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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Watch] 피로사회… '심플 라이프' 선택하는 직장인

고요한 나만의 시간… 無爲휴가에 빠지다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서 푹 쉬며 경쟁사회에 상처 받은 심신 달래

호텔·리조트서 머물며 휴양 만끽… '스테이케이션 패키지' 상품 인기

매일 아침 출근 복장 코디 추천… 귀차니즘 男 위한 '올인원 화장품'

맞벌이 여성에 반찬 집앞 배달 등 일상 속 고민 해결 서비스도 성황


직장인 성하영(34)씨는 올여름 구체적인 휴가계획이 없다. 무엇보다 이번만큼은 '휴가계획 압박'에서 벗어나려 한다. 숙소, 교통편, 대략적인 동선 등 여행을 생각한다면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1년 내내 직장 일로 바쁘게 고민하며 살아온 성씨에게는 휴가계획조차 피곤한 일이다. 성씨는 "주말은 있지만 늘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 휴가만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늘어지게' 쉬면서 영화도 보고 북카페에서 책도 보며 최대한 단순하고 간소하게 보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경쟁에 내몰려 과도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이 원하는 삶은 '심플 라이프'. 온갖 결정의 순간과 경쟁 속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자발적 심플 라이프'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며 관련 산업군도 들썩인다. 무작정 휴식만 원하는 이들을 겨냥한 여행사와 호텔의 각종 패키지 상품과 일상의 소소한 고민과 결정을 대신해주는 반찬 배달 대행 서비스, '쉬우니까 실용이다'는 문구를 앞세운 카드 광고,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올인원 화장품', 패션 기업의 '코디 서비스' 등이 이런 현상을 반영해주는 대표적인 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이든 가정이든 정보는 넘쳐나고 처리해야 할 업무, 결정해야 할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다"며 "누릴 게 많아졌지만 역설적으로 머리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니 결정 부담을 줄여주고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관련 산업군이 성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위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최근 대한민국의 휴가문화는 '무위휴가'로 번지는 분위기다. 휴가의 키워드로 떠오른 '스테이케이션'만 봐도 알 수 있다. '머물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붐비는 휴가지로 떠나거나 이곳저곳 다니며 둘러보는 대신 집이나 집 근처 혹은 리조트 등에서 머물며 진짜 휴식을 만끽하는 것이다.

이달 초 발표된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성인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휴가 때 꼭 여행을 가야 한다(43.1%)'보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51.7%)'는 의견이 더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휴식'에 중점을 두고 휴가를 보내려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텔과 여행사들은 이 같은 심리를 파고들어 앞다퉈 '스테이케이션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오는 8월31일까지 시원한 호텔에서 30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핫 서머 30C°' 패키지를 선보였다. 오후 4시 체크인, 다음날 오후10시 체크아웃으로 이틀(총 30시간)에 준하는 시간 동안 수영장·칵테일바 등 호텔 내부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며 편히 보낼 수 있다.

세세한 여행일정 짜기조차 힘겨워하는 20∼30대 젊은 세대는 중장년층이 선호했던 여행사 '패키지 여행'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괌·사이판 등 휴양지 중심의 패키지 여행 이용고객 중 20∼30대 비중이 상반기 기준 2011년 1만6,100명, 2012년 1만7,700명, 2013년 1만7,900명, 2014년 1만8,0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요즘 20∼30대 젊은층은 지역 명소 곳곳을 둘러보는 '여행'이 아닌 한 곳에 머물며 심신을 쉬게 하는 '힐링'에 중점을 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리조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인클루시브는 식사는 물론 부대시설도 자유롭게 이용하며 밖에 나가지 않고 리조트 내에서만 휴양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홍보 문구로 활용할 정도로 올 인클루시브는 큰 고민과 결정 스트레스 없이 진짜 휴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최근 들어 20∼30대가 재충전의 기회로 많이 찾고 있다"고 전했다.

◇선택 고민 스트레스 덜고 단순해지자=일찍이 경쟁사회에 내몰려 상당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알짜를 취사 선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택의 고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심플 라이프에 활력을 불어넣는 관련 산업군이 성장하는 이유다.

LF몰의 큐레이션 서비스 'LF 스타일(Style)'은 매일 어떤 옷을 입을지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이 서비스는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고객을 위해 매주 월요일에 1주일간의 코디법을 추천해준다. 마치 전담 코디가 옷을 골라주는 것처럼 서비스를 받아 매일 아침 옷 선택의 스트레스를 한결 덜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소비자의 평이다.

현대인의 '선택 피로감'을 파고들어 홍보 효과를 배가한 광고도 주목받고 있다. 삼성카드는 '쉬우니까 실용이다' '편하니까 실용이다'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숫자카드 V2와 삼성카드 링크 등을 소개하는 광고를 3월 처음으로 선보였다. 삼성카드는 카드 할인혜택 종류가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다는 점에 착안, 카드 하나로 수많은 할인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유해진 편)'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이나영 편)' 등의 광고 카피를 활용했다. 복잡하고 피곤한 현대인의 삶을 단순하고 홀가분하게 만들어주는 실용 아이템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오늘날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고충을 잘 파고들어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줬다는 평가다.

외식업계를 주축으로 '생활지원형 사업'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쿡찬' 같은 반찬 배달 전문업체다. 한 달 분량을 미리 결제하면 식단을 짜 매일 아침 문앞에 배달해 주는 시스템으로 일과 육아에 지친 맞벌이 여성에게 반찬 고민을 덜어주는 단비가 되고 있다.

또 피부건강에 신경을 쓰고는 싶지만 이것저것 바르기 귀찮은 남성을 위한 '올인원(all-in-one)' 제품도 인기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집 밖에서 경쟁하고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 피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의식주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고민은 되도록 더 단순화하고 쉽게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라며 "반찬 전문업체를 포함해 흔히 말하는 '삼시세끼' 관련 사업 등 가사 대행업들은 더 세를 키우고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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