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지금 ‘이 순간’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

[FORTUNE'S EXPERT] 송길영의 ‘기업문화 이야기’

‘오늘을 희생하여 내일을 성취하자’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이 말이 적절치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대여 그대여’로 시작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이제 봄이 오는구나!’ 라는 따뜻한 느낌이 가슴속에 차오릅니다. 2012년 나온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이 다시 순위 차트에 오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봄을 피부로 느끼게 되죠.

여의도의 윤중로보다, 어린이 대공원의 야간개장보다, 그리고 더 나이가 드신 분들은 기억하실 창경궁이 창경원이던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갔던 나들이보다, 더욱 강렬하게 지금의 봄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 ‘벚꽃 엔딩’은 스쳐 지나가는 봄을 하나의 의식(ritual)으로 만들어주는 참 소중한 노래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제는 4년 넘게 봄마다 차트를 역주행하니 소셜 데이터 속에선 ‘봄마다 튀어나오는 좀비 같은 봄 캐럴’, 심지어 ‘벚꽃 좀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또 싱어송라이터인 장범준 씨는 ‘벚꽃 연금’이라는 부러움 섞인 별칭을 붙이기도 합니다. 대중이 봄 캐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심지어 여름, 가을, 겨울 캐럴도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서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에서 휴 그랜트가 맡았던 ‘프리먼’이란 인물도 생각나는군요. 영화 속 인물은 아버지가 남겨준 크리스마스 명곡의 저작권으로 생활하는 한량입니다. 많은 분이 그 영화의 내용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곁가지로 부러워했던 것이 화수분과도 같은 그의 유산이었을 겁니다.

실제 유산이 아닌데도 이렇게 매년 엄청난 저작권을 연말에 거둬 가는 곡이 또 있습니다.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 ‘크리스마스에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야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이지요. 199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전통적인 캐럴송보다 더 많이 재생되는 곡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가 실린 그녀의 4번째 정규앨범 ‘Merry Christmas’는 그 당시에도 무려 2,000만 장이나 팔려나갔고, 20년간이나 시즌 송으로 상위 차트 100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머라이어 캐리가 이 노래의 공동 작사 · 작곡가라는 것이죠. 이쯤 되면 은퇴 후 받는 연금 수준이 아니라 특급가수의 생업을 넘는 수준인 듯합니다.

이러한 ‘시즌 송’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훌륭한 작사와 작곡, 가창력은 당연한 요건이겠지요. 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노래들이 발표되고 다시 잊히는 대중음악계에서 매년 다시 찾아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그 곡의 완성도만으론 설명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선배님들에게 여쭤보면 가장 헛갈리는 것이 지금 현재의 날짜라고 합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1주일은 7일이지만, 바쁜 현대 생활을 하다 보면 요일을 잊거나, 달을 잊거나, 혹은 내 나이마저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해가 바뀌어도 3월까지는 지난해 연도를 문서에 잘못 써서 정정하는 일이 꽤 많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렇듯 반복되는 나날이 그것도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우울한 감정까지 듭니다.

이렇듯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가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질 때, 평범한 바로 ‘지금’이 특별한 날임을 알려주는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바로 ‘시즌 송’일 겁니다.

어렸을 적 품었던 원대한 꿈과 야망이 세월 속 한계와 회한으로 조금씩 마모되거나 녹슬게 되면서 일상에 의미를 담고 싶어 하지만, 모둠살이 속 가치의 공유와 눈높이는 점점 세속화되기에 그마저도 녹록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목적지가 있는 것이라 믿지만, 사실은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일상을 축하하고 축복하고 싶어지는 것이 현대인에겐 특별한 의식(ritual)으로 다가옵니다.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 케이크를 자르는 부서원들과의 쑥스러운 깜짝 파티, 사탕과 초콜릿을 나누는 연인들의 날, 잊으면 당분간 아침밥이 사라지는 결혼기념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이의 졸업식이 바로 그러합니다. 아기를 낳기 전 가는 태교여행, 연인들의 100일 · 200일 · 1,000일 기념일, 심지어 아이 대신 기르는 반려견과 반려묘의 입양기념일 같은 수많은 기념일도 우리의 삶 속에선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시절과 비교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실 만한 이러한 일상 속 의미는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그토록 동경하던 잘 차려입은 서양사람들의 수많은 파티와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매일 속에서 조금은 번거롭고 어색한 의식들은 우리의 일상에 쉼표를 허락하는 것을 넘어 사는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매일을 저축하며 살아가라’는 말은 가진 것이 너무나 없어서, 역으로 말하면 무엇을 해도 성장하고 커 나갈 수 있었던 1960년대 이후 우리 한국인에게 절대 종교가 되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되었고 수출액(교역액이 아닌!)은 매년 증가했으며, 유아사망률과 평균수명 역시 큰 폭으로 개선되어 유엔 데이터를 분석하는 스웨덴의 한스 로슬링 박사의 표현에 의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아웃라이어(outlier : 통계적 이상치)에 해당하는 국가로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세칭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 ‘오늘을 희생하여 내일을 성취하자’라는 구호였던 셈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경제규모 확대, 국제경쟁의 격화, 미래의 불확실성, 현재의 어려움에 기인한 인구정체 등으로 우리의 미래가 예전처럼 약속되었다 말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모 생명보험 회사의 광고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앞으로 수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동물원에 가서도 지금 서 있는 곳의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표지판이 가리키는 100미터 전방의 다른 곳을 찾아 끊임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개발시대 우리의 이미지를 독일의 미하엘 엔데는 1973년에 이미 그의 작품 ‘모모’에서 시간을 소모하는 회색빛 인간으로 경계한 바 있습니다.

굶지 않고 사느냐와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에는 어떻게 사느냐와 무엇을 위해 사느냐의 단계가 자연스레 다가오게 됩니다. 지난 시절의 어려움은 우리에게 고난과 성취의 기쁨을 함께 주었습니다. 이제는 그다음의 인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해보고 내일보다 오늘의 소중함을 느끼고 실천할 때가 아닐까요. 윤동주 시인이 1934년 18세 때 쓴 ‘내일은 없다’라는 시처럼 말입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송길영 부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캐는 Mind Miner이다.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나아가여기에서 얻은 다양한 이해를 여러 영역에 전달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활자를 끊임없이 읽는 잡식성 독자이며, 이종(異種)의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저서로 ‘상상하지 말라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욕망을 보는 법’이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