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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이유 있는 한글사랑

디지털 한글글꼴과 서식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한다. 우리말의 바른 발음을 알리기 위해 국내 유수 방송사 아나운서를 동원해 표준어 발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글 콘텐츠 확보를 위해 수많은 플랫폼을 만든다. 국내 1위 포털기업 네이버 이야기다. 네이버는 왜 이토록 한글사랑에 매달리는 걸까. NHN 마케팅 센터 조항수 이사를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정운섭 기자 sub@hk.co.kr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시체의 목 부위를 해부했다. 신체의 발음구조를 명확하게 파악해 과학적인 글 자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의 설정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실과 무관한 픽션이다. 하지만 글자를 만 드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드라마 작가의 상상력은 조금이나마 공감할 만하다.

'백성을 어여삐 여겨' 글자를 창조해낸 세종의 정신은 현 시대에서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글창제 같은 엄청난 위업은 아니더라도 한글의 글자 모양을 아름답고 읽기 쉽게 바꾸는 창작 작 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업체 네이버가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디지털 글꼴도 그 런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없던 글자를 만들어내는 공력만큼은 아니더라도 디지털 글꼴 하나를 창작하기 위해선 결코 적 지 않은 재화와 시간이 필요하다. NHN 조항수 이사는 말한다. "2008년 처음 나눔고딕과 나눔명 조 두 세트를 만드는 데 제작 기간 1년에 총 5억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글꼴을 만들어 무료로 배 포하고 나서도 유지비용이 연간 5,000만 원 정도가 소요되고 있어요."

얼마나 대단한 작업이기에 이런 자원이 필요한 것일까. 조 이사는 말한다. "기존의 비트맵 방식이 아닌,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클리어타입 글꼴을 개발했어요. 영문 글꼴 하나를 개발 할 땐 보통 2,600자 정도를 제작하지만, 한글은 1만1,000자 정도를 만들어야 해요. 거기에 추가로 얇은 글꼴과 굵은 글꼴까지 개발합니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같은 글꼴이지만 스타일을 조금씩 다 르게 만들어 추가로 글자를 개발하는 것이죠."

글꼴을 개발해 놓았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사용 환경에 따라 생겨나는 갖가지 호환성 문 제와 미세한 결함 등 소비자의 요구에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 올 7월 출시된 맥의 새로운 운영시스 템 '라이언' 에 네이버가 개발한 '나눔글꼴' 을 기본으로 탑재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그런 사례 에 속한다. IBM운영체제에 맞게 개발해 놓은 기존 글꼴이 맥의 운영체제와 일부 호환되지 않아 문 제가 발생했다. 애플사에선 자신들의 운영체제에 맞춰 글꼴에 추가기능을 덧붙여 달라고 요구했고, 네이버는 글꼴 개발에 참여한 개발사에게 수정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무료로 배포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이 유는 무엇일까? 조항수 이사는 말한다. "길거리 에 붙어 있는 전단지나 건물 간판처럼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물에 조금은 조악한 글꼴이 쓰 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한글이 지닌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충 분히 드러낼 수 있는 글꼴로 쓰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지요. 서양국가들은 일찌 감치 글꼴 개발에 뛰어들어 상당히 다양한 글 꼴을 탄생시켰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글꼴에 대 한 관심도가 낮아서 아직까진 저변이 넓지 않 은 상황이에요. 네이버가 직접 나서 그런 저변 을 확대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글 글꼴은 적지가 않다. 기자가 쓰 고 있는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만 해도 100여 종의 한글 글꼴과 200여 종의 영문 글꼴을 가 지고 있다. 영문 글꼴에 비해 절반 정도지만, 결 코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폰트협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한글 글꼴은 주요 개발사가 패키지용으 로 개발한 것만 따져도 1,000여 종이 넘는다. 휴대폰과 미니홈피에 쓰이는 판매용 글꼴은 하 루에도 서너 종씩 개발되고 있는 상황. 네이버 가 처음 글꼴을 개발했던 2008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변확대' 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폰트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저작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글꼴을 무 료로 배포하는 행위는 글꼴의 저변확대에 도움 이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고생해 개발한 글꼴을 아무 대가 없이 누구에게나 제공한다는 건 사 실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무료로 배포한다고 해도 글꼴 이름에 홍보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순수하게 글꼴 자체를 제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글꼴에 관한 저작권 다툼은 많이 일어 난다. 최근에는 글꼴 개발업체들이 자신들이 만든 글꼴을 이용해 창작한 결과물에 대해서 도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국디자인기업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아직 글꼴 의 저작권 범위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 어 계속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잘 모르고 아무 디지털 글꼴이나 사용해 상업적인 결과물을 만들었다가 귀찮은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저작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글꼴이 있다면 충분히 환영받 을 수 있습니다."

네이버는 2008년 '한글한글 아름답게' 라 는 한글사랑캠페인을 펼치며 자체 개발한 글꼴 인 나눔고딕과 나눔명조 2종의 무료 배포를 시 작했다. 2009년에는 자판이 아닌 손글씨로 한 글의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자는 취지를 담은 '나눔 손글씨 공모전' 을 진행해 일반인의 멋진 필체를 디지털 글꼴로 만들었다. 조 이사 는 말한다. "처음에는 나눔고딕과 나눔명조가 무료 글꼴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한글 글꼴을 널리 퍼뜨려 보자는 본래의 취지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손글씨 공모전을 기획하게 됐어요. 전 국민을 대 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우승한 분의 필체를 저희 가 직접 글꼴로 만들었습니다."

공모전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공모전은 네이버가 제시한 응모과제를 응모자가 직접 A4 용지에 빠짐없이 손글씨로 작성 후, 응모신청서 와 함께 이메일 혹은 우편으로 접수하는 방식 으로 진행됐다. 무려 3만6,000여 명의 응모자 가 몰렸고, 대상은 해외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이 차지했다. 그의 손글씨는 그 이듬해인 2010년 한글날 나눔손글씨(붓·펜) 2종의 디지털글꼴 로 개발돼 배포되었다.

이후에는 프로그램 개발자나 디자이너 등 컴 퓨터로 주로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최적화된 나눔고딕라이트, 출력 시 기존 글꼴 대비 잉크 이 용을 최대 32% 절약할 수 있는 나눔글꼴에코 등 추가 글꼴을 개발해 꾸준히 배포하고 있다. 네이버의 나눔글꼴은 디자인 측면의 미적 감각과 가독성, 유려함을 인정받아 광주비엔날 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타이포잔치2011 등 디 자인 행사에 꾸준히 참여했다. 해당 글꼴을 활 용한 한글 브랜드 제품들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 다. 맥 OS와 구글 크롬 OS에도 기본 한글 글꼴 로 설정되는 등 공개 OS상에서의 한글 이용 환 경 개선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네이버는 글꼴 이외에도 한글 문서를 좀 더 아름답게 작성할 수 있는 한글 문서 서식을 무 료로 배포했다. 한글로 문서를 가장 많이 작성 하는 대학생, 직장인,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가장 필요한 한글 문서 서식에 대한 설문조사 를 실시해 문서 서식과 프리젠테이션 서식 등 총 40여 종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네이버는 2011년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대 한 정확한 정보를 이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7 개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이 직접 발음을 녹 음하고 국립국어원의 검수를 거친 '한국어 표 준 발음 듣기 서비스' 를 추가하기도 했다. 또 이 용자가 표준 어법에 어긋난 단어를 검색했을 때 표준어 검색 결과로 바로 연결해 주는 링크를 포함해 올바른 한글 생활습관 유도에 도움이 되는 작업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한글사랑을 넘어 어떤 의도 가 느껴질 법도 하다. 네이버가 이토록 한글 캠페 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이사는 말한 다. "어떤 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딩컴퍼니는 크고 작은 비난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대기업들 은 기업이미지 광고와 사회공헌활동에 많은 돈 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죠.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려는 이유도 있지만, 대외적 으로 '착한 기업' 이미지를 심기 위한 의도도 담 겨 있다고 봅니다. 네이버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 런 기업이미지 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되었죠. "

국내 1등 포털 기업 네이버 역시 찬사와 비 난을 동시에 받는다.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착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비싼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를 수 는 없었다. 언제나 참신한 발상과 발 빠른 변신 으로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네이버의 방 식은 달라야 했다.

조항수 이사는 말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진정으로 순수할 수도 있지만, 이런 활동을 통 해 회사의 평판 또한 높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 다. 그런 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네이버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 수단은 물론 한글입니다. 네이버가 하면 가치 있을 법한 것 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한글사랑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그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온라인에 한글 정보의 양 자체가 적던 시절, 네이버는 '지식iN'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 한글 콘텐츠를 확보했다. 블로그와 카페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로 하여금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다양한 기관과의 제휴를 통해 인터넷상의 콘텐츠를 확대해 왔다. 때론 검색 결과가 폐쇄성을 지녔다는 비난도 받았지 만 꾸준히 한우물을 팠다. 그리고 세계 최대 포 털 구글에 무너지지 않은 순수 국산 포털로 자 존심을 지켜냈다.

네이버가 벌여온 한글사랑 캠페인은 전 세계 적으로도 찬사를 받고 있다. 2010년에는 칸 국 제 광고제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문 은상 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의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이 수상의 주된 이유였다.

네이버는 이 같은 특성을 살려 앞으로 늘 어날 온라인 한글 정보가 더 다양하고 아름다 운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한글 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글 캠페인을 꾸 준히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조 이사는 말한다. "네이버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한글을 기반으 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한글 글꼴에 대한 관 심이 남다릅니다. 올해는 환경까지 고려한 글꼴 도 내놓았어요. 글꼴에 실제로 구멍을 뚫어 잉 크를 아낄 수 있는 나눔글꼴에코와 실생활에서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깔끔한 디자인으로 제 작한 한글 문서 서식 40종도 함께 배포했어요. 앞으로도 네이버의 한글사랑에 대한 진심을 지 속적으로 전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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