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는 경제정책 이념 문제가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부패ㆍ부도덕이 빚은 윤리 문제였잖아요. 그런데 우리 정치인을 보면 감독시스템을 손질하는 것보다는 주로 경제정책을 좌나 우로 이동하는 데 너무 몰입하는 것 같아요."
한 대형은행 간부가 사석에서 던진 쓴소리다. 지금 우리 경제가 당면한 위기 중 하나는 가계부채, 물가불안, 중소기업 성장ㆍ고용 부진 등에 따른 내수불안이다. 그런데 이중 무엇 하나도 좌파냐, 우파냐 식의 논리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문제는 이념보다는 모두 주로 시장주체들의 탐욕, 감독기관의 나태함이 빚은 모럴해저드에 따른 것이다. 가계부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몸집불리기식 탐욕에 젖었던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영업전쟁과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경기를 부채질했던 정책당국의 분양권거래ㆍ재건축 규제 해제가 맞물리면서 단초가 됐다.
물가불안 역시 원료 수입ㆍ유통ㆍ가공 과정에서 업자들이 부도덕하게 가격담합을 하면서 한층 심화됐다고 물가당국은 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라면가격 담합 적발 등의 사례는 기업들의 가격윤리 실종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소기업 성장ㆍ고용 부진도 성장정책이냐 분배정책이냐의 이분법의 문제라기보다는 탐욕에 젖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과도한 계열사 간 거래 관행 등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면서 초래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가 지혜를 모아 시장 감독시스템을 정교하게 개선해야 하지만 대선정국에 묻혀 흐지부지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의 지나친 계열사 간 거래 관행을 막기 위해 특수관계법인 등에 일감을 과도하게 몰아주는 기업에 대해 강력한 증여세를 매기는 입법을 지난해 통과시키는 성과를 내기는 했다. 그러나 올해 선거를 앞두고 기업 때리기에 나선 정치권은 일감몰이주기 관행에 대해 기업분할까지 강제할 수 있는 위헌 소지의 입법을 추진하면서 되레 비난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사후적 처벌장치보다는 사전에 경제주체들의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한 감시장치를 정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저축은행 사태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조작 사태에서 드러난 금융감독원의 감독 구멍, 업계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감사시스템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기업의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해 주주 등이 민사적으로 사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ㆍ징벌적소송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입법을 여야가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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