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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대유행 예측의 오류





지난해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최악의 경우 올 1월 중순경 에볼라 감염자수가 140만명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천만다행으로 이 예측은 빗나갔다. 그런데 왜 빗나간 걸까.

서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에볼라는 결코 과소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2014년 3월 첫 환자가 발생한 이래 2015년 2월 8일 현재 2만2,894명이 감염돼 9,177명이 사망했다. 환자 치료를 위해 동분서주한 의료진도 830명이 감염돼 488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주요 창궐지역인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라 등 서아프리카 3개국은 지역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돼 버렸다. 학교는 휴교를 했고, 지역경제는 망가졌다. 타인과의 신체접촉을 삼가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에 따라 사람들은 악수를 하지 않으며, 에볼라에 감염된 뒤 완치된 사람마저 회피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에볼라를 전염시켰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이 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 지난해 가을 많은 과학자들은 에볼라의 대유행이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수의 기관이 유행병 확산 시뮬레이션을 통해 올해 1월까지 감염자수가 수십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 예견했으며, 미 질병관리본부(CDC)의 경우 올해 1월 중순쯤 서아프리카에서만 최대 140만명의 감염자 발생을 예측했다.

다행히 이 암울한 예측은 빗나갔다. 신규 에볼라 감염자 증가세도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다소 둔화되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에볼라의 대유행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만큼은 넘겼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는 분명 더없이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CDC를 포함한 많은 기관들의 예측은 왜 틀렸던 것일까. 전 세계 보건당국의 노력을 과소평가했던 걸까.

타이밍의 오류

작년 9월에 발표된 CDC의 에볼라 확산 모델링 결과는 8월말까지의 데이터에 기반했다. 당시 에볼라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고, 서아프리카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국가나 구호기관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9월 이후 많은 국가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에볼라의 전파 방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빠르게 개선된 것이다.

이에 대해 CDC의 연구를 주도했던 마틴 멜처 박사는 전염병학자들도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지원이 이뤄질지, 그 지원이 실제로 전염병 확산 방지에 어느 정도 효과를 미칠지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저희는 추가적인 개입이나 인간행동의 변화가 없다는 가정 하에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물론 그 전제가 틀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죠. 아니 틀리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전염병학자이자 시에라리온의 병원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콜린 브라운 박사는 모델링 결과와 실제 상황에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재난에 대한 과학자들의 예측을 불필요한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작년 가을의 예측 모델은 국제협력이 전개되지 못했을 때 어떤 참상이 벌어질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제사회가 에볼라 차단에 두 팔을 걷어붙이도록 만든 계기가 됐다고 해도 큰 실언은 아닐 겁니다.”



숨겨진 감염자의 오류

모델링 시점에 더해 변수에 의해서도 예측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지난해 WHO는 11월초 에볼라 감염자수가 2만명에 달할 것이라 발표했는데, 실제 감염자수는 약 1만3,000명 수준이었다. 7,000여명의 격차가 있기는 해도 138만명 이상의 오차가 난 CDC와 비교하면 훨씬 정확한 예측이었다.

동일한 데이터를 활용했다면 이렇듯 큰 차이가 생길 리 만무하다. CDC와 WHO의 차이는 공식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감염자수를 변수로 적용했는지 여부에 의해 나타난 것이었다. 실제로 모든 질병과 다를 바 없이 에볼라도 감염자가 100% 파악되지는 않는다. 모든 감염자가 관계기관에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WHO는 이러한 숨은 감염자를 예측하지도, 모델링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반면 CDC는 공식 감염자 1명이 발생할 때마다 1.5명의 숨은 감염자가 발생한다는 가정을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CDC의 감염자 수 예측이 유달리 높게 나타난 데에는 이것이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복잡성에 의한 오류

에볼라 대유행 초기의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감염자들이 외국에서 온 의료진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의료기관을 찾지 않았고, 자신도 모르게 주변사람들을 전염시켰다. 또한 사망자 가족들은 시신을 염하고, 키스하고, 끌어안는 전통 장례의례를 지키는 과정에서 에볼라에 노출됐다.

또한 멜처 박사는 교육수준 등에 따라 인간이 에볼라와 같은 전염병에 대해 학습하는 속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예측의 어려움을 높이는 요인이라 설명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불확실성이 에볼라의 확산 예측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서아프리카 주민들의 학습속도는 기대 이상으로 빨랐다. 일례로 ‘국경 없는 의사회’가 라이베리아의 로파 카운티에서 지역 리더들과 함께 에볼라 전파 방식 및 예방법을 가르치자 주민들의 행동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시에라리온에서도 전통 매장문화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아픈 사람이 생기면 즉시 의료기관으로 보내 에볼라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고 한다.
“시에라리온 주민들은 신체 접촉을 중시하는 다정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악수를 권하는 것조차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일 정도예요. 에볼라가 신체 접촉과 체액을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식한 결과입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신규 감염자 발생속도가 둔화되고는 했지만 아직 서아프리카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주의를 소홀히 한다면 언제든 다시 에볼라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봄에도 신규 감염자수가 줄어들자 대유행이 끝나간다는 섣부른 전망이 나왔지만 불과 수주일 뒤 에볼라는 이전보다 강력한 모습으로 맹위를 떨쳤다. 올 2월 첫째 주에도 1월 마지막 주보다 20명이 늘어난 144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처 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전 세계 보건당국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노력할 경우 에볼라 대유행을 잠재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에볼라를 막는 마법의 약은 없습니다. 전파 경로의 추적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
이고, 감염자들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해 생존율을 높이고, 안전한 장례 문화를 지속적으로 전파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브라운 박사는 이번 에볼라 대유행이 진압된 후에도 서아프리카에서는 수개월동안 국소적 에볼라 발병이 이어질 것이라며 보건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예전의 장례문화로 돌아가는 순간, 수개월간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갑자기 감염자가 나올 수 있어요. 주민들 사이에서 실시간 감염경로를 파악하고, 환자를 신속히 발견해 치료하는 일종의 특수기동대를 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이온 등 3개국 대통령은 최근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4월 중순까지 에볼라 신규 감염자수 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상호 협력키로 합의했다.

62억 달러 세계은행이 예상한 에볼라 창궐에 따른 아프리카 경제권의 손실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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