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이후 출생자라면 어렸을 적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외화시 리즈 원더우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파격적 의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 도 했던 원더우먼에는 상상력을 자극 하는 항공기 1대가 등장한다.
바로 원더우먼이 몰았던 1인승 투 명 항공기다. 유리처럼 모든 것이 투명 한 이 항공기는 그야말로 꿈의 항공기 였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 테 라퓨지아의 자동차형 항공기 '트랜지 션'에 의해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현실 화가 임박했지만 투명 항공기는 여전히 공상과학의 영역에 남아있다.
우리 주변에는 유리, 플라스틱 등 투명한 소재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 런 소재들의 강도는 항공기에 쓰일 정 도로 세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얼마 전 투명한 동체를 보유한 미래형 항공 기의 콘셉트 모델이 발표되며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60도 전 방향의 조망권 제공
일견 황당해 보이지만 이는 어느 괴짜 발명가의 습작이 아니다. 세계적인 항 공기 메이커 에어버스가 내다본 미래 항공기의 모습이다.
세계 항공업계의 미래상을 전망한 '에어버스에 의한 미래(The Future, by Airbus)'라는 보 고서에서 오는 2050년경 투명 항공기 의 등장을 예견하고 그 콘셉트 모델을 공개한 것. 에어버스는 기술 발전 속도 에 따라 이르면 오는 2030년에도 투명 항공기가 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어버스가 예상한 투명 항공기의 모습은 이렇다. 평상시 항공기의 동체 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 항공기의 동체는 투명과 불 투명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첨단 소재로 제작됐다. 때문에 버튼을 누르 는 등의 간단한 방법으로 객실 측면과 천장의 투명도를 제어할 수 있다.
전기가 통하면 불투명해지고 그렇지 않을 때는 투명해지는 가변유리와 유사한 메커니즘이라 보면 된다. 이 같은 투명 항공기가 승객들에게 주는 메리트는 분명하다.
기존 항공기 들은 창가측 승객들에게만 외부 전망 의 감상을 허락한다. 그나마도 작은 창 문 탓에 시야는 좁기 그지없다. 반면 투명 항공기는 동체 자체가 창 문이 되는 만큼 좌석의 위치에 관계없 이 모든 승객에게 5대양 6대주의 경이 로운 조망권을 부여한다. 그것도 아무 런 장애물 없이 전후좌우, 천정에 이르 는 360도 전방향의 풍경을 말이다.
은하수를 바라보며 잠들다
상상해보자. 항공기에 편안히 앉아 하 늘에 총총히 빛나는 은하수를 바라보 며 잠드는 순간을. 그리고 온통 투명한 벽을 통해 내려다보는 이집트 피라미 드와 그랜드캐니언, 아마존 밀림과 세 렝게티국립공원의 장관을. 운이 좋다면 지상 1만m 상공에서 일출과 일몰(석양)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 경험은 산 정상이나 해변에서 느 꼈던 그것 이상의 감동을 안겨줄 것이 자명하다. 항공여행에서 크루즈여행의 품격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항공사 입장에서도 이는 한정된 공 간, 제한된 음식 등 항공여행의 태생 적 한계를 극복하고 여행객 수송 분야 의 최강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줄 좋은 무기가 된다. 미래에는 자동차 비행기, 비행선, 초음속·극초음속 항 공기, 인간 동력 항공기(HPA), 개인용 1인승 항공기(PAV) 등 다양한 수송용 비행체들이 활성화될 것이기에 새로운 경쟁력의 창출은 항공사의 존망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동체 제작에 쓰이는 가변성 소재 는 현재의 복합소재보다 가볍기 때문 에 중량 감소와 연료 효율성 향상, 유 해 배기가스 저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 다는 게 에어버스의 판단이다. 필요하 다면 창문을 아예 없애서 항공기의 내 구성·안전성 제고, 동체 설계의 유연 성 확보를 꾀할 수도 있다.
투명 소재의 혁신
하지만 정말로 투명 비행기를 현실세 계에 데뷔하게 할 투명 소재가 개발될 수 있을까. 사실 에어버스의 콘셉트 모 델에는 이외에도 승객들이 주변환경을 바꿀 수 있는 독립형 홀로그램 객실, 고장부위를 스스로 수리하는 스마트 복합재료, 승객 체형에 맞춰 모양이 바 뀌는 좌석 등 눈부신 미래기술들이 담 겨있다.
에어버스의 엔지니어링 부문 찰스 챔피언 수석부사장은 이 기술들이 엔 지니어들의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표현 하면서도 사고를 무한히 확장하고 기 술적 한계들을 극복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인류는 지금껏 상식과 통념 을 깨는 소재들을 수도 없이 개발해냈다.
투명 소재도 여기서 결코 예외가 아 니다. 일례로 작년 상하이엑스포에는 투명 시멘트와 투명 콘크리트가 등장 했다. 이탈체멘티의 'i.라이트(i.Light)', 독일 로바텍스의 '루쳄(Lucem)'이 그 주인공으로 각각 이탈리아관과 독일관 의 외벽 소재로 사용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중 'i.라이트'는 시멘트와 콘크리 트 혼화제를 투명 열가소성 수지망에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외벽으로서의 강 도와 투명성을 겸비했으며 이탈리아관 전체 표면적의 약 40%에 활용됐다.
루 쳄의 경우 고품질 광섬유를 이용해 투 명성을 이룬 콘크리트로 패널형, 벽돌 형 제품이 출시돼 있다. 물론 두 제품 모두 투명 항공기에서 구현해야 할 투명성, 다시 말해 유리처 럼 완전한 투명은 아니다. 하지만 고강 도 투명 소재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 주기에는 충분하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과학기술은 무수한 공상과학을 현실로 만들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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