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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미디어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


한때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 제조로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새한미디어는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 10년을 보내야 했다. 매섭게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급변으로 경영의 발목이 잡힌 탓이다. 하지만 지난해 새한미디어는 극적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하며 회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김재명 새한미디어 사장은 지금 회사를 첨단 IT 소재기업으로 변신시키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고 있다. 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기업설명회를 가 졌습니다. 무려 10년 만의 일입니다. 저에겐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충북 충주시 새한미디어 본사에서 만난 김재명(49) 새한미디어 사장은 지난 1월 63빌딩에서 개최한 새한미디어의 기업설명회부터 말문을 열었다.

김재명 사장은 1985년 새한미디어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해 2009년 사장직에 오른 전문경영인이었다. 무엇보다 25년 넘게 새한미디어에서 한우물을 파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인물이었다. 그에겐 10년 만에 열린 기업설명회가 가지는 의미가 그 누구보다 남달랐다.

이번 기업설명회는 부쩍 나아지고 있는 새 한미디어의 살림살이를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긴 자리였다. 김 사장은 설명한다.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던 회사가 지난해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메시지 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기자, 애널리스트, 투자자 분들 앞에서 새한미디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던 거죠.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던 새한미디어가 죽지 않았단 걸 보여주는 기회였습니다."

김재명 사장은 그의 집무실에 서 있는 작은 칠판만한 크기의 지도를 가리키며 새한미디어의 부활 가능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새한미디어 충주 본사는 40여 년 전 창립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생산공장과 사택이 각각 약 36만 3,600msup2;(약 11만 평) 부지에 들어서 있죠. 한때 3,000여 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일했던 곳입니다. 무엇보다 충주시를 거점으로 하는 철도와 도로공사가 곧 마무리됩니다. 최상의 물류환경을 품에 안게 되는 거죠."

김 사장의 말처럼 오는 2016년이면서울 분 당선의 연장선인 중부내륙철도가 충주시를 지 나 문경시까지 내려가게 된다. 여기에 동서고속 도로가 2014년까지 충주시를 관통해 삼척시까지 가로지르게 된다. 김 사장은 이런 사통팔달의 교통환경 속에서 새로운 새한미디어를 꿈꾸고 있다. 그는 말한다.

"새한미디어는 더 이상 오디오middot;비디오 테이프만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2차전지 소재와 프린터 토너를 주력 생산하는 첨단 IT 기업을 이곳 충주에서 꽃 피울 겁니다."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새한미디어는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경영전략을 구상하던 글로벌 기업이었다. 새한미디어의 주력 아이템은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 제조였다.

창립 초창기부터 이 사업은 큰 호황을 누렸다. 충주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자마자 전세계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무엇보다 새한미디어는 세계시장 진출 면에서 누구보다 신속했다. 1990 년대 초반 새한미디어는 아일랜드, 멕시코 등에 현지공장을 차례로 구축하며 글로벌 생산거점을 구축해 나갔다. 삼성과 현대차 같은 한국 대표 제조기업들이 생산시설 현지화를 검토하던 시기에 새한미디어는 한발 앞서 세계시장 거점 확보를 실행에 옮겼단 얘기다.

당시만 해도 경쟁자였던 LG화학과 SKCM 도 새한미디어를 추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 만큼 새한미디어는 시장의 강력한 리더였다. 김재명 사장은 회상한다. "당시 기록미디어 시장엔 오디오와 비디오 플레이어 제품이 전부였습니다. 새한미디어는 전 세계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를 생산middot;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이런 경영전략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단숨에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죠." 강력한 삼성가의 오너십도 새한미디어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새한미디어 창업주 고 이창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이다.

삼남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우물 파기식 경영전략은 시간이 지 나자 새한미디어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아 예 새한미디어를 주저 앉혀버리는 치명적인 독이 됐다고 할 수도 있다. 1990년대 들어 새한미디어는 약 1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시설투자 명목으로 국내외 곳곳에 쏟아 부었다. 제조 인프라를 강화해 세계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야심찬구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투자금은 고스란히 막대한 회사 부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격적인 사세확장이 결국 새 한미디어의 경영압박의 원흉이 돼 버린 셈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MP3나 CDP 같은 디지털 미디어 산업이 새롭게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를 점차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한미디어가 사업 다각화에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1999년 섬유와 테이프 부문을 분리해 일본 도레이와 합작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워크 아웃 직전까지 새한미디어는 간신히 약 6,000억 원의 매출 규모를 유지했다. 하지만 사업 다각화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선택이었고 그 효과 또한 미미했다. 새한미디어는 재무 환경이 급격히 쪼그라 들고 시장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결국 2000년에 워크아웃 신청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김재명 사장은 와신상담하며 때를 기다렸다. 김 사장은 워크아웃 시절의 대부분을 경영지원실장으로 지내며 기업회생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사이 새한미디어의 오너 경영진은 대를 이어 경영을 하다 세상을 떠났고, 세계시장을 주무르던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 사업은 디지털 미디어에 떠밀려 완전히 사양산업이 돼 버렸다. 회생의 돌파구는 찾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김재명 사장은 추락하는 새한미디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새한미디어를 두고 법정관리니 기업청산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피를 토할 정도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라난 곳이 다름 아닌 충북이었기에 상처는 더 컸습니다. 충주 대표기업 새한미디어는 저에게 회사 이전에 하나의 고향과도 같은 중요한 곳입니다." 김재명 사장은 청주 세광고를 졸업하고 청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청주 토박이였다.

경영지원실장으로 채권단을 주로 상대했던 김재명 사장은 2008년 일생일대의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김 사장은 채권단을 상대로 새한미디어를 한번 경영해 보겠다고 설득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경영 정상화를 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했다. 그는 새한미디어의 노조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당시 서울사무소를 둔 상태에서 기업회생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서울사무소를 철수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모두 살 수 있는 길이 보였기 때문이죠." 10년 가까이 이어진 워크아웃에 지친 채권단이 기업청산과 법정관리를 두고 새한미디어를 저울질하던 급박한 시기였다. 결국 김재명 사장은 노조와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서울사무소를 폐쇄하고 본사 차원에서 100여 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할 수 있었다.



2009년 4월 취임한 김재명 사장은 비장한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 김 사장은 말한다. "1년 안에 새한미디어를 흑자 전환시키겠다고 스스로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안에 회사를 회생시키지 못하면 사표를 낼 각오였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그 약속만큼은 지키겠다고 마음을 굳건히 했습니다."놀랍게도 김 사장이 새한미디어의 지휘봉을 잡은지 정확히 1년 만에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2010년 3월부터 흑자를 낸 새한미디어는 지난해 매출 1,640억 5,700만 원과 영업이익 88억 7,200만 원을 달성했다. 뚝심 하나로 새한미디어를 지켜낸 청주 토박이의 승리였다.

하지만 제조업은 서비스업처럼 기막힌 사업 아이템 하나만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업태가 아니다. 제조업은 탄탄한 기술력과 생산 인프라를 미리미리 갖춰 놓아야만 수익을 맛볼 수 있었다. 김재 명 사장이 1년 만에 일군 흑자경영도 엄밀히 따지면 구조조정으로 살림살이를 대폭 줄였던 덕분이었다.

이에 대해 김재명 사장은 자신 있게 설명한다. "새한미디어는 워크아웃 기간 동안 조금씩 체질을 개선하고 있었습니다. 주력 사업이었던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 사업 비중을 줄이고, 대신 2차 전지에 들어가는 LCO(리튬 코발트 옥사이드)과 컬러middot;흑백 프린터 토너의 생산비중을 늘려나갔죠. 이 부분 매출도 매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새한미디어의 매출 가운데 오디오와 비디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3%였다. 김 사장은 "올해 이 분야를 30%대까지 낮출 것" 이라고 말했다. 2차전지와 토너 제조사업을 더 확장시키는 것 이 새한미디어가 IT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10년 11월 코스모화학이 새한미디어를 인수한 사실은 새삼 시장의 주목을 끌 만 한 사건이었다.

새한미디어는 모기업인 코스모화학과 모든 사업 아이템에 있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코스모화학은 화학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새한미디어와 함께 해야 성공이 가능한 전략이다. 코스모화학의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코스모화학은 공정 과정에서 부산물로 황산철을 발생합니다. 이 황산철이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 프린터 토너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거죠. 또 황산코발트는 새한미디어의 LCO 양극활물질의 주요 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코스모화학과 새한미디어가 다양한 사업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증권가에서도 새한미디어의 부활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상윤동양종합금융 증권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새한미디어는 업력만큼이나 훌륭한 자산가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올해 본격적인 실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신규 사업인 2차전지를 통해 유망 성장기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새 한미디어의 2월 14일자 현재 주가는 5,700원을 기록하고 있다.

김재명 사장은 기존의 필름 제조 분야에도 공력을 들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직도 새한미디어는 월 600만 개의 오디오와 비디오 테이프를 세계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인도처럼 디지털 미디어 보급이 저조한 국가에서 꾸준히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덕분이다. 김재명 사장은 "이 시장을 연착륙시키면서 다른 가공필름 아이템을 개발할 것" 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가공필름 제품은 태양전지판의 블랙시트와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 등에 장착되는 하드코팅 액정이다.

그는 덧붙인다. "지금은 스마트폰 액정의 대부분 유리 타입이지만, 제품 경량화에 대한 시장수요가 늘다 보면 결국 가벼운 하드코팅 액정 타입으로 시장이 움직일 겁니다. 가공필름만큼 사업 아이템이 무궁무진한 분야도 드물죠. 하다 못해 자동차 계기판의 하드코팅에도 가공필름이 들어가고 있어요."

김재명 사장은 더 큰 야망도 품고 있다. 어쩌면 김 사장이 꿈꾸는 10년 뒤의 새한미디어는 자동차 배터리제조 전문기업일 수도 있다. 그는 설명한다. "새한미디어는 중middot; 장기적으로 자동차 배터리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노트북이나 휴대폰 배터리 시장만 보고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든 게 아닙니다." 하지만 새한미디어가 생산하는 LCO는 현재 활발하게 쓰이는 리튬이온 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기엔 아직 폭발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김재명 사장은 말한다. "지금 자동차 배터리 기술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다양한 타입의 2차전지가 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기술경합을 벌이고 있죠. 새한미디어는 그 싸움을 주시하다가 기술방향이 결정되면 모든 역량을 집중해 관련 제품을 생산할 겁니다. LCO로 2차전지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새한미디어는 테이프 전문업체를 뛰어넘어 첨단 IT 소재기업으로 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오는 3월 중으로 새한미디어는 새로운 사명과 함께 CI선포식을 열 예정이다. 하지만 김재명 사장은 새로운 사명과 든든한 모 기업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CEO를 맡고 나선 항상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속으로 읊조렸습니다. 회사를 일으켜 세우자는 신념만큼 강력한 성장 엔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새한미디어는 40년이 넘는 업력 중 70% 정도의 시기를 태평성대로 보냈다. 나머지 30%는 냉혹한 시장경쟁에서 뒤쳐져 있었다. 김재명 사장은 25 년 동안 새한미디어에서 근무하며 삼성가의 오너 경영진과 채권단과 코스모화학의 경영진을 상대해 왔다. 김재명 사장이야말로 파란만장한 새한미디어의 성장통을 모두 겪어낸 실력 있는 CEO인 셈이다.

김재명 사장은 강조한다. "올해 R&D에 200 억 원의 예산을 투입합니다. 적어도 2012년까지는 새한미디어의 다음 먹을거리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제조업은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오르면 그때부터 신 나게 흑자경영을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임기 내에 새한미디어를 그 궤도 위에 올려 놓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사장은 8개월에 걸쳐 300여 명이 넘는 새한미디어 전 직원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CEO 혼자 달려가는 회사는 미래가 어둡습니다. 새한미디어의 안팎을 챙기면서 꼭 성공신화를 만들 겁니다." 김재명 사장은 새한미디어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성공 메이커임에 틀림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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