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거미는 왜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걸까. 미국 버지니아텍의 생물학자 브랜트 오펠 박사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아주 최근에야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의외로 학계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희한하네요."
현재로서는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거미가 오직 날줄만을 밟고 이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적다. 거미는 거미집을 짓는 동안에만 수백 번이나 씨줄에 발을 디딘다.
위인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가 1905년 제시한 가설은 이보다 신빙성이 있다. 그는 거미들이 끊임없이 발을 입에 대는 것에 주목하고, 접착물질을 무력화할 일종의 윤활유를 발에 토해낸다는 가정을 세웠다.
그리고 거미의 발을 용매로 닦아냈더니 정말로 거미가 거미줄에 걸려버렸다.
작년 초 스위스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이 더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이 실험을 재현했는데 물로 발을 세척한 거미는 세척 전과 다름없이 거미줄에 달라붙지 않았지만 유기용매로 발을 세척하자 달라붙을 확률이 두 배나 높아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작년에는 코스타리카에서 또 다른 연구가 실시된 바 있다. 이 연구팀도 파브르와 동일한 결론을 얻었다. 다만 거미의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거미가 씨줄을 밟을 때는 접착물질에 최대한 닿지 않는 각도를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거미의 발에 있는 타시(tarsi)라는 작은 가시가 발과 거미줄의 접착을 방해한다는 가설도 내놓았다.
오펠 박사는 거미가 한 가지 이상의 방법을 동원해 거미줄에 걸리지 않게 노력한다는 코스카리카 연구팀의 가설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있다. "거미의 입장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접착물질 회피 기제를 개발, 발전시켜 왔을 거라는 추정은 충분히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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