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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대여법의 손익계산서





501억 달러.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연합국에 지원한 규모다. 지원 목록은 온갖 품목을 망라했다. 비행기와 전차 등 무기류가 절반 이상인 가운데 원유와 원자재, 육류를 비롯한 식량과 의복까지, 그야말로 군수품 일체가 미국과 동맹군으로 싸우는 연합국들에게 넘어갔다.

요즘 가치로는 최소한 6,59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물자를 제공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는 무기대여법(Lend and Lease Act). 1941년 3월 11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명으로 이 법이 발효되기까지는 반대도 많았다.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며 전통적인 고립주의로 돌아가자는 반대 의견으로 하원에서는 단 한 표 차이로 법이 통과됐을 정도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반대하는 의회에 이런 논리를 펼쳤다. ‘불 난 옆집에서 소방 호스를 빌려달라고 하는데 우물쭈물하면 우리 집에 불이 옮겨 붙을 수밖에 없다. 소방 호스를 빌려줘 일단 불을 끈 다음에 돌려 받는 게 낫다.’ 우여곡절 끝에 법이 마련된 직후에도 루스벨트조차 지원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의회가 처음 승인한 지원 규모도 70억 달러였다.

루스벨트의 당초 법 제정 목적은 다급해진 영국에 대한 지원. 프랑스가 무너진 마당에 독일 공군의 공습에 시달리던 영국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히틀러에 양보해서라도 화친 조약을 맺자는 주장까지 나오던 터에 루스벨트는 영국을 돕기 위해 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무기대여법에 의해 ‘연합국의 병기창’으로 변신해가던 미국은 진주만 공습을 당한 뒤 중립에서 벗어나 직접 참전하면서 무기대여법의 지원 대상국도 크게 넓혔다. 민주주의 국가만을 지원대상으로 삼았던 법을 개정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나라’에게 미국제 무기를 제공하는 길도 열었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과 사우디아라비아같은 왕정국가도 이렇게 지원대상으로 들어왔다.

무기대여법과 함께 전시생산체제로 들어간 미국은 유례없는 생산능력을 뽐내며 과자라도 찍듯이 각종 무기를 토해냈다. 전쟁 중 제작한 비행기만 32만 4,750대. 항공모함(중형 포함, 소형 호위항모는 미포함)은 141척, 구축함 349척을 뽑았다. 7,185톤짜리 수송선을 3일 만에 건조한 적도 있다. 연합국이 쓴 석유 70억 배럴 중 60억 배럴도 미국 내 유전에서 나왔다.

민수용 자동차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는 등 모든 산업시설을 군수산업으로 전환시킨 미국이 쏟아내는 전략 물자는 연합국을 입히고 먹이고 무장시켰다. 무기대여법의 최대 혜택 국가는 영국. 314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받았다. 소련에게도 113억 달러 상당의 군수품과 원자재가 들어갔다. 자유 프랑스는 32억 달러, 중국은 16억 달러 규모의 물자를 제공받았다.



미국이 얼마나 많은 전쟁물자를 연합국에게 줬는지는 소련에 대한 지원 목록으로 가늠할 수 있다. 각종 항공기 1만 4,795대, 전차 7,056량, 지프 5만 1,503대, 트럭 37만 5,883대, 오토바이 3만 5,170대, 트랙터 8,071대, 각종 포 8,218문, 기관총 13만 1,633정, 폭약 345,735톤, 화차 11,155량, 기관차 1,981량, 화물선 90척, 대잠함 105척, 어뢰정 197척, 선박용 엔진 7,784대, 식량 448만톤, 비철금속 80만톤, 석유제품 267만톤, 화학제품 84만톤, 면화 1억 689만톤, 가죽 4만 9,860톤, 타이어 379만개, 군화 1,542만쪽.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얄타회담의 만찬장에서 외쳤다는 건배사(‘미국의 전시생산능력를 위하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한 무기대여법은 루스벨트의 기대를 십분 충족시켰으나 전망은 조금 빗나갔다. 빌려간 소방호스는 불길을 잡느라 소모되고 그나마 남은 호스도 돌려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기대여법으로 인한 지원 금액을 제대로 갚은 나라는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오직 한 나라, 영국만 무기대여법으로 인한 대미 채무를 갚았다. 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의 영국에 대한 상환 요구액은 52억 달러. 레이더와 소나, 제트엔진 등 첨단 기술을 넘겨받고 전쟁 중에 영국이 거꾸로 미국에 제공한 물자나 시설, 편의를 차감한 금액을 50년간 연 2%의 이자로 분할상환하기로 상환협정을 맺었다. 영국은 재정 위기를 수 차례 겪으면서도 꾸준히 상환, 지난 2006년 말에서야 간신히 상환을 마쳤다.

소련은 영국과 대조적이다. 전후 미국이 소련에 요구한 상환 금액은 13억 달러였으나 소련은 1억 7,000만 달러만 갚겠다고 버텼다. 미국도 별다른 채근을 하지 않는 가운데 4반세기 가까이 채무를 잊고 지내던 소련은 흉작으로 미국산 밀 수입이 다급해진 1972년에서야 미·소무역협정을 맺으며 7억 2,200만 달러를 분할 상환하기로 약속했다.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약 6억 달러의 채무를 안고 있다. 중국(상환 부담은 대만)도 미상환 상태다.

막대한 무기를 퍼주고 그 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무기대여법의 손익계산서는 과연 적자일까. 장부상으로는 손해지만 실제로는 남았다. 무엇보다 미국은 잠재생산능력을 군수품 생산에 집중시킨 결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유일하게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 전쟁 전까지 17%였던 실업률은 종전 직전인 1944년 1.2%로 떨어졌다. 무기대여법은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이끈 보약이었던 셈이다. 무기대여법의 혜택을 받은 38개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도 높아졌다.

무기대여법은 후유증도 남겼다. 전쟁으로 미국 경제가 너무 커져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미국 경제의 생산력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경제성장은커녕 재정의 유지마저 힘들어진 세상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슈퍼 파워로서 지구촌에 군림하는 새로운 구도가 무기대여법을 통해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비대해진 미국의 군수산업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군산복합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국제 위기의 또 다른 요인으로 변해왔다. 피의 습성에 젖어간다고나 할까.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지구촌의 전쟁과 긴장도 전시경제체제를 거치며 덩치를 불린 미국 군수산업체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으니.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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