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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출연체자들 `배짱' 커졌다
입력1998-12-25 00:00:00
수정
1998.12.25 00:00:00
『갚을 능력이 없으니 법대로 처리하쇼』, 『IMF상황에서 돈못갚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요』.은행등 금융기관의 대출금 연체자들이 「당당」해졌다. 은행으로부터 연체사실과 상환독촉을 받을경우 마음대로 하라며 은행에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은행과 대출고객간의 연체관련 마찰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연체를 자신의 잘못과 부끄러움으로 돌리며 은행에 사정했던 것과는 달리 못갚겠다고 버티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IMF체제 1년을 넘기면서 시간이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져 종국에는 「악밖에 안남은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있다. 따라서 일면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사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한 맛을 남기고 있다.
연체자들은 IMF시대에 대출금연체는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연체된 대출금을 갚지 않고 있다. 은행측에서는 상환기간연장을 통해 고객들에게 연체금 상환을 독촉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다. 심지어 점포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며 항의하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돼 경찰에 신고, 수습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각은행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하루에도 몇건씩 연체와 관련하여 은행창구에서
고객과 직원간의 고성이 오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수 있다.
A은행 가계대출 담당행원 李모(32·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씨는 최근 연체자로부터 황당한 경험을 당했다. 신용으로 1,000만원을 대출받은후 연체한 고객에게 상환을 위해 전화로 독촉을 하자 『갚을 능력이 없으니 법대로 처리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당황한 李씨는 고객에게 다시 한번 연체금을 갚을것을 요구했으나 입에 담을수조차 없는 심한 욕설만 들었다.
B은행의 지점장인 韓모씨는 회사에 출근하기가 곤혹스럽다. 지점과 같은 건물에서 조그만 가계를 운영중인 朴모씨를 매일 만나기 때문이다. 朴씨는 평소에 안면이 있는 지점장의 도움으로 대출을 받았으나 장사가 여의치 않아 대출금 연체상태에 놓여있다. 韓씨는 시간날때마다 朴씨를 불러 연체금상환을 독촉하지만 朴씨는『능력이 없다』는 한마디로 거절해 부하직원들 볼 면목이 없다.
최근 서울시내 한은행의 객장에서는 고객의 소란으로 경찰이 출동하는 활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증을 선 사람의 부도로 연체 대출금이 자신의 계좌에서 빠져나간 고객이 은행에 나타나 보증행위를 무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은행측은 관련조항을 내보이면서 보증무효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으나 부도를 낸 사람이 돈을 물어야지 왜 자신이 물어야 하냐며 고성을 지르고 지점장에게 욕설을 퍼부어 객장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에 이르렀다. 급기야 은행측은 경찰을 동원, 사태를 간신히 수습할수 있었다.
이같은 대출금 연체자 가운데는 정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야 어쩔수없다 치러라도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고의적으로 대출금을 연체, 상환노력을 보이지않는 불량고객도 상상외로 많다는게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장기신용은행의 金모지점장은 『실직으로 생계가 어렵거나 부도로 살던 집을 날리고 가정마저 깨진 사람등 가슴 아픈 사정을 듣다보면 오히려 내가 위로하곤 한다』며 『그러나 고의 연체자들을 보면 우리사회의 병폐로 떠오르고 있는 도덕적 해이현상을 느끼게 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김용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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