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창간 6주년 특별기획 Ⅱ] 40 UNDER 40/ 류경호·이라미 인바디 부사장

소통 잘하는 멀티플레이어<br>초고속 승진 신화를 쓰다

창업 이후 줄곧 흑자를 달성한 회사가 있다. 무려 20여 년간 이어진 흑자행진이다. 그 주인공은 체성분 분석기 하나만으로 국내외 시장을 사로잡은 체성분 분석기 전문기업‘ 인바디’다. 그리고 여기 인바디 성공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명의 젊은 기업인이 있다. 류경호 부사장과 이라미 부사장이다. 포춘코리아가 탁월한 업무능력과 리더십을 증명하며 포춘코리아‘ 40 Under 40(40세 이하 차세대 경영리더 40인)’에 선정된 인바디의 두 젊은 기업인을 만났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인바디는 회사가 아닙니다.”
인바디가 어떤 회사인지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류경환, 이라미 부사장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의외의 답변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어봤다. 회사가 아닌 회사, 인바디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라미 부사장은 말한다. “저희는 인바디를 회사가 아닌 학교라고 말합니다. 학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잠재 가능성을 꺼내주죠. 인바디는 더 나아가 구성원들의 가능성에 회사 역량 대부분을 투자합니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창업자인 차기철 대표의 경영철학이자 인바디의 핵심 경영전략이기도 합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강조한 이 부사장의 말처럼, 인바디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시작된 회사다. 인바디는 1996년 바이오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회사다. 당시 창업자인 차기철 현 인바디 대표는 미국 의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된 지방 및 근력 측정 기술연구를 눈여겨봤다. 1990년대 미국에선 비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비만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연구가 진행됐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체성분 분석이었다. 차 대표는 국내에선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았던 체성분 분석기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출발은 쉽지 않았다. 자체 개발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가 처음 판매된 시점은 제품이 출시된 지 무려 5년 만이었다. 이후 인바디는 고품질의 체성분 분석기라는 입소문을 타며 무섭게 판매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병원과 피트니스 센터에서 체성분을 측정할 때 ‘인바디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인바디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수준에 이르자 바이오스페이스는 지난해 사명을 바이오스페이스에서 인바디로 변경했다. 가능성 하나로 출발했던 조그만 벤처기업이 20여 년 만에 글로벌 체성분 측정기 시장 1등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이 같은 인바디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라미 부사장(39)과 류경호 부사장(38)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탁월한 사업능력을 인정받으며 입사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라미 부사장은 인바디가 첫 직장이다.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이 부사장은 2003년 인바디 입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당시 이 부사장의 지원 분야는 '임상연구'. 전공이었던 식품영양학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발령받은 부서는 다소 뜬금없는 국내 영업 파트였다.
이 부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인바디의 당면 과제는 영업력 강화였습니다. 국내 시장 개척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죠. 일단 회사에 들어온 이상 맡고 있는 업무의 영역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회사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 생각했고, 군말 없이 영업 업무를 시작했죠."

이 부사장이 담당하게 된 지역은 병원이 밀집된 서울 강남이었다. 매일 발이 부르트도록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직업병(?)까지 얻었다. 꿀맛 같은 휴일에도 병원을 보면 무조건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헛웃음을 짓기 일쑤였다. 영업 파트에서 근무하던 이 부사장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 건 입사 4개월째 되던 어느 날이었다.

"뜬금없이 대표님이 절 찾으셨어요. 제품 판매를 위한 식약청의 임상허가 규정이 까다로워졌다며 관련 연구를 맡아보라고 하셨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담당 부서 인원이 줄어들면서 모든 업무를 고스란히 저 혼자 도맡게 됐어요. 무엇보다 일개 사원으로 주요 업무를 홀로 떠맡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사장은 그때 결심했다. 뒤로 숨기보단 당당히 맞서자고 다짐했다. 밤을 새워가며 임상허가와 관련된 국내외 논문자료를 탐독했다. 그리고 업무성과를 매일 대표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칭찬은 돌아오지 않았다. 보고하고 혼나고를 반복하는 날이 이어졌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이 부사장은 오기가 생겼다. 보란 듯이 해내겠다고 스스로 수없이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모두를 만족시켰다. 당시 이 부사장의 연구 성과는 이후 인바디가 국내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사장은 당시의 성공을 기반으로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입사한 지 7년 만에 핵심부서 중 하나인 연구기획실의 부서장에 올랐고, 1년 만에 연구소장과 이사를 겸임하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 부사장직에 취임해 지금까지 인바디 영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라미 부사장이 생각하는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 부사장은 말한다. “회사 내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실무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실무경험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임원은 그저 아랫사람들을 부리기만 하는 관리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움직이면서 실무를 많이 아는 임원이 많은 회사일수록 더욱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사장의 말처럼 발로 뛰는 실무형 임원이 많은 회사는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비단 임원에게만 국한되는 사항이 아니다. 높은 연봉을 보장받고 외부에서 스카우트된 경력직원들도 이에 포함된다고 이 부사장은 말한다. 이 부사장은 “경력직으로 입사한 분들 대부분은 편한 업무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관리형 경력직을 선호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강하다 보니 경력직 중 대다수는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바디 직원의 평균 연령은 32세다. 170명의 직원을 보유한 중견기업치곤 평균 연령대가 낮은 편이다. 신입 채용을 통해 입사한 직원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바디의 조직문화를 고려하면 류경호 부사장은 돌연변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경력직으로 입사해 임원직까지 오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류 부사장은 샐러리맨의 로망인 '고속승진'을 해왔다. 지난 2009년 5월 인바디에 입사해 불과 3년 만에 부사장직에 올랐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생각하는 고속승진의 비결은 무엇일까? 류 부사장은 말한다. "추진력, 그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불안감이겠죠.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밀어붙이려는 자신감과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입사 후 업무과정에서 보였던 저 나름의 추진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원래 류 부사장은 공학도였다. 한동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류경호 부사장은 2003년 케이씨덱 선임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007년 4월에는 회사 프로젝트였던 '대기압 플라즈마 세정기' 개발로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며 엔지니어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년 후인 2008년, 류 부사장이 서 있던 곳은 그가 밤새며 작업하던 연구실이 아닌 뮤지컬 무대였다. 도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류 부사장은 말한다. "그냥 제 꿈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극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지금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 회사를 박차고 나와 도전을 시작했어요."

무작정 대학로를 찾았다. 소규모 연극과 뮤지컬의 조연출로 일하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2008년 8월, 자신이 직접 연출한 뮤지컬 ‘슈샤인보이’를 무대에 올리며 오래된 자신의 꿈을 이뤄낼 수 있었다. 당시 뮤지컬배우로 출연했던 아이돌 출신 가수 ‘리치’의 앨범에 자신이 작사한 노래가 실리면서 앨범재킷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는 색다른 경험도했다. 류 부사장은 말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모한 결정이었어요.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끝까지 밀어붙이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죠. 맷집이 커졌다고 하면 올바른 표현일까요?(웃음)”

잠깐의 외도가 가져다준 경험은 류 부사장의 성공에 기폭제가 됐다. 2009년 대리 직급으로 인바디에 입사한 류 부사장은 인바디 천안공장 생산기술팀에서 품질평가 업무를 담당했다. 품질 확인뿐만 아니라 품질 업그레이드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까지 류 부사장의 몫이었다. 류경호 부사장은 "품질 업그레이들 위한 단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작은 것에 집중하다 보니 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아이템이 자꾸 떠올랐고, 또 그것을 구체화하고 싶은 욕심도 커져 나갔다"고 말했다.

입사 후 8개월 만에 천안공장 공장장에 오른 류 부사장에게 대표는 새로운 사업과제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공장 업무에서 보여준 류 부사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때 류 부사장은 대표를 만족 시킬만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바로 B2C 시장 공략을 위한 가정용 제품이었다. 류 부사장은 말한다. “웬만한 가정집에 체중계 하나쯤은 있잖아요. 거기에 주목했죠. 인바디의 체성분 분석 기술을 탑재한 가정용 체중계를 개발하면 기존 체중계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중계뿐만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도 충분히 인바디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 확신했어요."

회사에서도 류 부사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신제품 개발을 전담하는 부서의 수장으로 류 부사장을 선임했다. 그가 부사장직에 오른 시점도 이때였다. 입사 3년 만에 대리에서 부사장으로, 말 그대로 고속승진이었다. 상상 이상의 고속승진이었지만 그는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고속승진이 가져다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마음을 다잡았다. 류 부사장은 말한다. “부사장 취임 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목표를 정했습니다. 겸손, 실무, 그리고 베풂이죠.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일하고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뛰면서 제가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부사장이란 직위는 그저 자리 이름일 뿐이에요. 아직 저는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게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바디의 성장을 이끈 이라미 부사장과 류경호 부사장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입사 이후 한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현장에서 소통하며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이다. 영업, 생산, 개발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모든 부문을 두루섭렵하며 인바디의 성공스토리를 함께 쓰고 있는 이라미, 류경호 부사장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류경호 부사장 프로필
·1977년 출생
·1996-2003 한동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
2003-2007 ㈜케이씨텍 선임 연구원
·
2007년 4월 IR52 장영실상 수상
·
2008년 8월 뮤지컬 ‘슈샤인보이’ 극작/연출
·
2008년 9월 가수 리치 싱글앨범 ‘처음 느낌’ 작사
·
2009년 5월 ㈜ 인바디 입사
·
2010년 1월 ㈜ 인바디 천안공장 공장장
·
2010년 11월 ㈜ 인바디 등기이사
·
2012년 1월~ ㈜ 인바디 부사장

이라미 부사장 프로필
·1976년 출생
·1994-1999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학사
·
2001-2003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
2003년 1월 ㈜인바디 입사
·
2003년 1월 ㈜인바디 국내사업부 영업팀 소속 (사원)
·
2010년 1월 ㈜인바디 연구기획실 부서장
·
2011년 1월 ㈜인바디 이사/연구소장 겸임
·
2012년 1월~ ㈜인바디 부사장
·
2015년 현 KAIST MBA 과정 수료 중 (2015년 2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