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털 전성시대이다. 정수기에서 시작해 자동차를 거쳐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모두 빌려 쓰는 시대가 됐다. 경기 침체 지속, 소비 트렌드의 변화, 사이버 마켓의 팽창 등 렌털 산업이 성장하기에 알맞은 시장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렌털 산업인 기업과 기업 간 B2B는 물론 근래엔 기업과 개인 간 B2C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엔 렌털 전문 종합 오픈마켓까지 등장하면서 렌털 산업의 범위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성장 속도에서는 B2C가 B2B 시장을 앞질렀다. 2013년, 바야흐로 ‘렌털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올해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 11일 밤 11시.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현대홈쇼핑 디지털 플렉스 촬영장에서는 이날의 마지막 상품 소개가 한창이었다. 이날 상품을 기획했던 정수영 MD는 초조하게 상담 주문 콜 박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귀경 인파가 저녁에 몰렸던 탓에 TV시청률 자체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기획한 프로그램이 참패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품 소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 주문 콜 박스 직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든 상담 직원들의 콜 박스가 붉은 색으로 변했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상품 구성을 준비했던 정수영 MD와 상품개발팀 팀원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통화 폭주로 연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수차례 나가고 있었다.
총 1,450콜. 흔히 말하는 ‘대박’이었다. 홈쇼핑에서는 보통 1,000콜 이상이면 히트작으로 친다. 이날은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만든 결과였기에 감회가 더욱 컸다. 이 대박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장수 흙침대 ‘렌털 상품’이었다.
최근 홈쇼핑 업계에서는 ‘상품 네임밸류는 높지만 고가인 까닭에 구매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제품’들을 렌털 상품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들은 거의가 히트 상품이 됐다. 장수 흙침대, 바디프랜드 안마 의자 등이 그 예다.
2011년 3억 원에 불과했던 현대홈쇼핑 렌털 상품 매출은 2012년 62억 원으로 1년 만에 20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는 3월 중순까지 집계된 매출액만 벌써 200억원대를 돌파했다. 현대홈쇼핑에서는 올해 렌털 상품 매출이 1,000억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홈쇼핑 사례는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다. 한국렌털협회 추정에 따르면 2011년에 이미 시장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섰다. 2006년 3조 원 시장에서 3배 이상 커진 것이다. ‘바야흐로 렌털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2012년 집계는 안되고 있으나 성장 기울기가 가팔라진 만큼, 최근 시장 규모는 예상치를 훨씬 넘어설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렌털 시장에서 단위 품목으로는 가장 큰 렌터카 시장이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20% 정도 성장한 것이 이 같은 의견을 뒷받침한다.
시장 변화에 민감한 여의도 증권사들도 재빨리 이를 캐치했다. 2012년 12월 토러스투자증권에서는 2013년 예상되는 메가트렌드와 여덟 가지 테마를 소개하며 렌털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형 증권사가 아니었음에도 이 보고서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인용했을 정도로 파급력이 높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미래 유망상품 키워드 - 중기적 관점에서’ 보고서를 통해 렌털 시장의 성장을 미리 예측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한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산업전략2실 수석연구원은 말한다. “최근 렌털 시장의 급격한 성장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렌털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최근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더욱 돋보인게 주효했습니다. 소유에서 사용으로 변하고 있는 소비트렌드도 한몫했죠. 게다가 저금리 상황에서 렌털 시스템을 활용한 기업들의 수익창출 방법도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창업 주체들도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렌털 제품 사용을 늘려 렌털 시장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