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에서는 ‘흔치 않지만 한번 터지면 세상을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지닌 사건’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이용호 게이트와 BBK사건 등 이른바 주가조작 관련 사건들이다. 최근 정부는 이 같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고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자본시장조사단과 특별조사국을 설치했다. 금융감독 기능과 사법 기능을 융합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들 정부 방침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건전한 자본시장 조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
글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카이스트 겸직교수
주가조작 행위란 ‘상장증권 또는 파생상품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거래 시 중요한 사실에 대해 거짓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표시를 하는 등의 시세조정행위’를 말한다.
과거 카메룬 다이아몬드광산 개발을 주도했던 업체의 대표가 최근 귀국과 동시에 구속돼 이목을 끌었다. 광산 개발 당시 다이아몬드 추정 매장량을 과장, 주가를 폭등시켜 부당이익을 챙긴 것이 구속의 이유였다. 당시 이 사건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해외 다이아몬드 개발권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 점, 외교부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논란에 연루되었다는 점 등이다. 회계사와 외교부 직원, 변호사까지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현재는 이들 혐의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주가조작 사건으로는 소위 ‘보물선 사건’으로 알려진 이용호 게이트와 BBK사건이 있다. 먼저 이용호 게이트는 2001년 보물선 발굴 사업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 주가조작 일당이 250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사건이다. 당시 검찰총장 동생을 비롯해 예금보험공사 직원 및 대통령 측근까지 혐의가 제기되면서 특검수사까지 이뤄졌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해외 투자사업 유치 관련 허위 사실 유포로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려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다. BBK 대표는 이 중 384억 원을 횡령한 후 미국으로 도주했다.
시세조정행위 처벌 규정
실제로 필자는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실질심사 위원장으로서 주가 그래프에 조작 흔적이 뚜렷한 몇몇 문제 기업을 접한 바 있다. 작전세력이 주식을 매집한 다음 호재를 퍼뜨려 주가를 올리고는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들어오는 시점에 기매집한 주식을 매각, 이득을 챙기고 나가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선의의 투자자가 주가 급락에 따른 손해를 모두 떠안는 일련의 과정이 주가 그래프에 그대로 드러났다.
자본시장법에 의하면 주가조작, 즉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시세조정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이득금액이 5억 원을 초과하면 가중하여 3년 이상의 징역형과 그 이익의 3배 이하 벌금에 처하며, 50억 원을 초과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징금제도는 따로 없으나 시세조정행위의 경우 민사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이 소송은 증권 관련 집단 소송법에 의해 집단소송의 대상이 된다.
주가조작 조사 절차의 문제점
일반적인 시세조정 조사 절차는 다음과 같다. 시장감독 기관이 시장 감시 중 이상매매를 감지하면 금감원에 통보가 가고, 이에 금감원이 조사하여 혐의점을 발견하게 되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이후 사건 진행은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검찰이 수사를 거쳐 기소하기까지 대략 1년 3개월 이상이 소요되며, 재판 절차 역시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지다 보니 시장 상황의 변화나 사회적 관심 감소, 여러 경로를 통한 영향력 행사 등으로 규제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재판 과정에서도 주가 ‘관리’와 ‘조작’ 간 구분의 애매함과 법원의 온 정주의 내지 전관예우 등에 의해 주가조작 형사범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상당히 관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부에서 주가조작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본시장조사단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점은 고무적이다.
주가조작이 빈번한 이유
우리나라에서 주가조작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주가조작을 감시하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의 미비를 들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이 건전한 주식투자보다는 높은 수익률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도 한 원인이다. 그뿐 아니다. 공시 내용 검증제도와 불성실공시 규제도 미흡하다. 일반인 및 사법당국이 주가 조작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는 시장 영향 분석과 같은 경제학적 방법에 의해 정상가를 감정, 그 초과 지출 차액 상당을 손해배상 받을 수 있다. 이 소송은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에 의해 미국의 class action과 같은 집단소송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소송이 드물어서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공시제도를 좀 더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허위공시나 불성실공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시세조정 등의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법의 집행을 도모하는 한편, 이로 인한 부당이득은 철저하게 환수하도록 함으로써 시세 조정에 대한 유인을 근절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불공정거래행위에 가담한 일반인에 대한 제재도 필요하다. 시세조정에 관여한 사람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더라도 그에게 민사적인 제재, 즉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와 저금리시대에 따른 합리적 투자 대안으로 건전한 자본시장 조성이 여느 때 없이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이를 위한 범국민적인 인식 제고는 시급한 과제다. 과거와 같이 투기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은 건전하게 자금을 융통하고 투자자는 합리적인 투자이익을 도모함으로써 상호상생하는 건전한 자본시장과 바람직한 투자문화의 확립을 기대해본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및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