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 정치사는 권력과 포퓰리즘의 부적절한 동거가 거듭되는 악순환이 계속돼왔다.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선심성 정책을 양산해 대권을 거머쥐기를 반복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려는 의도였을 뿐 애초부터 진지한 검토와 논의는 없었다. 따라서 포퓰리즘 공약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실현 가능성과 경제적 효과를 무시하고 불쑥 꺼내 들었다가 이후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 소리소문 없이 폐기되고는 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총선과 대선의 정치주기인 4~5년 간격으로 경제와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강화됐다가 다시 완화되는 패턴이 고착돼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금융계열분리청구제다. 이 제도는 산업자본인 대기업의 금융기관 지배에 따른 폐해가 클 경우 정부가 법원에 계열분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구조조정 수단이다. 공약 당시부터 재계는 물론 학계와 정부 내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 공약은 노 대통령 집권 이후 대기업들의 경영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밖에도 후보 시절 법인세 인하 반대, 대기업ㆍ중소기업 균형발전 등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며 재벌 개혁을 줄기차게 강조했지만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경제안정 우선으로 선회하며 대기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도 빼놓을 수 없는 포퓰리즘 공약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공약에 힘입어 대전ㆍ충남ㆍ충북에서 50%가 넘는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당선 후 "(행정수도 공약으로) 대선에서 재미를 좀 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충청권 과학벨트 조성, 747공약(성장률 7%,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냈다. 이들 공약은 집권 후 두고두고 현 정권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했다.
특히 동남권 신공항의 경우 입지 선정을 놓고 밀양을 내세우던 대구ㆍ경북 지역과 부산 가덕도를 주장한 부산 간 첨예한 지역 갈등만 고조시키다 지난해 3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됐다. 역대 정부 역시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지방공항 건설 공약을 반복했고 그 결과 공항 이용객보다 직원 수가 더 많은 지방공항이 등장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쌀 개방 반대 공약으로 농촌에 발목이 잡힌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농촌의 표심을 위해 쌀 시장 개방 절대 불가 및 10년간 42조원이 투자되는 농어촌구조개선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쌀 시장이 개방돼 야당과 농민으로부터 정권 퇴진 압력에 시달렸고 결국 국무총리가 사퇴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선에서 농가부채 탕감을 약속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으면서 전국적인 농민 시위가 일어난 사례가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급조해서 공약한 새만금 간척사업도 20여년 동안 정치적 상황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사업이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정도범 자유기업원 객원연구원은 "과거 대통령들의 포퓰리즘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도 않았고 이행되더라도 수많은 부작용으로 인해 나라를 망치는 정책이 됐다"면서 "무리한 포퓰리즘 공약은 단지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임을 인식하고 포퓰리즘 공약 감시에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