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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

[FORTUNE’S EXPERT 송길영의 ‘기업문화 이야기’ ]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을 하는 터라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기업들로부터 강연 요청이 자주 들어옵니다. 의사결정권자가 먼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주로 사장단이나 임원진을 대상으로 강연하곤 합니다. 어느새 꽤 많은 기업인을 뵙게 되었죠. 그동안 만난 분이 수천 명을 넘다 보니 나름 한국의 큰 조직에 계신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되더군요. 아마도 이 글이 실리게 될 잡지의 독자층과 정확히 일치하지않을까 싶네요.

평균적으로 한국의 의사결정권자는 50대 중반의 남성입니다.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을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세대죠(물론 지금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대학에서 공부한 시기는 대개 1980년 전후입니다. 이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허가제였고 1977년에야 겨우 100억 달러 수출 기념우표가 발행되었으니, 가진게 별로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오직 공부 하나로 꿈을 키워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공부를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던,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의 분들입니다.

가진 게 없다는 건 잃을 게 없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때만 해도‘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슬로건을 암송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또 시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을 희생하면 무언가 좋은 미래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GDP의 성장은 늘 있는 일이었고, 아파트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뛰었으니까요. 그 ‘ 중요한 시기’ 에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그야말로 멸사봉공의 자세로 열정(이라 부르지만 야근입니다)을 불태웠던 것이죠.

그 시대를 보낸 임원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남아서 일하는 걸싫어하는 세칭 ‘요즘 애들’일 겁니다. 회사가 가장 중요하고, 또 확률도 높은 로또인데 왜 회사 일을 거부하는지 애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표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30년 넘게 열정을 보인 임원들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요? 한 기업에 강연하러 갔을 때 “송 박사, 오랜만이네요?”라며 인사를 건네 오신 임원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도“네, 오랜만에 뵙네요. 여전히 잘 지내시죠?”라고 반갑게 인사했습니다.그러자 “뭐, 그렇죠. 근데 이제 그만하려고요”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돌아왔습니다. 이유를 묻자 “나이도 있고, 힘도 부치고……” 하는 의례적이야기가 따라 붙었습니다. 국내 기업도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터라 베이비 부머의 이른 은퇴 시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계획을 여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결 눈에 생기가돌며 “가족들 신경 좀 쓰려고요. 특히 집사람에게 잘하려고 합니다”라는답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30년간 자신은 회사에만 신경 쓰고 집안 대소사는 모두 사모님 몫이었기에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매우 미안한 마음이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잘하실 건데요?”라고 되물으니 “뭐든지 집사람과 함께하려고 해요”라는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제 경험상 그렇게 하시면 광속으로 이혼당하세요’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속 글들을 보면 아내가 좋아하는 건,남편은 안 들어오고 월급만 들어오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퇴직하면 월급은 안 들어오는데 남편만 들어와 있다는 거죠. 최근 ‘2015 고용패널학술대회 학생논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은퇴가 은퇴자및 배우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 따르면, 은퇴한 남편이 삼식이(은퇴 후 집에서 세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비하하는 말)가 되는 경우배우자인 부인의 건강이 2년째까지 무려 40%나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식이 스트레스를 부인이 고스란히 받는다는 얘기죠.

더 문제는 남편이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비슷한이야기를 다른 분도 하시길래 “사모님은 뭐든지 같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실 텐데요”라고 넌지시 얘기를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에이, 우리 집사람은 안 그래요”라는 대답이 돌아와 순간 아연실색한 적이 있습니다.그런 분에게 저는 이런 얘기를 해드리고 싶군요. 사모님 얘기도 좀 들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설령 그런 분들이 지금은 같이 보내는 시간도 적고, 수입도 꽤 괜찮으니까 그렇게 생각 안 한다 해도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될지는 잘 모를 일입니다. 미래를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은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대기업 임원들은 그리 넉넉한분들만은 아닙니다. 급여가 뭐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닌 데다가 세금도내야 하고, 애들 교육비와 가정 내 씀씀이도 나름 커져 있게 마련이지요.임시직인 임원을 수십 년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재테크를 잘하지 않는 한 큰 부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지사장처럼 성과에 비례한 보상을 받는 직종은 나름의 부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한 다국적 회사 지사장의 사례입니다.

이 분은 “요즘 은퇴 준비로 오두막 하나 만들고 있다”며 좋은 장난감을 산 어린아이 같은 눈빛으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주와 가평에 그리 크지 않은 전원주택을 세컨드 하우스로 짓고 있다는 얘기였죠. 주말마다 여유 있게 사모님과 함께 가 있으려고 별장을 짓는다며 기뻐하셨죠.

하지만 거기엔 함정이 있었습니다. 3번 정도 방문한 뒤에는 사모님이더는 함께 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나이에 직접 밥을 해야 하는상황도 싫고, 근처에 백화점이 없는 것도 싫기 때문이랍니다. 사모님은그렇다 쳐도 만든 분은 지은 죄가 있으니 주말마다 내려가서 생활하게됩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니 주중에 사모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런 얘길 하신답니다. “주중에도 좀 가 있는 게 어때요?”

무슨 말이냐고요? 함께 있는 게 불편한데, 당신 집 있으니 혼자 가 있으라는 거죠. 억울한 일이지만 싸우기도 싫으니 그냥 혼자 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심심해서 친구들을 부릅니다. 출발은 아내와 함께 고즈넉하고 건강에도 좋은 전원생활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친구들과 함께 고기를 굽고 술 마시고 담배까지 태우는 건강에 절대 좋지 않은 생활로 전락하고 맙니다.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내와 사이가 모호한 경우 오두막을 짓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인의 손으로 유배지(?)를 짓는 게 될 수 있으니까요.최근 CEO 대상 강연에서 위의 이야기를 하니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나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40대 후반의 대표는 “아니, 와이프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셨고, 60대 후반의 어떤 분은 “오두막을 지어 따로 사는 게 왜 나쁜가요? 둘 다 좋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위의 삼식이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적어도 퇴직 10년 전부터 배우자에게 매우 잘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은퇴 시기에 연착륙을 할 수 있을겁니다. 본인의 날개가 다 꺾인 후 지금부터 함께 잘해보자고 하는 건 너무나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이미 늦었다면 다음 생에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이인생입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순리를 미리 안다면 정말 소중한, 결코 잃어선 안 될 것을 지키기 위해 미리 조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건 무엇입니까? 이를 깨닫기위해 잠시 멈춰 깊이 생각하는 하루를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송길영 부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캐는 Mind Miner이다.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나아가 여기에서 얻은 다양한 이해를 여러 영역에 전달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활자를 끊임없이 읽는 잡식성 독자이며, 이종(異種)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저서로 ‘상상하지 말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욕망을 보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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