟갈에 촉촉한 눈길 얹어주는 여인의 밥은 이 세상 최고의 사랑이다.아홉 줄 짧은 시 한 편 밥상머리에 두 여인이 앉아 있다. 연신 경상도 사투리로 구시렁거리며 -
사랑, 당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28 11:17:39앞마당 평상 위 둥근 밥상에서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밥을 가족이 함께 먹던 그때땅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꽃송이 그 꽃자리에 남겨진 까만 꽃씨가 통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때서툰 몸짓으로 머뭇거리리다가 말하지 못한 것이 이별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그때상처가 상처를 보듬어야 새살이 돋는다는 것을 알았던 그때 그때, 늦은 인사가 되어버린 사랑, 당신그때 너는 밥이 땀이라는 것을 모르고 먹어도 될 아이였단다. 그때 너는 -
화장을 한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21 17:14:11벚꽃 구경 간다고 89세의 할머니 이빨은 없고 잇몸만 남은 입술에 화장을 한다. 뚝! 떨어진 동백이 땅에서 더욱 붉고 곱게 피어 있듯 화장품을 바른다. 23살의 손녀 화장품을 빌려서 검버섯 위에 곱게 바른다. 꽃에게 이쁘게 보여야지. 그 뜻을 아는지 벚나무들은 잠시 빌린 허공의 무대를 환히 채운다. 향기로 채우고 색깔과 빛을 공연하면서 잠시나마 세상을 환히 밝힌다. 딸아, 할머니 입술 닿은 립스틱 닦아내며 툴툴거렸지?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14 17:36:42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너는 혼군의 고막을 울릴 목청을 지녔으나 스스로 소리 지르지 못하고,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주먹을 지 -
길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07 11:39:43지난 봄 내 길에서도 돋아나 어여쁘던 꽃들아 아가들아 어디로 갔니 따뜻하던 햇살아 너희들 어느 곳에 가 거기 포근한 품안이게 하니아으 동동다리 겨울 길 위의 두 다리 하나뿐인 길을 가는데 또 걷고 싶어 봄 길은 어디 있나 화창한 봄 길을 걸을 나머지 두 발은 어디 있나 봄이 오는 속도를 아시는가?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봄의 속도를 재어보면 시속 1킬로미터가 채 안 된다고 한다. 처음 걸음마를 뗀 아기의 보행 속도와 -
사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28 17:14:09마흔에 혼자된 친구는 목동에 산다 전화할 때마다 교회 간다고 해서 연애나 하지,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다가 목소리에 묻어나는 생기를 느끼며 아, 사랑하고 있구나 짐작만 했다 전어를 떼로 먹어도 우리 더 이상 반짝이지 않고 단풍잎 아무리 떨어져도 얼굴 붉어지지 않는데 그 먼 곳에 있는 너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으니사랑은 참, 눈도 밝다시인 예이츠는 ‘와인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그것만이 우리 -
지금도 짝사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21 18:01:51사람을 사랑하면 임금은 못 되어도 가객歌客은 된다.사람을 몹시 사랑하면 천지간에 딱 한 사랑이면 시인詩人은 못 되어도 저 거리만큼의 햇살은 된다, 가까이 못 가고 그만큼 떨어져 그대 뒷덜미 쪽으로 간신히 기울다 가는가을 저녁볕이여! 내 젊은 날 먹먹한 시절의 깊은 눈이여!사람을 사랑한다면 세습 왕조의 눈먼 임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설령 서툰 가객이 되어 남의 심금 울리지 못하더라도 제 슬픔이야 종일토록 노래할 -
씨앗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14 18:01:46이것은 꽃의 압축파일이다감 씨를 반으로 따개면 흰 배젖에 감싸여 오뚝 서 있는 고염나무 한 그루 내 아기집 속에 있던 1mm의 아기 초음파 영상 같은감 씨 속엔 감나무의 숨겨진 전생이 있다 감나무로 성형되기 전 고염나무였다는 DNA 단감을 먹고 씨를 심어보면 안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만, 감 씨를 심으면 고염나무가 된다고 한다. 집개가 풀려나면 들개가 되듯 감나무 또한 쉬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기억 -
눈보라 퀵써비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07 18:22:14휘날리는 것은 살아 있지 입에 풀칠을 하려면 움직여야 하고 달라붙는 유혹을 피해 노선마저 변경해야지 죽음만이 정지시킬 수 있는 고요한 속도 빠르게 달린다면 섬마을까지 도착할 테고 어디든 폭삭 주저앉지 말고 가야지 목적지 이탈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임무 완수 갓길 만들어가며 죽도록 달려가지 바람은 야멸차게 살갗 물어뜯으며 무서운 속도를 재촉하지 바람을 등에 업고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하염없이 배달하지 위험한 -
갈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31 17:50:43나는 연약하나 너를 기다릴 수 있다 강안개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와도 나는 연약하나 너를 또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와도 나는 연약하나 너를 기다리며 저녁노을이 되리니 새벽 눈이 내리고 네 가슴이 얼어붙어도 너를 위하여 강물이 되리니 거센 바람이 굳센 나무를 부러뜨리고 갔으나 연약한 너는 거뜬히 허리를 폈다. 무서운 물살이 두둑한 둑을 무너뜨리고 갔으나 연약한 네 뿌리를 떠내려 보내지 못 -
설날 아침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24 17:17:44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 -
어처구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17 17:53:47나무와 돌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근본이 다르고핏줄도 다른데 눈 맞추고살을 섞는다는 것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일한곳에 붙어살며 귀가 트였는지,벽창호 같은 맷돌 어처구니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하게 돌아간다한 줌 저 나무 고집 센 맷돌을 한 손으로 부리다니참 어처구니없는 일 근본은 목석(木石)이라도 한 몸이 되어 돌아간다. 시어미와 며느리, 성도 다르고 친정도 다르지만 어처구니 맞잡고 빙글빙글 -
껄렁한 연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10 16:46:01껄렁한 남자와 걸으면 덩달아 껄렁한 여자가 된다 저기 금촌 어디쯤 아님 일산시장쯤이나 뒷주머니에 노랑 빗거울 세트를 불룩하게 찔러 넣고 청바지에 위험천만 햇살이 매달린 헤살스런 눈짓 껄렁한 남자의 팔짱을 끼면 껄렁한 남자는 더욱 팔을 단단히 하고 그의 팔에 낀 껄렁한 여자의 껄렁해진 하얀 손 껄렁 속에 숨겨진 속 깊은 쩔렁이는 대바람 소리 듣는다 한두 번 전쯤의 전생에서 깊은 산골 대바람 소리 나는 남자와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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