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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위치한 한국씨티은행의 강남CPC센터에는 최근 들어 하루에도 2~3건씩 부동산 매매를 알아봐달라는 고객들의 부탁이 줄을 잇는다. 부동산을 사달라는 게 아니다. 대부분 매도를 의뢰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을 꺼리는 부유층 고객들이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하지 않고 PB센터를 통해 매수자를 찾아나서고 있는 것이다. 매도를 요청하는 물건도 200억원대 규모의 상가건물부터 강남에 위치한 중대형 평형의 아파트까지 다양하다.
오인아 한국씨티은행 PB팀장은 15일 "국내 상위 1% 자산가들은 (기준금리 인하 이후) 지금이 보유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매도 타이밍'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자산 포트폴리오 중 부동산 비중을 줄여나가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발표된 정부의 '4ㆍ1부동산종합대책'에 이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상위 1% 부유층은 이른바 '쌍끌이 호재'에도 부동산시장을 외면하고 있어 대조를 보인다. 오히려 부동산시장이 반짝 반등하는 기회를 활용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자산으로부터 '엑소더스'를 시도하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경제신문이 15일 서울 지역에 위치한 현금자산 50억원 이상 부유층이 거래하는 초우량 고객 전용 PB센터를 찾아 1% 부자들의 투자흐름을 점검해봤다.
◇1% 갑부들 "부동산 훈풍, 마지막 매도 타이밍"=기준금리 인하 조치 이후 상위 1% 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유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 이들은 투자대상 목록에서 '부동산'을 제외한 지 오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매매가 상승률이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제혜택에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부동산 수익률(매매차익)이 세제혜택에 따른 메리트를 상쇄할 정도로 상승한다는 보장도 없다. 송민우 신한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 PB팀장은 "부유층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자산을 축적한 케이스가 많지만 10명 중 9.5명은 (각종 호재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투자를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응답하고 있다"며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상위 1% 부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자산 중 처분대상 1순위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다. 최근 부동산대책으로 호가가 2,000만~3,000만원씩 오른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역삼동 개나리아파트 등이 대표적. 투자 이후 차익을 실현하는 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고 부동산 투자종목 중에서도 재건축 단지의 수익률이 최근 수년간 가장 저조했기 때문이다. 한 PB센터 PB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의뢰 받은 물건 가운데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매물을 소화한 것만 벌써 여러 건 된다"고 말했다.
중대형 평형 아파트에 대한 기피 현상도 두드러진다. 향후 인구 고령화와 인구감소 추이를 감안했을 때 중장기적으로 보유가치가 낮다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수백억원대 자산가들도 기존에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중대형 아파트를 처분해 109㎡형대 중소형 아파트로 이주하는 방안을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재편…인컴펀드 등 금융자산으로 이동 가속화=상가나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은 그나마 부유층이 포트폴리오에서 한두 개씩 끼워두기를 원했던 선호자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가나 오피스텔에 대한 관심도도 뚝 떨어졌다. 공급과잉으로 임대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공실률 위험이 높은 탓이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7,700실 정도이던 전국 오피스텔 입주물량이 올해 3만2,000실 정도로 급증할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물량이 넘쳐나면서 월세수입도 하락하고 있다. 1ㆍ4분기 서울시내 오피스텔의 평균 임대수익률은 5.63%를 기록했지만 최근에는 강남 지역에서도 임대수익률이 4%대 후반까지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저금리 기조에서 수익형 부동산의 임대수익률 역시 저조할 수밖에 없다. 임대수익률은 '시중은행 정기예금금리 + 알파'로 책정하기 때문이다.
김영훈 하나골드클럽 PB부장은 "수익형 부동산은 매매차익 가능성이 거의 없고 최근 공급과잉 및 공실률 등의 변수가 많아 주식투자보다 위험이 큰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국내 부유층의 부동산 자산 및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이 1~2년 내에 5대5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발표한 현금자산 10억원 이상 보유 부유층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65~70% 수준이었다. 이미 국내 부유층의 부동산 자산 이탈 현상은 2008년부터 가속화되고 있다. 2011년 국내 부유층이 보유한 금융자산 규모는 318조원으로 2008년(179조원) 대비 80%가량 증가했다.
송 팀장은 "정기예금 등 안전자산을 선호하던 부유층이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금융자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원금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중위험ㆍ중수익의 인컴펀드 등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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