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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를 쏘아 올린 자랑스런 한국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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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I)가 성공적으로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안착시켰다. 그 성공 드라마의 배경에는 150여 개에 이르는 국내 기업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땀방울이 서려 있었다. 나로호의 설계에서부터 발사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참여한 우리 기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홍성민 기자 sungh@hmgp.co.kr

MDC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초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2번의 실패가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1월 30일 오후 3시20분: 나로 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
나로호 발사를 40분 앞두고 MDC 안에는 터질 듯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호 발사추진단장을 비롯한 연구진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지난 1, 2차 발사 실패, 그리고 이제 마지막 단 한 번의 기회. 지난해 10월 발사시도 땐 헬륨가스 주입구 고무링이 파손돼 연기됐고, 11월 말에는 2단 추력방향제어기(TVC)에 이상이 생겼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3시45분: 발사 카운트다운 시작
MDC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초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2번의 실패가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발사 준비를 책임진 기술진들은 발사 시각인 4시가 다가올수록 초조하다 못해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대미를 멋지게 장식하느냐, 모두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끝나느냐. 이 모든 것이 남은 10분 안에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5, 4, 3, 2, 1, 0, 발사!”

4시 정각: 나로호 발사
마침내 나로호가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지상을 떠난 나로호는 처음 10초 동안 화염으로부터 발사대를 보호하기 위해 북동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이후 자세를 수직으로 바꾸고 고도 7.4km 지점에서 음속(마하 1·시속 약 1,200km)을 돌파하며 위로 쭉쭉 올라갔다. 이륙 215초가 지난 오후 4시 3분 35초경, 상단(2단)에 실린 나로과학위성을 덮고 있던 페어링(로켓 보호 덮개)이 두 개로 쪼개져 무사히 분리됐다는 안내방송이 우주센터로부터 흘러나왔다. 2009년 8월 1차 발사 실패 때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던 부분이라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는 직원도 있었다.
발사 232초 후엔 나로호 1단이 무사히 분리됐다. 그 후 2단 엔진(킥모터)이 점화된 순간부터 발사 통제동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로호가 2단 엔진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더라도 목표 궤도나 위성의 수명이 달라질 뿐, 위성이 궤도운동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1958년 미국의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도 4단 로켓의 껍데기에 인공위성이 달린 채 궤도를 돌았다.) 드디어 오후 4시 9분, 나로호가 2단에서 분리되면서 초속 10km가 넘는 빠른 속도로 목표 궤도에 안착했다. MDC 내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개발 착수부터 최종 발사까지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나로호가 작동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역량을 총집결시켰다.

150여 개 민간 기업들이 숨은 주역
1·2단 로켓 분리, 위성을 싸고 있던 페어링 분리, 나로과학위성의 분리가 차질 없이 진행되자, 540초 동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던 발사 통제동의 관계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곳곳에서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는 목소리가 터졌다. 대한민국이 우주강국을 뜻하는 ‘스페이스 클럽’에 11번째로 가입되는 순간이자, 우리 기업들의 숨은 노고가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 되면서 발사 과정에 참여한 150여 개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화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의 기술 이전이 물 건너 간 지 오래였지만, 우리 기업들은 미약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일취월장된 기술력’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이 나로호 발사 성공 하루 만에 한국형 발사체(KSLV-Ⅱ) 프로젝트를 발표한 배경에도 우리 민간 기업들의 기술 축적에 대한 신뢰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을 ‘스페이스 클럽’ 회원국 반열에 올려놓은 대한민국의 민간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 보자.

나로호 발사 전 과정에 참여한 대한항공
대한항공은 40년 넘게 군용항공기, 위성체, 무인기 등의 설계와 개발, 생산에 참여한 경험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나로호 개발과 전체 조립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개발 착수부터 최종 발사까지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나로호가 작동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역량을 총집결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추후 한국형 발사체(KSLV-II) 프로젝트에서도 대한항공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나로호 참여 과정을 들여다 보면 대한항공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하다. 대한항공은 개발 초기부터 발사체 각 구성품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조립 설계 도면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에도 발사체 제작을 위해 필요한 조립용 도구를 개발하고, 각종 지상지원장비를 설계·제작했다. 러시아 주관으로 수행된 발사체 1단부 점검작업과 1단부-상단부 연결 작업도 대한항공의 몫이었다.
발사체의 안전한 이송은 물류 분야 최고 기술력을 갖춘 모기업 한진과 대한항공이 맡았다. 1단 로켓은 길이가 25미터가 넘고 무게만도 130톤에 육박하기 때문에, 전용 특수수송장비와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했다. 한진은 인천공항, 김해공항, 부산항 등 여러 거점으로 나눠 운송된 나로호의 부품을 안전하게 우주센터까지 수송하기 위해 길이 30여 미터의 트레일러와 특수 바지선을 투입하는 등 국내최대 물류기업으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특히 이송 업무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발사체가 들어오기 전, 발사체 모형과 모의 이송실험 장비를 제작하고 이를 활용해 이송 검증시험을 4번이나 반복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실제로 발사체 1단부가 러시아로부터 김해공항을 통해 들어와 고흥 나로우주센터로 운송되기까지 한 치의 오차나 해프닝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립된 나로호를 조립동에서 발사장까지 이송해 발사대에 설치한 지상 이송 장비도 대한항공의 작품이었다. 나로호가 무사히 발사대에 안착되기까지 전 과정은 육해공을 넘나드는 대한민국 최고 물류 프로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작품인 셈이었다.

러시아의 러브콜 받은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은 2007년 2월 항우연으로부터 나로호 발사대시스템 공사를 수주해 나로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후 러시아 발사대 시스템 공정기술의 75% 이상을 국산화시키는 저력을 발휘하며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09년에는 나로우주센터의 발사대와 발사장 주요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기술 지원에 나선 러시아 측이 현대중공업의 기술력에 반해 자국의 해외 발사대 시스템 공사 참여를 제의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만큼 현대중공업의 기술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얘기다. 러시아 측은, 발사체를 수직으로 세우는 설비인 ‘이렉터 Erector’ 제작에 자체적으로 축적된 용접기술을 적용해 공정을 단순화하고, 일체형 구조물을 경량화해 제작일정을 30%가량 단축시킨 현대중공업의 기술에 특히 매료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발사대시스템을 구성하는 각종 설비들 또한 당초에는 러시아가 지정한 제품을 쓰도록 되어 있었지만, 현대중공업은 여기에 범용 제품을 적용해 구조물 제작을 단순화시켰다. 특히 이렉터를 제어하는 유압 시스템에 국내 기술을 접목해 발사대 개발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운용 및 유지 보수에 호환성을 갖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발사대 아래, 연료공급 설비와 연료 장비들을 보관하는 지하 3층 규모의 발사동도 현대중공업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이 설비들은 나로호 1단 추진체에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영하 196도의 초저온은 물론 나로호 발사 시 분사되는 섭씨 3,000도의 초고온 화염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현대중공업의 자체 플랜트 기술이 농축되었다. 러시아의 러브콜이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로호의 눈과 귀를 개발한 두산DST
로켓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항로를 스스로 수정하는 관성 항법 유도 시스템은 발사체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핵심기술 중 하나다. 나로호가 목표궤도에 정확히 도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기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군사용으로 개발한 미사일 유도장치에서 비롯되었다. 악천후와 전파 장애 같은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단시간에 스스로 자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항공기와 잠수함 등에 널리 활용하게 되었다. 특히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로켓의 항로 설정에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 국내 기술을 지닌 두산DST가 개발한 관성항법 유도 시스템이 나로호 발사체 1, 2단에 장착됐다. 로켓 발사 후에는 1단에 장착된 시스템, 1단 분리 후에는 2단에 탑재된 시스템이 각각 차례로 작동하며 로켓의 속도와 위치, 자세를 스스로 측정하고 제어한다.
우주항공 전문가들은 “관성 항법 유도장치의 진가는 1단 분리된 로켓이 2차 추진체(킥 모터 Kick Motor)를 통해 기동되면서부터 발휘된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권 밖에서 1단 분리된 로켓은 잠시 기우뚱했다가 자리를 잡는 과정을 서너 차례 반복하면서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로켓의 현재 속도와 위치 데이터 값인데, 관성 항법 유도 장치가 이 값을 정확히 추출해 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킥모터 분사 후 정상 궤도에 안착하는 것도 관성항법장치가 실시간으로 위치와 속도를 MDC에 알려줘야 가능하다. 두산DST 방산연구소의 손승현 항법팀장은 “두산DST의 관성항법장치는 방향을 측정하는 ‘자이로’와 속도를 측정하는 ‘가속도계’로 구성되는 관성센서를 이용해 운동을 검출하고, 항법컴퓨터를 통해 현재의 위치와 자세를 계산한다”며 “이를 통해 출발점으로부터의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MDC에 제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나로호 발사에서도 이 장치가 보내온 신호를 바탕으로 MDC가 엔진의 연료 분사와 연료 노즐 각도를 조절해 위성이 목표 궤도에 도달하도록 컨트롤했다. 두산DST의 독보적인 기술력이 진가를 발휘했던 것이다.

항공우주사업 전용 공장과 연구소까지 갖춘 한화는 향후 진행될 한국형 발사체 사업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순수 국내 기술로 2단 추진체 만든 한화
화약을 터뜨려 추진력을 얻는 고체연료 로켓은 이 분야 국내 최고의 전통과 기술력을 지닌 한화가 참여해 개발했다. 나로호 추진기관은 총 2단으로 구성되는데, 러시아에서 들여온 1단과는 달리 2단 추진체(킥모터)는 한화의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만들어졌다. 한화의 기술이 더욱 빛을 발한 건 나로호 2단 엔진이 분리되는 순간이었다. 산소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스스로의 폭발력만으로 추진력을 얻어야 할 때, 한화가 자체 개발한 ‘진공 폭발’ 기술이 나로호가 무리 없이 궤도로 진입할 동력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밖에도 한화는 엔진 노즐 각도 전환으로 방향을 트는 ‘구동 장치 시스템’ 제작에도 참여했다. 추진체를 이루는 유압시스템과 연료시스템, 발사체 제어시스템 등 발사체 기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추진’과 ‘제어’ 시스템 모두에 관여한 셈이다. 이는 1991년 F-16기 비행조종면 작동기 국산화 사업 참여부터 꾸준히 쌓아온 기술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공우주사업 전용 공장과 연구소까지 갖춘 한화는 향후 진행될 한국형 발사체 사업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첨단 소재 기술 뽐낸 한국 화이바
나로호 기체에는 가볍고 강도가 높은 카본 프리프레그Carbon-prepreg가 사용됐다. 카본 프리프레그는 탄소섬유와 레진이란 합성수지를 최적의 비율로 조합한 첨단소재다. 카본 프리프레그를 금형에 쌓아 가면서 그 사이에 허니콤 코어 Honeycomb Core(벌집 형태의 고강도 탄소섬유)를 삽입해 강도를 높인 것은 한국 화이바만의 기술이었다. 완성된 소재는 ‘샌드위치 구조’라 불리는 복합재 구조를 가지는데, 이는 기존에 항공기나 우주발사체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던 특수알루미늄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약 5배 이상의 강도를 지닌다.
한국화이바 특수사업본부의 조윤근 대리는 “카본 프리프레그는 우주와 항공분야에 이미 널리 쓰이고 있지만, 나로호에 적용된 소재는 당사에서 자체 개발한 것”이라며 “강도가 높고 온도저항에 대한 내구성이 탁월하다”고 한 단계 진화된 자사의 기술력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국화이바는 유리섬유, 탄소섬유 등 첨단 복합 소재의 원료부터 토목, 건축, 전기전자, 철도수송 등에 사용되는 각종 소재를 생산하는 복합소재 전문업체다.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주항공 소재산업에 뛰어들어, 2002년 KSR3(소형 과학위성 발사체)의 노즈 페어링을 시작으로 나로호 최종발사제품 3기를 포함한 총 7기의 제품을 제작했다.
나로호 최상단에 위치한 페어링도 한국화이바의 작품이다. 페어링은 대기권 통과 시 위성체와 내부 전자기기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페어링 표면에 씌워진 특수 단열재가 로켓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이 내부로 전도되는 것을 막는다. 이 회사의 개발 관계자는 “단열재를 일정한 두께로 균일하게 도포하는 것이 관건이자 우리의 기술력”이라며 “탑재될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음향공명기 등도 기체 내부에 설치했다”고 귀띔했다. 세심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향후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될 한국형 발사체 KSLV-II에서도 이 모든 노하우가 집대성되어 발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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