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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거꾸로 가는 복수노조 시대


7월 복수노조 시대가 열리며 노사관계에 팽팽한 긴장이 조성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노사관계의 지각변동이나 사업장의 혼란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년 동안 네 번이나 유예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정부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내년 상반기까지 추세를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재계도 복수노조가 그렇게 공포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듯하다. 勞勞간 조직 쪼개기 등 우려 혼란에 빠진 쪽은 오히려 노동계라고 하겠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그동안 노조활동에서 소외됐던 비정규직 등 소수 노동자들의 권리가 신장되고 신규 노조의 탄생으로 조직률도 약간 상승할 것으로 기대됐다. 무노조 사업장의 조직화 여부도 큰 관심사항 중의 하나였다. 또한 양대 노총의 구태의연한 운동방식과 차별화된 참신한 제3의 노동세력이 결집해 노동운동에 쇄신의 새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복수노조 간의 경쟁이 지난 1987년 이후 정형화된 민주 대 어용의 '흑백시대'를 벗어나 근로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민주화 이후의 노동조합 모델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초기 복수노조 설립 붐은 신설 노조 167개의 91%가 기존 노조에서 분리된 것들이며 조합원이 수 명에서 수십 명에 불과한 영세 노조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서 평가돼야 한다. 무(無)노조 경영의 상징인 삼성에 첫 노조의 깃발을 올렸다고 하지만 조합원은 4명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상징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또한 전체 신설 복수노조의 56.3%(97개)가 택시와 버스 업종에 몰려 있다는 사실도 복수노조 설립 붐의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초기 복수노조 설립 붐이 적어도 양대 노총의 조직경쟁으로 촉발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신설 복수노조의 90%(150개)가 양대 노총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미가맹 노조이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은 오히려 초기의 복수노조 붐이 기업들의 발 빠른 움직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노총은 택시업종의 복수노조에 사측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양대 노총의 울산 지역 조직들은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사업자들이 복수노조 설립을 유도하며 노노(勞勞)분쟁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노동계의 이러한 반응은 복수노조 시대를 사업주들이 선도한다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어용노조가 주도하는 복수노조 시대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이는 향후 노사관계 발전에 별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조짐이다. 복수노조 시대를 맞으며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점은 노사관계 개선의 실익은 없으면서 노노 간의 구태의연한 분파주의적 조직 쪼개기와 조합원 빼오기, 사업주의 개입과 노조 차별에 따른 부당노동행위 시비 등으로 노사관계가 사법적 공방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었다. 다만 민주노총 산하의 공공 부문 노조와 금속산별 노조에서 온건 노선의 기업별 복수노조가 떨어져 나오는 현상은 이미 3~4년 전부터 시작됐고 복수노조 허용을 계기로 더 확산되는 추세인데 이는 예상했던 대로다. 노동계 스스로 진화동력 필요 복수노조 시대가 노사관계 발전의 계기가 되려면 정부와 노사의 적극적인 전략적 선택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 노사관계는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고 민주화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웹 2.0 시대의 컬러풀한 노사관계로 진화할 수도 있다. 노사 스스로의 절제와 원칙 준수가 필요하고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정부의 보다 엄격한 규율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계 스스로의 진화동력이다. 미국의 AFL(미국노동총동맹)과 CIO(산업별노조회의)가 20여년의 반목을 끝내고 1953년 AFL-CIO로 통합을 결정한 이유는 복수노조에 따른 소모적 조직쟁탈전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복수노조는 노동운동에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노조 리더십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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