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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의 우리 술의 멋과 맛] (7)국화꽃이 웃을까봐





밤 벚꽃 터지는 소리에 잠 못 들던 날이 어제인가 하더니, 이제는 살 속까지 와서 박히는 깊은 국화 향기 때문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날들이 하염없을 것만 같다. 다만 향기로운 술이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마도 우리 시가(詩歌)나 그림에 술과 짝하여 꽃이 그리도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만큼 꽃으로 술을 잘 빚어 먹는 민족도 드물다. 활짝 만개한 진달래꽃으로 두견주를, 반쯤 핀 복숭아꽃으로 도화주를, 청명에는 술잔 가득 살구꽃을 띄워 마시고, 여름에는 연꽃으로, 지금 같이 무르익은 가을에는 국화꽃으로 술을 빚어 마셨다. 아예 사계절 내내 우리 산하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을 모았다가 백화주(百花酒)를 빚었는데, 이 백화주를 마시면 남자가 마시든 여자가 마시든 100% 임신에 성공한다는 속설이 있다. 이렇게 꽃으로 향기로운 술을 빚어 마시면 남녀 간에 운우지정(雲雨之情)이 얼마나 더 그윽했을까.

신윤복의 ‘소년전홍’.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나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전해지는 춘화(春畵)들을 보면 조선 영·정조 시대를 일컬어 우리 문화의 르네상스기라고 하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에로틱하면서도 수준 높은 춘화나 풍속화가 넘치도록 많았다는 것은 당연히 다른 문화예술도 굉장히 번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혜원의 ‘소년전홍’ 그림을 보면 젊은 남녀 한 쌍이 춘정을 나누고 있다. 이 그림에서 우뚝 솟은 바위와 수풀만 있고, 백일홍 붉은 꽃이 없다면 얼마나 건조해질까. 술 또한 꽃향기를 머금고 있는 술은 정염 속에서도 내내 향기로우면서 얼마나 정갈한 마무리를 해주는지 마셔본 사람만 안다.



국화는 진달래와 달리 향기가 짙어서 술을 빚을 때 다른 꽃들보다 훨씬 적은 양을 넣어도 아주 진하고 깊은 향을 낸다. 지금 같이 무르익은 가을에 황금빛 도는 노란 국화를 그늘에서 잘 말렸다가 술을 안칠 때 단지 맨 밑에 깔거나, 고운 보에 싸서 단지 안에 매달아 두면 술을 마시기 전에 맨 먼저 향기에 취해버리는 국화주가 된다. 가장 쉬우면서도 품격 높은 국화향주를 빚는 방법으로는 정성껏 덖은 국화꽃 몇 송이를 술을 떠내기 2~3일 전에 단지 안에 띄워 두기도 하는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 이런 술이 있다면, 하늘과 땅, 남과 여, 자연과의 합일이 얼마나 뭉클할까.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춘화.



위 춘화에는 젊은 서방님이 방문을 열어두고 정인(情人)을 기다리고, 여자는 한껏 부푼 치맛자락을 쓸어내리며 고운 자태로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자의 도드라진 입술은 검붉어져 있고, 여자의 가슴 또한 국화송이처럼 탐스럽게 부풀어 올라 있다. 맨 처음 그림에서는 두 남녀가 백일홍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춘정을 나누고 있었다면 아래 춘화는 국화꽃 화분을 방 안을 못 들여다보게 뜰 한켠에 비켜 두었다.

그것은 아마도 국화꽃이 웃을까봐. /이화선 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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