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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3월 15일] 노동판에도 봄은 오는가

잔설(殘雪)을 이고서도 움이 튼다. 꽃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망울이 터진다. 눈 이불을 걷어차고 새싹이 돋아난다. 산천초목이 혼신의 힘으로 일구는 봄은 올해도 영락없이 들판을 연초록으로 수놓을 것이다. 들판에 봄이 오듯 노동판에도 봄은 오는가. 경색된 노사관계가 트이고 얼어붙은 노동시장이 풀릴 것인가. 상생협력의 움이 트고, 고용의 꽃망울이 터질 것인가. 아니 그보다는 노동판이 산천초목 만큼이나 해동에 힘을 모으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노동판에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전투적인 노동단체가 "쇠파이프를 버리겠다"고 선언하고 유력한 경제단체가 '300만 고용창출'에 팔 걷고 나섰다는 전언이다. 소식은 이어지고 있다. 군림하지 않고 섬기며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노동단체들의 움직임이 활기를 띠고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체제 구축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하고 노사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의 적극적 만남을 공동으로 천명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신규채용을 늘리고 정부는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설치해 고용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간다니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비 몇 마리 날아온다고 봄이 아니듯 소식만으로 노동판의 봄을 운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당장 노조전임자 급여문제만 놓고 봐도 봄의 훈기를 느낄 수가 없다. 정부와 국회가 합작품으로 내놓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이상 봄이라고 할 수 없다. 하수(下水)의 정략에 홀려 하해(河海)와도 같은 민심의 고지(commanding height)에 오르지도 못하고 골짜기로 쫓겨가 만든 누더기를 누가 봄의 꽃망울이라고 봐줄 것인가. 진퇴양난의 골짜기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힘들게 만든 것이라고 공치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산천초목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정략적으로는 대격돌을 피하고 소전투 체제로 전환시킨 것이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격돌은 그대로 놔두고 소전투를 덧붙인 것임을 노동판은 알고 있다. 노사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그나마 누더기마저 찢어지면 풀리지 않은 날을 어떻게 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 이른바 타임오프(time-off) 제도는 봄의 새싹인가. 우리 노동판에서 볼 때 싹수가 싱싱하지 못하다. 예산을 들여 근로시간면제위원회를 운영하지만 바로 여기가 전투장이 될 것이다. 이 전투는 국지전에 그치지 않고 피했다고 생각한 전면적인 대격돌을 유발하고 여차하면 거기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 어떤 경우든 산업현장의 갈등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대격돌의 폭발성을 간직한 채 여기저기서 소전투가 벌어져 자칫 잘못하면 노동판의 봄은 더 멀어져갈 위험성이 있다. 처음부터 대원칙과 자동조절의 기제를 고려하지 않아 돈과 시간을 들여도 노동판에 봄이 오지 못할 때 이미 봄을 지나 검푸른 초록의 물결을 자랑하면서 들판은 말할 것이다.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노동판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지 않아 봄을 잃은 산천초목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제비 떼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이미 제비가 봄을 가져오는 환경조건이 변한 만큼 누더기를 걸친 채 제비만 기다려서는 봄을 알지 못한다. 누더기를 벗어 던질 의지를 가지고 봄 준비에 노동판이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사 모두가 '권리와 의무의 균형'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임자는 노조의 몫이고 근로기준은 사용자의 책무이다. 고용은 모두의 것이지만 유연하면서도 안전한 고용을 위해 직업능력의 개발과 사회안전망의 확충에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누더기를 벗어던지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나마 역경을 헤쳐나온 노동판을 뒤엎을 수는 없다. 빼앗긴 들(판)에도 봄은 어김없이 왔다던데 산업화 민주화로 쟁취한 노동판에 봄이 오지 못할 리 없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 산천초목의 강인한 노력을 노동판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상생협력의 대원칙에 입각해 서로를 인정하고 분별력과 진정성을 발휘, 체온을 합해 해동해나간다면 그만큼 노동판의 봄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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