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의 합병은 연애결혼이지만 직원들에게는 중매결혼이다.”(최세훈 다음 대표-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
국내 인터넷 포털 2위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과 카카오톡의 운영사 카카오의 합병은 오는 10월 1일로 예정돼 있다. 남은 시간은 불과 3개월 남짓.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IT업계 거대 기업이 뭉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양사의 합병이 올해 상반기를 뒤흔든 IT업계 최대 토픽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양사의 합병이 당사자와 업계가 기대하는 만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포춘코리아가 양사가 보유한 강점의 완벽한 화학적 결합은 가능할지 분석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합병법인 ‘다음카카오’의 출현은 국내 IT생태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터넷 시장은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모바일로 흐름이 넘어간 지 오래다. 모바일 시장에서 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후죽순 쓰러져간 경쟁사들의 무수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시장에서도 모바일은 대세가 되고 있다. 중국의 인터넷 서비스 바이두는 다양한 플랫폼과 거대한 사용자 풀을 기반으로 대륙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다음과 카카오에게도 이번 합병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양사는 이번 합병 배경에 대해 “각 사가 보유한 인터넷-모바일 노하우를 접목시켜 시너지를 발휘하고 글로벌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 ‘시너지 효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다음은 포털 업계 2위다. 하지만 2위라는 타이틀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1위 네이버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위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실적도 내고 있지 못하다. 인터넷 시장조사기관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다음의 검색 점유율은 20%로, 1위 네이버의 점유율 75%에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포털의 핵심 수익원인 광고매출의 경우 네이버와의 격차는 무려 7배에 달한다.
심지어 모바일 검색 점유율은 구글의 추격 때문에 2위 자리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자체 경쟁력만으로는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시장구도를 바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포털, 웹메일, 카페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로 국내 IT벤처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국내 모바일 메신저 1위 플랫폼은 카카오톡이다. 대다수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카카오톡을 사용한다. 글로벌시장에서도 1억4,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듯했던 카카오의 성장세는 지난해부터 주춤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모바일 플랫폼으로의 변화를 주도했던 카카오페이지, 카카오스타일 등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게임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해 나갔지만 전체 수익의 85%를 차지할 만큼 게임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단일화 된 매출 구조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카카오는 이미 2015년 상장 계획을 발표한 상태였다. 예전만 못한 성장세 때문에 카카오가 직접 상장을 추진할 경우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뚜렷한 수익모델 확보에 실패할 경우 기업공개(IPO)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강력한 경쟁자인 공룡 포털 네이버가 문제였다. 네이버는 이미 인터넷을 넘어 모바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시장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창업 당시부터 유지해오던 NHN 사명까지 과감히 버렸다. 포털 서비스는 네이버, 모바일 서비스는 캠프모바일,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라인은 라인주식회사로 나눠 새롭게 사업 라인업을 구축했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 라인은 지난 6월 기준 전 세계 누적 가입자 수 4억 5000만 명을 돌파했다. 일찌감치 국내보다 해외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와 마케팅을 진행한 성과가 빛을 본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다음과 카카오를 압박했다. 어쩌면 양사의 합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동안 양사의 합병 얘기는 IT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양사는 ‘다음카카오’라는 이름으로 한 배를 탔다. 그렇다면 과연 양사가 기대하는 시너지 효과는 예상대로 네이버로 대표되는 국내 시장과 글로벌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알려진 바와 같이 양 사의 통합법인명은 ‘다음카카오’다. 카카오가 다음에 합병되는 형태로 진행된다. 기준 주가에 따라 산출된 약 1:1.55의 비율로 피합병법인 카카오의 주식을 합병법인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발행신주와 교환하는 방식이다. 형식적으로는 다음이 카카오를 인수하는 모양새란 얘기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카카오가 다음을 흡수하는 형태다. 합병비율에서 카카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오르게 된다.
다음카카오는 합병 이후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조직개편을 통한 업무 집중화를 꾀할 것으로 관측된다. 본격적인 조직개편은 합병이 마무리되는 오는 10월 이후 진행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NHN과 마찬가지로 모바일 메신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각 사업군 별로 분사 형태를 띨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특히 양사 조직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통합작업도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합병 발표 직후 다음 측은 사내 설명회를 열어 당장의 큰 변화가 없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인 만큼 조직개편이 카카오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장 관심 가는 대목은 과연 다음카카오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줄지에 대한 여부다. 일단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이 양사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재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다음의 인터넷 포털 영향력 상승, 카카오의 모바일 서비스 강화가 기대된다”며 “다음이 보유한 인터넷 포털 창구를 카카오가 보유한 4,000만 명의 국내 액티브 유저와 결합하면 양사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인터넷 환경을 가장 먼저 구축한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카이스트 명예교수) 역시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 박사는 “합병 없이는 글로벌시장을 공략 할 수 없다는 동질감이 양사에 형성 됐을 것”이라며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은 양사에게 필연적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양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합병의 혜택을 잡을 수 있을까. 우선 다음은 네이버에게 뒤처진 모바일 플랫폼 부문 점유율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에 다음 모바일 검색서비스가 연결될 경우 모바일 검색시장 점유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세훈 다음 대표도 이번 합병을 통해 생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변화로 모바일 검색시장을 꼽았다. 카카오 모바일 플랫폼과 다음 콘텐츠 서비스 간의 결합을 골자로 한 검색서비스 연동 전략을 갖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최 대표는 지난 5월 합병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다음은 이번 합병을 통해 모바일 검색시장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서비스 연동 계획 및 아이디어는 많지만 구체적으로 얘기할 단계는 아니며, 관련 사항은 추후 논의할 계획”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카카오는 PC기반의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PC온라인 시장에서 경험이 풍부한 다음의 각종 서비스를 통해 PC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카카오는 카카오톡 PC버전, 카카오스토리 웹버전을 잇따라 선보이며 이 같은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카카오가 추진할 예정인 뉴스서비스의 경우, 다음과의 시너지효과가 가장 잘 드러날 사업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PC온라인 뉴스 서비스 분야에선 다음이 네이버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PC온라인 뉴스 평균 체류시간은 다음이 79.92분, 네이버가 74.43분이다. 월간 페이지뷰 역시 다음이 15억여 건, 네이버가 13억여 건을 기록하고 있다(2014년 3월 기준).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야심 차게 내놓은 뉴스스탠드 서비스에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다음 웹사이트로 뉴스 트래픽이 유입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카카오는 아직까지 뉴스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카카오가 독자적으로 언론사와 콘텐츠 공급계약을 맺는 것보다 PC에서 강한 다음의 뉴스를 활용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 의견이다. 한 포털 업계 관계자는 “포털 성장에 뉴스 서비스가 큰 공헌을 한 만큼, 뉴스서비스의 경쟁력 확보가 카카오와 합병법인의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양사의 합병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흘러나오고 있다. 공통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바로 글로벌 시장이다. 일단 녹록지 않은 글로벌시장 상황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 있다. 이미 주요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한 상태이고, 모바일 메신저의 경우에도 중국에선 위챗, 일본과 동남아에선 라인이 이미 확고한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와츠앱과 페이스북이 굳건히 1위를 지키고 있다.
물론 카카오도 해외 시장에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에선 야후재팬과 함께 카카오 일본법인 ‘카카오 재팬’을 설립했고 싱가포르, 중국에서도 현지 법인을 설립해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라인과 위챗의 선점효과가 카카오의 시장 성공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다음 역시 해외 진출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최근 글로벌시장 진출을 선언한 다음의 모바일 메신저 ‘마이피플’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마케팅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라인과 위챗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글로벌시장에서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 다음과 카카오의 결합이 과연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란 얘기다.
김미송 현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시장에선 왓츠앱, 라인, 위챗 3개 주요 모바일 메신저가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다음카카오가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선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적 확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관들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UBS는 양사의 합병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 전망했다. UBS는 “카카오가 이번 합병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해외에서 다음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합병 시너지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