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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바이오칩과 맞춤형 의료시대

의료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세계 각국의 고령화 시대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암(癌)과 치매, 파킨슨병 등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이 같은 난치병 치료의 최대 걸림돌은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렵다는 것. 환자가 병을 인지하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손쓰기 힘든 상황까지 병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집에서 단 한방울의 혈액만으로 이들 질환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면 어떨까.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 지방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김승우(50)씨. 그는 3년 전 간암 진단을 받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매 6개월 마다 정기검진을 받으며 재발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다음 번 정기검진을 앞두고 왠지 불안해진 승우 씨는 '암 마커 바이오칩'을 활용, 집에서 직접 자신의 혈액으로 간단히 간암 표지자의 혈액 중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수치가 평소보다 높게 나타나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이처럼 의료기술의 발전을 통해 앞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다양한 질병을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이른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Ubiquitous Health Care)'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U-헬스케어'라고도 불리는 이 분야는 생명공학기술(BT)과 유비쿼터스 기술로 대표되는 정보기술(IT), 10억분의 1m를 제어해 새로운 특성을 빚어내는 나노기술(NT) 등을 하나로 융합해 의료보건 수준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U-헬스케어 구현의 핵심기술은 바로 스마트 '바이오칩'이다. 이는 특정물질에 대한 생물학적 상호작용을 광학적 신호로 변환하는 '바이오센서'와 바이오센서를 칩 형태로 단일화한 '바이오칩'에서 다시 한 단계 발전한 상위 개념이다. 쉽게 말해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DNA와 효소, 항체 등을 이용해 몸속에 침투한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칩이라고 보면 된다.

바이오칩은 다른 분석 방법과 달리 혈액 등의 시료와 빠르게 반응해 신속 정확하게 분석결과를 알려준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특히 의료, 제약, 환경, 식품,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해 산업적 파급력도 매우 탁월하다.

예를 들어 바이오칩의 일종인 단백질 칩은 질병진단 뿐만 아니라 신약의 효능도 쉽고 빠르게 알려준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신약개발에 단백질칩을 활용할 경우 약물재료의 사용량을 크게 줄이면서 한 번에 수천~수만 개의 약물 재료를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오염의 경우 지리적 범위가 넓다는 특성 때문에 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이때 역시 바이오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바이오칩은 환경호르몬, 폐수의 BOD, 중금속, 농약 등을 측정하는데 더 없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식품 분야에서는 미생물, 설탕, 식품 변질, 잔류물, 오염물질 등의 감지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동안 식품 독소 분석은 시료 준비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고가의 장비와 숙련된 전문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일반인들도 쉽게 휴대형 바이오칩을 통해 식품 독소를 감지할 수 있어, 검역소뿐 아니라 요식업소와 급식소, 일반 가정에서도 식품안전성의 현장 검사기로 활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덧붙여 군사적으로는 사린가스, 탄저균 등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생물학적 무기의 조기 탐지에 효용성이 크다. 이처럼 바이오칩의 산업적 특성은 응용 분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현재는 의료부문에서의 수요가 가장 많다.





현재 의료용 바이오칩은 주로 암과 같은 질병의 조기 진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여기서 기술이 더 발전된다면 개인의 유전자나 체질에 따라 어떤 치료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아내 맞춤형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 환자가 암에 걸렸다면 복잡한 화학반응을 바이오칩 위에서 확인함으로써 화학요법이 좋은지 또는 물리요법이 좋은지는, 그리고 어떤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지도 미리 알 수 있는 것.

정봉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시스템이 구축되면 환자는 인근 편의점 등에서 바이오칩을 구입, 직접 질병 여부를 진단할 수 있게 된다"며 "문제가 발견되면 휴대폰을 이용해 바이오칩의 정보를 대도시의 대형 병원에 전송함으로써 원격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이어 "이렇게 되면 우수한 의료진과 우수한 설비를 갖춘 의료시설이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 불균형 문제까지 일거에 해소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 세계 의료용 바이오칩 관련 시장은 로슈, 지멘스, 애보트, 존슨 앤 존슨 등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전체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처럼 소수 다국적 업체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것은 바이오칩이 전자공학, 화학, 생물학, 재료공학, 효소공학, 물리학 등 과학 전반에 걸친 융합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기업이 바이오칩 기술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현장진단용 의료기기 시장에서 국산기술을 이용한 국내기업들의 제품 출시가 봇물을 이루고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말이다. 이는 그만큼 의료복지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얼마 전 이를 위한 첫 테이프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팀에 의해 끊어졌다. 생명연 신용범 박사팀이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분자 검출 감도가 뛰어난 고감도 바이오칩 기술의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지난 2년간 금속나노기둥 패턴을 만든 후 나노기둥 표면에 특이적으로 흡착되는 바이오 분자를 검출·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금 등의 귀금속을 나노미터 크기로 만든 나노구조체는 외부의 입사광 중 특정 파장의 빛을 강하게 흡수하는데, 암 표지자 등의 바이오 분자를 구조체 표면에 흡착시키면 흡수파장이 민감하게 바뀌게 된다. 이를 이용해 바이오 분자의 흡착량을 분석, 암 등의 질병을 진단하는 것은 물론 구제역과 같은 바이러스 검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바이오센서연구팀 성건용 박사팀도 바이오센서연구팀 성건용 박사팀도 한 번에 다양한 식품 독소나 질병을 조기 검진할 수 있는 다중검사 바이오칩과 자동검출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거대전하 나노입자를 이용한 무전하·저분자의 검출용 시그널 증폭기술과 상보성 금속 산화물 반도체(CMOS) 기술을 통해 그동안 바이오칩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신뢰성을 대폭 향상시켰다는 점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반도체의 고집적 기술을 적용해 100개의 나노센서로부터 측정된 값들을 통계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재현성과 수율을 현저히 높이고, 이를 통해 진단의 정확도를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현장진단용 초고속 혈액 전처리 칩도 함께 개발했다. 이 칩을 이용할 경우 일반인 누구나 의료진의 도움 없이 30초 이내에 전자동으로 혈액 한 두 방울에서 혈구와 혈장을 분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간편하고 신속하게 혈액 진단검사를 할 수 있다.

성 박사는 "일반적으로 혈액을 이용한 진단검사를 하려면 일반인들은 불가능했던 혈구와 혈장을 분리하는 기술이 요구된다"면서 "이번 연구성과로 식품 독소 및 암 질병의 조기 진단이 한층 간편하고 쉬워질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현재 바이오센서, 의료진단기기 업체 등에 기술이전을 추진 중이다. 향후 산업체로의 기술이전이 완료되면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여 2년 이내에 관련 시장에 제품이 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바이오칩을 한의학 분야에 적용하는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실제로 한국한의학연구원 김종열 박사팀은 '이제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상체질을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칩을 연구하고 있다.

이제마 프로젝트는 사상의학과 인간 게놈 지도 완성 이후 개별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유전체학을 접목시켜 개인의 체질에 맞는 질병진단 및 치료법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한의학 영역을 개척한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사람의 체질에 따라 각기 다른 처방과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맞춤형 진료와 일맥상통한다.

연구팀은 그동안 다채널 센서를 이용해 맥을 짚을 수 있는 지능형 맥진 로봇과 디지털 설진기 등 객관적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각종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등 본격적인 사상의학 연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연구책임자인 김종열 박사는 "미래에는 간단한 체질 진단 칩으로 자신의 체질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체질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맞춤의학 시대의 도래를 점쳐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팀이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사상체질의 진단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확한 진단에서 정확한 처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010년 개발한 체질진단 툴의 정확도 향상과 편의성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체질 임상정보를 수집하고, 체질의 유전 연구를 통해 체질 진단용 바이오칩을 개발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최종 목표다.

김 박사는 "오감형 센서를 한의학적 진단에 활용, 체질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침·뜸자극을 제공하는 재택근무형 한의사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한다”며 "이 연구를 통해 한국을 체질 맞춤의학의 선도국가로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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