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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외환관리] <1> 쇼크는 끝나지 않았다
입력2005-03-01 18:12:53
수정
2005.03.01 18:12:53
■ '사냥꾼이냐 사냥감이냐' 기로에 선 외환관리
외환보유액 4大강국 걸맞게… 換주권 회복하자
[기로에 선 외환관리] 쇼크는 끝나지 않았다무늬만 외환강국 운용능력은 미숙아
외환보액 적정규모는
KIC 외환관리 돌파구 될까
"자본시장 재조정 국제공조 나서야"
지난 1월27일 스위스의 스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한국경제 토론회' 행사장. 대통령 특사로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외환위기로 뼈아픈 경험을 했고 현 외환보유고 여건을 감안할 때 아시아통화기금(AMF) 설치가 바람직하다"며 아시아 맹주(盟主)간의 '외환관리공동기구' 설립을 공식 제의했다. 아시아 국가들만의 IMF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AMF 설립 움직임은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설을 처음 제안한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미국은 AMF가 아시아에 자금을 공급할 경우 아시아 각국의 개혁의지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화 위상이 크게 낮아지는데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이 축소될까 두려웠던 것.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공연히 일본의 위상만 높여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닐까. 국제금융시장에 짙게 드리워진 '외화 패권주의'의 한 단면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형적으로 달러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그 결과 2월15일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02억4,900만달러로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일본ㆍ중국ㆍ대만 등 아시아 4개 국가들은 자그마치 1조9,500억달러의 외환을 축적하며 세계 외환보유액 순위 1위에서 4위까지를 휩쓸었다. 독일과 프랑스 등 경제대국들의 외환보유액이 1,000억달러도 되지 않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외환보유액이 이처럼 증가일로에 있지만 그들의 고민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외화 곳간을 유지하기에 바빴지만 도대체 무슨 이득을 보았느냐를 판단하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외환보유액은 늘었음에도 각 국의 통화정책은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중일 3국 중앙은행간 공조가 시급하지만 주도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다 미국이 싫어해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패권주의의 실상을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월22일 불거진 'BOK 쇼크'. 국제금융가 실정에 밝은 한 교수는 이를 '한국은행의 반란'으로 묘사했다. 어차피 미국은 쌍둥이 적자로 달러화 가치가 연일 폭락하고 있었는데 한은이 내놓은 '외환보유액 투자 대상 통화를 다변화하겠다'는 한 줄짜리 국회 업무보고서가 달러약세에 '북치고 장구치는 역할'을 한 것. 국제금융시장은 한은의 통화다변화 방침을 한국만의 반란이 아닌 아시아 국가의 집단 움직임으로 확대 해석했다. 한국이 달러를 매각할 경우 다른 국가들도 동시에 내다파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삼성경제연구소)'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미국 국채를 보유한 일본과 중국의 중앙은행도 덩달아 달러자산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두려움은 곧바로 미국돈의 투매를 야기했다. 한은이 통화다변화를 꾀할 의사가 없다고 해명하면서 시장은 차분해졌지만 시장을 이루는 주체들의 머리 속에서 쇼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추흥식 한은 외화자금국 운용기획팀장은 "외환보유액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쇼크'. 한은 보고서는 한국의 외환관리 능력과 시장구조가 초라할 정도로 취약함을 새삼 인식시켰다. 전문가들은 불안한 외환보유액 구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환율 적정 수준을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채 단행한 개입은 항상 리스크를 야기했다"며 "시장의 흐름에 반하는 정부 개입으로는 비용만 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원화환율 1,140원대를 막기 위해 수시로 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 개입으로 환율하락이라는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정부는 환시채 발행을 통한 실탄개입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적극적인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옵션 등 파생상품에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현재 1조9,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특히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데 비해 달러화 가치는 떨어져 환율이 100원 하락할 경우 16조원(달러자산 1,600억달러로 가정)의 평가손실이 澁暉構?있다. LG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금리를 0.25% 올릴 때마다 우리나라 달러자산에서 약 1,000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 운용능력도 '소화불량의 미숙아'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외환보유액이 수출이 잘돼 늘어난 게 아니라 정부의 환율 과다방어로 늘어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희식 한은 국제국 차장은 "시장을 개방한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사냥터의 입장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며 "외화자산운용업 등 분야에서 투자역량을 강화해 사냥꾼(외환투자가)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김민열 기자 mykim@sed.co.kr
현상경 기자 hsk@sed.co.kr
입력시간 : 2005-03-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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