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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7월 12일] 감동과 박수의 시간을 갖자

고대 로마에 비리프라카라는 신이 있었다. 고대 로마도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인지라 부부싸움이 있었고 싸움이 지나치게 되면 요즘처럼 문서와 도장이 오가는 대신 부부가 비리프라카를 모신 사당으로 달려간다. 이 사당에서는 한쪽이 여신에게 넋두리를 시작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듣기만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한편이 말할 때는 다른 한편은 절대로 말을 할 수 없으니 듣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듣다보면 흥분을 가라앉히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열의 아홉은 들어갈 때와는 달리 다시 손을 잡고 사당을 나온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쉴 새 없이 논쟁하고 대립한다. 인터넷으로 몇 자 두들기기만 하면 수많은 정보가 나오는 요즘 남에게 설득 당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돼버렸다. 무엇을 조금 알게 되면 곧바로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수많은 근거들로 무장하는 우리는 상대방 의견에 1㎜의 빈틈만 보여도 찌르고 들어가 승리해버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하다. 남의 말을 들을 여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그 순간에도 눈을 번뜩이며 상대방의 말을 뒤집기 위한 논리를 찾는 우리 세대가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문화는 유희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이는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완성된 말은 아니다. 유희가 문화가 된 것은 그것이 그저 개인의 즐거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즐거움을 다른 이와 공유하고 같은 이유로 기뻐한다는 어떤 유대감을 갖게 됨으로써 다시 유대감으로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승부의 세계를 과감히 부정하고 공생과 화합을 지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승리의 기쁨 이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대의 어려움에는 고유가니 쇠고기니 촛불이니 하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우리나라의 고전음악은 수많은 이유로 현재 침체기에 들어서 있다. 공연장은 실적 위주의 행정으로 전국에 차고 넘치는데 공연장을 채울 프로그램과 관객이 없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는 넘치는데 소프트웨어는 없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을 이유로 정부와 기업이 등을 돌리기 때문에 질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가 없으며 질 좋은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관객이 없다. 그렇게 공연장 문화가 사라지면서 우리가 쉴 때 들을 것이 없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쉴 새 없이 떠들고 설득시켜야 하는 현실이 악순환 된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이 대입을 위한 자습 시간으로 채워지던 바로 그 시기부터 지금의 현실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숨죽여 감동으로 들을 것이 사라지는 현실에서는 서로 이기고 지는 대결구도만 펼쳐진다. 그러나 언제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적기일 수도 있다. 문화는 이 시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다. 우리 아이들에게 들을 수 있는 마음과 공간을 선물하자. 우리의 마음을 시비와 욕설과 경멸의 장소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해방시켜 성악가는 관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모아 노래하고 관객은 성악가를 위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감동과 칭찬과 박수의 공간도 경험하게 하자. 이제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문화에 눈을 돌릴 때가 됐다. 비리프라카의 신당을 찾는 심정으로 가까운 공연장을 찾는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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