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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갈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31 17:50:43나는 연약하나 너를 기다릴 수 있다 강안개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와도 나는 연약하나 너를 또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와도 나는 연약하나 너를 기다리며 저녁노을이 되리니 새벽 눈이 내리고 네 가슴이 얼어붙어도 너를 위하여 강물이 되리니 거센 바람이 굳센 나무를 부러뜨리고 갔으나 연약한 너는 거뜬히 허리를 폈다. 무서운 물살이 두둑한 둑을 무너뜨리고 갔으나 연약한 네 뿌리를 떠내려 보내지 못 -
[시로 여는 수요일] 설날 아침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24 17:17:44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 -
[시로 여는 수요일] 어처구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17 17:53:47나무와 돌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근본이 다르고핏줄도 다른데 눈 맞추고살을 섞는다는 것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일한곳에 붙어살며 귀가 트였는지,벽창호 같은 맷돌 어처구니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하게 돌아간다한 줌 저 나무 고집 센 맷돌을 한 손으로 부리다니참 어처구니없는 일 근본은 목석(木石)이라도 한 몸이 되어 돌아간다. 시어미와 며느리, 성도 다르고 친정도 다르지만 어처구니 맞잡고 빙글빙글 -
[시로 여는 수요일] 껄렁한 연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10 16:46:01껄렁한 남자와 걸으면 덩달아 껄렁한 여자가 된다 저기 금촌 어디쯤 아님 일산시장쯤이나 뒷주머니에 노랑 빗거울 세트를 불룩하게 찔러 넣고 청바지에 위험천만 햇살이 매달린 헤살스런 눈짓 껄렁한 남자의 팔짱을 끼면 껄렁한 남자는 더욱 팔을 단단히 하고 그의 팔에 낀 껄렁한 여자의 껄렁해진 하얀 손 껄렁 속에 숨겨진 속 깊은 쩔렁이는 대바람 소리 듣는다 한두 번 전쯤의 전생에서 깊은 산골 대바람 소리 나는 남자와 목숨 -
[시로 여는 수요일] 닭이 울어 해는 뜬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1.03 14:23:15당신의 어깨 너머 해가 뜬다우리 맨 처음 입 맞출 때의그 가슴 두근거림으로, 그 떨림으로당신의 어깨 너머첫닭이 운다해가 떠서 닭이 우는 것이 아니다닭이 울어서 해는 뜨는 것이다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음 눈 뜬 두려움 때문에우리가 울었던 것은 아니다우리가 울었기 때문에세계가 눈을 뜬 것이다사랑하는 이여,당신하고 나하고는이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 더도 덜도 말고 냉수 한 사발 마시자저 먼 동해 수평선이 아 -
[시로 여는 수요일] 소주 한 병이 공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2.27 17:59:20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 -
[시로 여는 수요일] 별을 향한 변명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2.20 11:11:17별들이 우리를 보며 눈빛을 반짝이는 거라고 믿었다 밤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꿈꾸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모두 선한 씨앗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사랑이 손짓해 부르면 그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고 물불 안 가리고 사랑의 강물에 뛰어들었다 이길 수 없는 것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판판이 깨지고 나서도 지지 않았다고 우겼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시인이 아름다 -
[시로 여는 수요일] 우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2.13 10:39:05찰랑찰랑 넘칠 때는 깊이를 몰라낮밤 없이 은빛 수면 다녀가는 것들짚새기로 닦아낸 노줏발처럼은밀한 추억 되어 반짝, 반짝이더니오랜 가뭄 끝의 바닥사소한 부주의가 하나 둘 시나브로 빠트린온갖 잡동사니 그득하구나가지 떠난 꽃으로 냄새 피우는 사랑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지는 추문, 추문들 온 마을 사람들 밥 짓고, 목 축이고, 빨래하던 우물 하나의 비밀도 저러하다. 바닥이 드러나자 온갖 잡동사니와 냄새와 추문들 그득 -
[시로 여는 수요일] 밥그릇을 씻으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2.06 17:26:13한 끼 분인 밥그릇 속이 깊다밥 한 그릇이면 슬픔을 면하고 죄 짓는 일을 피할 수도 있겠지 요만한 깊이라면 발을 헛디뎌 넘어질 만한 함정이 될 수도 있겠다나는 힘들게 살아가는 자라 밥그릇 속에 주먹을 넣어 본다 아니다 손을 펴 밥그릇을 씻어준다톡, 두드려 주기도 한다 밥 한 그릇 버느라 애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밥이 하늘인 것을. 슬픔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울면서 떠 넣은 밥심으로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
[시로 여는 수요일] 어떤 경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1.29 17:20:14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이 세상 앞에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위태롭게 일렁거린다.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사람을 세상 전부로 아는 사람들이 숨죽여 바라본다.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사람이 잘못되면 그를 세상 -
[시로 여는 수요일] 경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1.22 18:00:07나, 해태상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나는 모든 것의 경계에 섰노라 하고 외쳐보려고 한다 해태의 눈을 하고 이빨을 꽝꽝꽝 내보이며 뿔을 나부끼며 경계가 여기 있노라 연신 절을 하려고 한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조선시대 궁궐의 화기를 막고, 관리들의 비리를 감시하라는 뜻으로 사헌부 앞에 세웠다는 해태야. 오늘도 광화문 앞에서 두 눈 부릅뜨고 갈기 휘날리고 있구나. 아직도 시비선악을 가릴 줄 아는 영험한 능력 -
[시로 여는 수요일] 눌려진 깡통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1.15 10:32:58참 요란하게도 돌아다녔다 내 몸은 통울대로 만들어진 모양 살짝만 건드려도 도시 구석구석 감춰진 소리들이 다 도망친다누가 나를 이 차도 한복판에 차버렸을까 두개골을 우그러뜨리며 바퀴들이 지나간다이제 바람의 희롱에 요란하게 구르지 않아도 된다내장이 터진 생쥐와 함께 점점 납작하게 길이 되어가는 동안,그간 내 목청에 가려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새소리, 바람 소리 같은 은밀한 소리들이 들려온다더 많은 소리들을 듣 -
[시로 여는 수요일] 지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1.08 11:21:29산은 지붕을 해마다 인다 묵은 기와를 걷어내고 추녀 끝에서 용마루 쪽으로 인다 기와 사이가 너무 넓으면 꽃으로 덮는다 무료한 지붕은 어디에도 없도록 바위가 있으면 푸른 이끼를 바르고 돌무지가 있으면 산새 소리로 촘촘히 엮는다 그 아래 사는 한지붕 식구들 기근에 비 맞지 않게 뿌리에 찬바람 들지 않게 해마다 청기와로 인다 청와대보다 높은 집 얼마나 노련한 기술자인지 기와 한 장 깨뜨리지 않는다 낯짝, 파렴치한 기 -
[시로 여는 수요일] 첫사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1.01 18:26:31가난뱅이 딸집 순금이 있었다 가난뱅이 말집 춘봉이 있었다 순금이 이빨로 깨뜨려 준 눈깔사탕 춘봉이 받아먹고 자지러지게 좋았다여기, 간신히 늙어버린 춘봉이 입안에 순금이 이름 아직 고여 있다 가난해서 순금이, 추워서 춘봉이. 이름만이라도 금빛이요, 봄빛으로 지은 건 아니었을까. 오죽한 살림, 여북한 이름들에도 첫사랑은 깃드는구나. 가난해서 찬란한 건가, 가난해도 찬란한 건가. 말똥 내음 진동해도 향기롭더니, 칠십 -
[시로 여는 수요일] 점등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10.25 18:01:20호박꽃 활짝 열린 콘센트에벌이 플러그를 꽂는 순간온 세상 환합니다넝쿨넝쿨 잎사귀푸르게 푸르게 밝습니다겨울, 봄, 여름…… 점멸하는 거리울타리 세워 담장 세워저 멀리 가을까지 닿은 전선에늙은 호박 골골이 환합니다호박인 줄 알았는데 등이었구나. 울타리에, 전선에 연등처럼 주렁주렁 달렸구나. 여름내 뜨거운 햇살 푸른 잎 깔때기로 모아 살뜰히도 충전하였구나. 물과 이산화탄소면 족한 줄 알았는데 플러그가 필요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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