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NIH의 행보는 늦은 감이 있다. 호주, 일본, 유럽연합(EU)은 이미 의학연구 목적의 영장류 실험을 금지했거나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과학계는 이 같은 노력을 더욱 가속화 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필자는 윤리적 이유로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윤리는 차치하고라도 동물실험을 멈춰야할 과학적 이유가 넘쳐난다. 그중 가장 핵심은 동물실험의 효과가 다른 실험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비교열위에 있다는 점이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것이 과학적 결실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
또한 가장 많은 실험동물을 사용하는 신약개발 분야의 경우에도 동물실험은 신약 후보물질을 인간에게 사용했을 때의 치료효과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근래에는 인간의 질병을 가진 유전자 조작 쥐를 많이 활용하지만 사람과 쥐는 유전자의 작동메커니즘이 다르다. 이외에도 많은 이유 때문에 동물실험을 통과한 신약물질 중 무려 90%가 임상시험에서 퇴출된다.
해법은 뭘까. 미국 하버드 비스연구소가 개발한 일명 ‘인공장기 칩(Organ-on-a-chip)’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인간세포로 이뤄진 얇은 막, 혈액과 유사한 액체를 펌프질하는 마이크로칩으로 이뤄진 엄지손가락 크기의 기기다. 지금까지 장(腸) 근육의 수축을 모방한 칩, 폐처럼 공기주머니와 모세혈관 세포를 갖추고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칩이 개발돼 있다. 폐칩(lung-on-a-chip)의 경우 질병에 감염되거나 질병 상황을 똑같이 모사한다. 심지어 폐부종 등 화학요법 부작용으로 유발된 합병증에도 걸리게 할 수 있다. 현재 연구팀은 골수와 심장, 뇌를 칩으로 만들기 위해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컴퓨터 모델링도 실험동물의 좋은 대체재가 될 수 있다. 시스템 생물학자들에 의해 인간의 모든 조직과 장기를 분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3D 디지털 인체지도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이슬란드대학 시스템생물학센터는 얼마 전 인체 물질대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화학적 상호작용의 모델링을 완료하고, 혈액 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덧붙여 유전자 검사 등 직접 인체를 실험하는 사례도 늘고있다. 사람은 개체 간의 DNA 차이가 매우 심한 만큼 동일한 약이라도 효과가 다르게 발현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서, 개인맞춤형 치료제의 개발과도 맞물려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와는 상관없이 동물실험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과학적 필요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안구나 뇌처럼 아직은 어떤 방법으로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탓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면, 그만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은 자명한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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