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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경제계 "한국경제 선진국 올린 재계의 최고 리더"
경제 · 금융 경제동향 2020.10.25 12:44:14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단체는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전경련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였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경련은 “남다른 집념과 혁신 정신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먹거리 산업으로 이끌었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다”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국격을 크게 높였고 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상생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등 고인의 손길은 경제계에만 머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고인의 혁신 정신은 우리 기업인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이라며 “고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총도 공식 논평을 내고 “경영계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견인했던 재계의 큰 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에 존경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삼성전자 40년사 발간사에 실렸던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고인의 발언을 언급하며 “생전에 기술 발전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이 회장은 흑백 TV를 만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 삼성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다. 경총은 “경영계는 반세기를 지나 100년 기업을 향해 도약하는 삼성에 ‘끊임없는’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는 한편, 위기마다 도전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해줬던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의 경제 위기 극복과 경제 활력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총은 이어 “삼성도 노사화합과 경영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역협회는 “한국경제계에 큰 획을 그은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무역업계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우리나라가 무역 강국이자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무역업계는 고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려 무역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경제의 중심축으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
文대통령, 이건희 회장 애도 메시지 나올까...인연은 많지 않아
정치 대통령실 2020.10.25 12:36:07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숙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지난 2018년 5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별세 했을 때에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를 대표해 구본무 LG회장의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장 전 실장을 통해 “정말 존경받는 재계의 큰 별이 가셔서 안타깝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이 회장의 장례가 간소하게 치러지는 만큼 이번에도 청와대를 대표해 문 대통령의 참모가 이 회장을 조문하고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까지 이 회장 별세와 관련한 청와대의 움직임에 대해 “논의해보고 알려드리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구 회장이 별세 했을 당시처럼 재계와 소통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를 대표해 조문을 하게 된다면 삼성가와는 ‘악연’이라 할 수 있는 김상조 실장이 조문을 맡게 된다. 시민 단체 시절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김 실장은 삼성의 승계 문제를 오랫동안 파헤쳐 왔다. 지난 2017년 박영수 특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논리를 제공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 때의 전례가 있는데다 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이 회장과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은 재계 총수 회동 등을 통해 짧게라도 이 회장과 인연을 맺었으나, 지난 2017년 5월 문 대통령은 취임했을 때에는 이미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병실에 있던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다만 이 회장의 아들인 이 부회장과는 취임 이후 활발히 교류했다. 2018년 7월 인도 순방 당시 현지 최대 핸드폰 공장인 삼성전자의 인도 노이다 신공장을 이 부회장과 함께 찾은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데 이어 각종 기업인 행사 등을 통해 총 10차례에 걸쳐 이 부회장을 만났다. 지난해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반도체 경기’를 직접 물어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삼성 공장이나 연구소를 방문해 달라는 이 부회장의 요청에 문 대통령은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는다거나 연구소를 만든다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이 부회장을 격려하며, 우리나라를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
[이건희 별세]"반도체 사랑 각별했던 이건희 회장님"…박영선 장관도 애도
산업 기업 2020.10.25 12:15:59박영선(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는 특히 페이스북 글을 통해 경제기자 시절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박 장관은 “1980년대 말 제주도 전경련세미나에서 한 시간 가량 ‘반도체의 미래’에 대해서 (이 회장이) 출입기자들과 강의 겸 긴 대화를 나누신 적이 있다”며 “당시 이 회장이 ‘난 지금 반도체에 미쳐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또렷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회장이 일본 유학 시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집에서 영화를 혼자 많이 보셨다고 했다”며 “특히 선대 이병철 회장께서 추천하신 일본영화 ‘천칭’을 여러 번 보셨다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박 장관은 그 기억 때문에 이 회장과의 만남 이후 ‘천칭’을 수소문해 봤다고 한다. 박 장관은 “천칭은 일본 어느 마을 솥뚜껑 판매회사의 후계자 양성과정을 다룬 영화로 요약될 수 있다”며 “‘파는 자와 사는 자의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물건은 팔 수 없다’는 깊은 뜻이 담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진정으로 내가 파는 물건에 애정을 갖고 있어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진심이 전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며 “영화 천칭을 다시 떠올리면서, 대한민국 반도체신화를 이룬 이건희 회장님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고 썼다. 박 장관은 “삼성이 휴대전화와 반도체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바로 이 회장의 ‘반도체 사랑’이 만든 결과”라고 거듭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
"백남준 어떻게든 살려내라"했던 후원자 이건희 회장
문화 · 스포츠 문화 2020.10.25 12:11:00“백남준의 모든 치료는 삼성이 책임질 테니 어떻게든, 반드시 백남준을 살려내야 합니다.” 지난 1996년 4월 초 뉴욕의 백남준(1932~2006)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IOC 개최를 앞두고 LA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회장은 “어떻게든 백남준을 살려내야 한다”며 동양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치료제를 미국으로 보내 즉시 조치를 취하게 했다. 삼성 뉴욕지사 직원들을 병원으로 보내 의사에게 “지금부터 백남준의 모든 치료는 삼성이 책임질 테니 어떻게든, 반드시 백남준을 살려내야 한다”면서 “매일 직원이 2명씩 상주하며 모든 것을 돕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 회장은 미술애호가이자 든든한 예술후원자였다. 특히 한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예술가 백남준과의 인연이 각별했다. TV를 예술 재료로 삼은 백남준과 삼성전자가 동반 성장했기 때문이다. 1984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화가 김창열의 집에서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소개로 백남준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인사를 나눴고 이후 홍 전 관장의 주선으로 1987년 신라호텔에서 백남준과 이 회장이 처음 대면했다. 당시 백남준은 어디서든 헐렁한 흰 셔츠에 멜빵, 중국제 찍찍이 신발 차림이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백남준은 인사 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더니 화려한 넥타이를 매고 돌아와 “우리나라 경제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 넥타이를 매지 않을 수 없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회장이 “그러면 우리 모두 넥타이를 풀자”고 응수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날의 속 깊은 대화를 계기로 백남준은 삼성전자의 공식 후원을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한 1,003대의 TV모니터 설치작품 ‘다다익선’ 등 대형 작품을 제작해냈다. 한번은 백남준이 해외 미술관 전시 때 삼성전자의 TV모니터라 화재 위험에 취약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백남준의 기술조력자였던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는 “화가 난 백남준이 일본제(소니) TV와 삼성 TV를 나란히 놓고 화재 모의실험을 해 전혀 부족할 것 없다는 점을 입증해 보였다”고 회상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2000년 2월11일 밀레니엄 시대를 여는 첫 기획전이자 아시아인의 구겐하임 첫 개인전으로 ‘백남준의 세계’를 열었을 때도 백남준은 소니사의 TV 300대 무상지원을 마다하고 삼성전자 TV를 사용했다. 호의에 대한 보답처럼 백남준은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선보인 클래식 자동차 32대로 이뤄진 설치작품 ‘20세기를 위한 자동차’를 삼성으로 보냈고 이는 현재 용인 삼성교통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백남준은 1995년 3월 호암재단에서 수여하는 ‘제5회 호암상’ 예술부문 상을 받았다. 이 회장과 예술가의 인연은 백남준뿐이 아니다. 생존작가 중 세계적으로 명성이 가장 높은 이우환(84)의 해외전시에서도 삼성은 제일 큰 후원자였다. 이 회장의 삼성은 2010년부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아시아 미술을 위한 예술펀드를 제공해 전문 큐레이터를 확보하게 했다. 이는 이듬해 이우환의 대규모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의 동력이 됐다. 이 회장과 이우환은 서울사대부고 동문이라는 인연도 있다. 이 회장이 13회, 이우환이 8회 졸업생이다. 이런 인연이 아니어도 이 회장은 고도의 정신성을 시각예술로 풀어내고 자연과 작품, 공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통한 공존과 조화를 보여주는 이우환의 작품세계에 깊이 공감하는 애호가였다. 이 회장이 예술계에 기여한 최고 업적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건립이다.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세웠으나 서울에서 멀어 접근성이 낮았던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 이어 한남동 자택 근처에 삼성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국내 최고의 사립박물관이자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리움이다. 리움은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프랑스의 장 누벨,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각각 디자인한 3개 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한국 전통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고 현대미술의 첨단성을 표현한 건물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 우리 고미술품과 근현대 미술품, 외국 현대 미술품을 다양하게 소장한 곳이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당시 영부인들의 첫날 만찬 행사가 리움에서 진행됐다. 삼성문화재단은 국보 133호인 ‘고려청자동화연화문표주박모양주전자’ 등 국보 17점과 보물557호인 ‘신라시대 금귀걸이’ 등 보물 10점을 보유하고 있다. 재단이 아닌 개인으로는 이 회장이 국보 30점과 보물 82점, 홍라희 전 관장이 보물 5점을 각각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과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의 맏딸인 홍 전 관장의 결혼은 정략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도 미술이 가교역할을 했다. 홍 전 관장은 공부도 잘했지만 미술에 대한 재능이 남달라 서울대 응용미술학과(현 도예·공예·디자인학부의 전신)에 입학했다. 3학년이었던 1965년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입선했는데 수상자로서 매년 국전을 관람하는 이병철 창업주에게 전시회를 안내했던 것이 이 회장과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전 관장은 1995년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맡았고 이후 2004년 개관한 리움까지 이끌며 부동의 ‘한국 미술계 영향력 1위’ 인물이 됐다. 이 회장 부부는 미술후원자이자 컬렉터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과시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 미술전문지 아트뉴스가 매년 선정, 발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에는 이들 부부가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당시 아트뉴스는 이 회장 부부를 “한국의 국내외 현대미술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컬렉션을 소장하고 리움을 통해 서울을 국제적 문화도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이건희 별세]중소기업인력개발원 지어줄만큼 中企 사랑 각별했던 이건희
산업 중기·벤처 2020.10.25 11:22:50중소기업계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 회장의 중소기업 사랑이 각별했던 만큼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분위기다. 특히 중소기업계는 평소 이 회장이 삼성에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부터 일류가 돼야 삼성의 휴대전화, TV 등 가전도 일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삼성의 힘은 협력회사에서 나온다는 소신을 경영에 접목했던 점을 높이 평가했다. 지금도 삼성은 스마트공장 구축 등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에 가장 적극적이다.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도 이 회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이 회장이 중소기업중앙회의 유일한 연수원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인력개발원은 지난 1997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들어가기 직전에 개원, 지금까지 국내 중소기업 인력을 위한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도 평소 이 회장이 연수원을 지어준 것을 감사히 여겨왔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9년 이 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은 “현재 삼성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7.7%를 차지하는 큰 기업으로, 한국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며 “특히 삼성은 중소기업과 공동 기술개발을 위해 혁신기술기업협의회를 운영하는 등 대·중소기업과 상생을 통한 동반성장을 위해 많은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중소기업계에서도 높이 사는 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던 2010년에도 김 회장은 “이 회장처럼 능력있는 기업인들이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
국민의힘 “故 이건희, 삼성 세계 1위 되는 기틀 마련”
정치 국회·정당·정책 2020.10.25 11:16:03국민의힘은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와 관련해 “고인은 반도체·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1위의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고인은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경제를 앞장서 이끌었던 고 이 회장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임직원 여러분에게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 ‘마누라, 자식 빼놓고 모두 바꿔라’라는 혁신의 마인드는 분야를 막론하고 귀감이 됐다”며 “미래를 선도할 인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지금도 인재육성의 교본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배 대변인은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고인이 편히 영면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
[이건희 별세] 외신도 긴급 타전…"작은 TV 제조사, 글로벌 거인으로 키워"
국제 정치·사회 2020.10.25 11:10:40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AP통신은 이 회장에 대해 “작은 텔레비전 제조사를 가전 제품의 글로벌 거인으로 변모시켰다”며 이 회장이 약 30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고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텔레비전, 메모리칩 제조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1987년 삼성 회장에 취임해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고 전했다. 이 밖에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 로이터통신 등도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
[이건희 별세]故이건희 삼성 회장 연보
산업 기업 2020.10.25 11:08:25▲ 1942년 1월 9일 대구 출생 ▲ 1961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 1965년 와세다대 경제학과 졸업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수료 ▲ 1968년 10월 동양방송 이사 ▲ 1979년 2월 삼성물산(028260) 부회장 ▲ 1979년 2월~1987년 11월 삼성그룹 부회장 ▲ 1980년 중앙일보 이사 ▲ 1987년 11월~1998년 4월 삼성그룹 회장 ▲ 1989년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 2010년 3월 ~ 삼성전자(005930) 회장 ▲ 2012년 6월 ~ 삼성생명(032830)공익재단 이사장 ▲ 1981년 2월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1982년 3월 ~ 1997년 3월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 ▲ 1982년 ~ 1993년 2월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 1987년 2월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93년 3월 ~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 1996년 7월 ~ 2008년 8월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 1998년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 2005년 ~ 대한올림픽위원회 명예위원장 ▲ 2010년 2월 ~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 2011년 10월 ~ 2018 평창동계올림픽위원회 조직위원회 고문 ▲ 2012년 6월 ~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 2014년(72세) =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려짐. ▲ 2020년(78세) = 별세. -
평창올림픽 유치 위해 170일간 해외출장 [이건희 별세]
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2020.10.25 11:04:3925일 별세한 이건희(사진) 삼성전자 회장은 체육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애틀랜타 하계올림픽 기간이던 1996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출돼 20년 넘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IOC 위원은 ‘스포츠 외교관’으로 통한다. 올림픽 개최국과 종목 등의 결정에 참여하며 자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통로 역할을 한다. 삼성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 중 최고 지위를 갖는 톱 스폰서이자 회장이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기업으로 IOC 내에서 손꼽히는 입지를 다졌다. 이 회장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1년 반 동안 11차례에 걸쳐 170일간의 해외출장 일정을 소화한 일화는 유명하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평창의 개최가 결정된 이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총회까지 직접 참석했다. 또 이 회장 주도로 꾸려진 삼성 스포츠단은 인기·비인기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를 후원했다. 특히 수영의 경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석연치 않은 실격 위기에 처했을 때 현장에서 발 빠른 조치를 지시해 불이익을 막은 것이 바로 이 회장이었다. 고교 시절 레슬링 선수를 지낸 이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장으로 한국 레슬링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2014년 급성 심근경색 이후 3년 넘게 와병 중이던 2017년 8월 IOC 위원직을 내려놓았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
[이건희 별세]“삼성 1등 만든 글로벌 거인” 외신 긴급 타전
산업 기업 2020.10.25 11:03:2925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및 AP·AFP·로이터·블룸버그·교도통신 등 주요 외신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NYT는 이날 “삼성전자(005930)를 스마트폰, TV, 컴퓨터칩 글로벌 거인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서울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을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AFP통신 역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숨지다”라고 긴급 보도하며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변모시킨 이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투병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도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가장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며 “고인의 생애 동안, 삼성전자는 2등급 TV제조업체에서 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첨단기술 기업으로 발전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고인에 대해 “삼성전자를 모조품 생산업체에서 누구나 탐내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 칩 기업으로 변모시켰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자, 순자산 207억달러를 보유한 한국 최고 부자”라고 설명했다. 중국 환구망(環球網)은 한국 언론을 인용해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하다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올랐다./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
[이건희 별세]정·관·언 폭넓게 드리운 삼성의 혼맥(婚脈)
산업 기업 2020.10.25 11:02:49고(故) 이건희 회장에게 장인 고(故) 홍진기 회장은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동지이자 내무부 장관을 지낸 그는 중앙일보·동양방송을 이끌면서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한 청년 이건희의 경영 멘토 역할을 했다. 1967년에는 장녀인 홍라희 여사가 이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후 홍진기 일가는 이 회장과 정재계를 두루 이어주는 네트워크의 한 축이자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회장과 홍 여사의 혼인은 한국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정재계 리더들 사이에 형성된 ‘파워 인맥’의 대표적 사례다. 삼성가는 홍진기 일가와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를 연결고리로 국내 거의 모든 재벌 및 정재계 유력 인사와 직간접적 인척관계를 맺고 있다. 이 회장은 홍라희 여사, 그리고 둘 사이의 차녀(이서현)를 통해 국내 주요 언론인 중앙·동아일보 사주 일가와 사돈을 맺었다.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은 홍라희 여사의 남동생이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결혼한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은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의 동생이다. 특히 삼성은 영남, 동아일보는 호남 지방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과 사상 초유의 기업-언론 재벌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삼성그룹에서 1999년 계열분리된 매체다. 홍석현 회장과 이 회장의 인척관계는 두 다리를 건너면 조선일보 사주 방상훈 사장에게까지 닿는다. 방상훈 사장의 장남 방준오씨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녀 허유정씨와 결혼했고 허 회장의 장남이 다시 홍석현 회장의 장녀 홍정현씨와 부부이기 때문이다. 홍진기 일가는 간접적으로 이 회장의 인맥을 정치·관료계와 이어주는 역할도 했다. 우선 홍진기의 막내딸 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남 철수씨와 결혼했다. 홍석현 회장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중앙정보부장·검찰총장·법무부장관을 역임한 신직수의 딸 연균씨와 부부다. 홍진기의 차남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은 광주고검장까지 지냈으나 삼성그룹의 ‘떡값’을 검사들에게 전달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며 2006년 물러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의 재계 혼맥은 라이벌 LG를 매개로 뻗어있다. 자손이 많은 LG그룹이 재벌 혼맥의 ‘본류’라 불릴 정도로 내로라 하는 재벌들과 두루 혼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둘째 누나 숙희씨는 구인회 LG 창업주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했다. 구자학 회장은 삼성이 LG가 독점하던 전자산업에 진출하며 사이가 틀어진 1976년까지 호텔신라 사장 등 삼성에서 재직했다. 2013년 이 회장의 장모 김윤남 여사의 장례식 당시에는 구본무 LG 회장이 사돈 자격으로 조문을 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구자학 회장의 막내딸 명진씨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아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과 혼인, 한진도 한 다리 건너 이 회장의 혼맥이 됐다. 이밖에 LG와 사돈지간인 SK·금호·대림·두산 등이 이 회장의 간접 혼맥이다. 이 회장은 현대가와 직접적인 혼맥은 없다. 그러나 홍진기 일가를 매개로 두 다리 건너 사돈지간이다. 홍씨 일가의 사돈인 노신영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가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장녀 숙영씨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비록 2009년 파경으로 끝났지만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와 결혼하면서 이 회장은 대상그룹과도 연을 맺었다. 특히 대상은 호남 출신이자 과거 발효조미료 ‘미원’을 무기삼아 ‘미풍’을 앞세운 제일제당(현 CJ)과 양보없는 경쟁을 벌인 기업이라는 점에서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자식과 골프, 미원만큼은 내 뜻대로 안된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대상그룹과의 인연은 금호그룹과도 간접적으로 이어진다.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셋째딸 현주씨가 임창욱 회장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이혼과 함께 이들 그룹과 삼성의 사이는 한결 서먹해진 모양새다. 이건희 회장 주위에 펼쳐진 이런 촘촘한 혼맥 네트워크는 홍진기씨의 사례처럼 그의 개인적 성장과 삼성의 급속한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이 같은 혼맥 네트워크가 지나친 정경유착의 고리가 돼 정치계와 기업들의 부정·비리를 야기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상위 계층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계층 이동을 저해하는 장치로서 혼맥을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 교수는 “부정부패의 심화처럼 역기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혼맥은 혈연·지연·학연과 같은 ‘연고(緣故)’의 일종으로서 기업의 빠른 성장과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뒷받침해왔다”면서 “긍정적인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
[이건희 별세] 中·日 외신, 이건희 회장 별세 긴급 보도 이어가
산업 기업 2020.10.25 10:59:56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과 중국 언론들도 이를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는 온라인 속보를 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중국 환구망도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하다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은 중국과 일본 소셜미디어에서도 화제에 올랐다./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
中 매체들도 이건희 회장 별세 긴급 보도
국제 경제·마켓 2020.10.25 10:59:30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새벽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매체들도 이를 긴급 뉴스로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망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고 국내 언론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환구망도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하다 이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은 웨이보(한국의 카카오톡) 등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
[이건희 별세] '이건희의 삼성' 두려워한 글로벌 기업들
산업 기업 2020.10.25 10:55:59“삼성이라는 기업은 무시무시한 기업이다. 마치 에일리언과 같다. 영화 속 에일리언이라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인간의 과학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한 괴물이다. 삼성은 현시점에서는 일본 기업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세력을 가진 기업이 되었다.” 지난 2005년 한 권의 책이 일본 경제계에 조용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디베이트연구협회란 한 연구단체에서 펴낸 ‘삼성이 두렵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삼성의 경영 비법에 대해 다루면서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이건희 회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할애했다. 이 책의 대표 저자인 기타오카 도시아키 씨는 이 회장을 두고 “천재적인 경영자 이건희가 있었기에 삼성이 일본 기업들을 모조리 밀어낼 수 있었다”며 “일본 사람 중에 그와 비견할 만한 인물은 경영의 신으로까지 추앙 받았던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 전기산업 사장과 이부카 마사루(소니 명예회장), 혼다 소이치로(혼다 사장)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이 일본 기업을 꺾고 그 위에 올라선 삼성과 삼성호(號)를 이끄는 이 회장에 대해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일갈한 것이다. 일본 뿐만이 아니다.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을 시작으로 이 회장은 삼성의 고비마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혁신에 나서며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이런 이 회장의 경영 능력에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가 찬사를 보냈다. 이 회장이 임원급 299명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하며 신경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건 1993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질(質) 경영을 자세히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삼성 제품의 질적인 문제점을 외부인이 아닌 이 회장 본인이 제시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특이한 점”이라며 “이런 개혁 캠페인은 삼성 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에 서울에 나와있던 미쓰비시·마루베니·스미토모·이토추 등 일본 9대 종합상사 지점들은 가장 경영을 잘하는 기업인으로 일제히 이 회장을 지목했고, 삼성의 영원한 라이벌인 LG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사일품’ 운동을 전개하며 상품의 질 개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회장의 신경영은 이후로도 끊임 없이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신경영 선언이 있은 지 10년이 지난 2003년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지휘권을 물려 받은 뒤로 대담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활기찬 생명력과 책임감, 디자인, 품질관리가 이 회장의 개혁 덕택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개혁 때문에 삼성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한국의 유일한 재벌이 됐다. 한국 기업들의 모범이 됐고 실제로 모범이 됐다”고 썼다. 또한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3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특집 기사를 통해 휴대전화 수천 대를 화형에 처한 일화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20년 전 발언을 소개하며 이 회장이 삼성의 성공신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언론 뿐만이 아니다. 전세계 정관계 요직에 있는 인물들도 이 회장의 혁신적 경영 기법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우에 사토시 산요전기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종업원을 소중히 여기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삼성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영의 스피드와 인사의 공정성’이 있었고 산요 역시 이를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회장이 지장(智將)·덕장(德將)·용장(勇將)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용장 밑에는 약졸 없고, 덕장 밑에는 배신자가 없으며, 지장 밑에는 잔꾀 부리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해 이 회장이 3가지 강점을 두루 갖췄다고 말했다. 다만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을 진두지휘한 1990년대 이후 1년에 몇 달씩 출장을 다니며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을 비롯해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등 산업계의 거물은 물론 모교인 와세다대학의 교수와 세계적 석학들을 두루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했지만 이른바 인맥이라고 할 만한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그의 약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화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 심사숙고를 거쳐 최종 의사 판단을 내리는 신중한 성격 탓이라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때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학자들을 한 명씩 불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지식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게 이 회장의 성품”이라고 설명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
"고교생도 선점하라" 인재 교육으로 이룬 '사업보국의 꿈' [이건희 별세]
산업 기업 2020.10.25 10:47:50“유능한 인재를 대학교 4학년 때 채용하려면 이미 늦다. 우수한 인재라면 대학교 1학년때 미리 입도선매해야 한다. 그도 늦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인재를 찾아야 한다.” 인재를 삼성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여겼던 이건희 회장은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학생 인재 확보에 총력을 다했다. 중동고와 성균관대 등에 집중 투자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물론 이 회장의 막대한 투자가 단순히 삼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이 투자해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는 천재를 키워낸다면 그가 설령 ‘삼성맨’이 되지 않아도 사업보국(事業補國)의 경영 이념을 이룬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이런 이 회장의 철학은 사학의 명문인 성균관대와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사실 삼성문화재단이 성대 학교 운영에 참여한 것은 호암 이병철 회장이 살아 있던 지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삼성이 자연과학 일부 단과대를 수원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땅을 팔아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 등이 퍼지면서 삼성은 1977년 성균관대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끊기는 듯 했던 삼성과 성대의 인연은 1996년부터 다시 거듭나게 된다. 재정 상태가 튼튼하지 못해 기업의 지원을 원했던 성대와 삼성병원에서 일할 의사가 필요했던 삼성의 수요가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성대를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이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 이 배경에 인재를 최고로 여겼던 그의 경영 철학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성대는 삼성 재단과 함께 18년간 혁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삼성은 매년 성균관대에 1,000억원 가량을 지원해 현재까지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대의 글로벌 위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성대는 지난 2014년 QS(Quacquarelli Symonds) 주관 세계대학평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대학’으로 선정됐으며 영국 도타임즈가 주관하는 THE(Times Higher Education) 세계대학평가에서는 국내 사립대 1위, 148위를 기록했다. 삼성의 본격적인 지원 이후 성대는 특성화된 학과를 개설해 우선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은 뒤 다양한 경험과 경쟁력을 다른 학과 내 이식시키는 구조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불균형성장전략’을 성균관대가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그룹의 재정적 기반이 바탕이 됐다. 외형적 변화도 눈에 띈다. 삼성과 손 잡은 이후 성대는 서울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경기 수원시 자연과학캠퍼스 내에 의학관, 600주년기념관, 제1·2 종합연구동, 경영관, 체육관, 법학관, 인터내셔널하우스, 화학관, 반도체관, 약학관, 삼성학술정보관, 국제관, 기숙사, 호암관, 학생회관 등을 잇달아 새로 세우거나 전면 리모델링했다. 성대 재학생들은 이 회장의 지원이 성대를 사학의 명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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